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많았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불후의 걸작이라 칭송받는 이 세 작품조차 이 질문에 답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 난제의 결론에까지 도달한 작품이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오늘 리뷰할 작품은 소년 배틀물로 보였으나 실상은 인간을 소재로 한 생태 철학 보고서인 작품, 기생수다.
어느 날 지구에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들의 정체는 인간의 뇌를 빼앗아 인간의 얼굴을 한 채 인간을 포식하는 기생생물이었다. 평범한 고교생 신이치 역시 뇌를 빼앗길 운명이었으나 순간적인 대처로 인해 오른손을 빼앗기게 된다. 그렇게 신이치는 자신의 오른손을 빼앗은 오른쪽이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신이치는 지나칠 정도로 냉정한 오른쪽이를 불편하게 여긴다. 반면에 오른쪽이는 좋게 말하면 이타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는 오지라퍼인 신이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얼굴에서 대형 칼날을 꺼내 인간을 사냥하는 기생생물들이 신이치를 노리고 있는 지금, 오른쪽이가 없으면 신이치는 살아남을수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를 신고했다가는 실험체가 될 뿐이다. 또한 오른쪽이는 신이치로부터 영양분을 얻기에 신이치가 죽으면 오른쪽이도 죽는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공생을 하게 된 오른쪽이와 신이치는 기생생물들과 싸워 나간다. 하지만 이 둘의 목적은 완전히 달랐는데, 신이치는 인간을 기생생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던 반면, 오른쪽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신이치에게 절망적인 운명이 들이닥친다. 기생생물 중 하나가 신이치의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의 모습을 한 채, 신이치를 찾아온 것이다. 오른쪽이는 신이치에게 "너가 보고 있는 것은 너의 어머니가 아니야"라고 경고하지만 당황한 신이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얼타다가 심장을 관통당해 죽고 만다. 오른쪽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본인의 세포 일부를 신이치의 심장으로 보내 신이치를 살려낸다. 이로 인해 신이치와 오른쪽이에게 엄청난 변화가 나타난다.
신이치는 갑자기 3m나 되는 담을 뛰어넘거나 100m를 10초만에 완주하는 등 운동능력이 비약적으로 항상된다. 그와 동시에 신이치는 소심하지만 따뜻한 성격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버린다. 이전에는 길에 죽어 있는 강아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땅에 묻어 줬으나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뒤로는 죽었으니 그냥 시체에 불과하다며 쓰레기통에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졸래졸래 따라다니던 가나라는 여학생이 기생생물에게 살해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도 신이치는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원래의 신이치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내어 울었겠지만 말이다. 이때부터 신이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오른쪽이는 신이치와는 반대로 능력이 퇴화한다. 정확히는 신이치를 살리는데 많은 애너지를 쓴 나머지 매일 4시간 씩 잠을 자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잠 따위는 잘 필요도 없었던 오른쪽이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확실한 퇴화가 맞다.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역시 바뀌게 된다. 이전까지 오른쪽이는 극단적으로 냉정한 성격이었으나 이때를 기점으로 인간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됨과 동시에 배려심과 이해심이 생겨난다. 대표적인 예시가 3류 탐정 쿠라모리를 위협할 때 이다. 쿠라모리는 기생생물들의 사주를 받고 신이치를 미행하다가 오른쪽이에게 저지당했는데, 쿠라모리는 신이치에게 지구를 위해 실험체가 되라는 망언을 쏟아낸다. 그런 그에게 오른쪽이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동시에 어머니를 잃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소년이 불쌍하지도 않냐며 그에게 일침을 가한다. 평소에 오른쪽이 같았으면 이런 말은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쿠라모리를 죽였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신이치는 인간을 잡아먹는 기생생물들을 감정도 없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며 증오했다. 하지만 그런 그는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부터 자기 자신이 정말 인간이 맞는지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주변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자신이 역겨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즈미 신이치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른쪽이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오른쪽이는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고, 후에는 인간과 같은 감정까지 지니게 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른쪽이가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만을 가지고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건 지능이나 언어, 감정은 인간을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기생생물들은 이즈미 신이치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그들의 리더 히로카와 다케시는 신이치를 죽일 것을 지시한다. 그런데 기생생물중 히로카와의 명령에 의문을 품은 이가 한 명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타미야 료코로 오래전부터 신이치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타미야가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직접 인간의 음식을 먹어 기생생물이 인간을 먹지 않아도 됨을 확인함과 동시에 직접 성관계를 하여 인간 아기를 낳을 정도다. 그런 그녀가 인간과 기생생물의 중간에 있는 신이치에게 흥미를 가지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처럼 행동하는 타미야는 동족들에게 반감을 사게 되고 타미야는 숙청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타미야는 자신을 숙청하러 온 기생생물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갈 곳을 잃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히로카와가 조직의 입막음을 위해 3류 탐정 쿠라모리를 죽이라고 지시했는데 하필 이 과정에서 쿠라모리는 살아남고 도리어 그의 아내와 딸이 죽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쿠라모리는 자신을 고용하여 비극에 휘말리게 한 타미야 료코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의 아기를 납치한다. 쿠라모리는 타미야에게 아기를 되찾고 싶으면 공원으로 나오라고 협박하고, 타미야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신이치에게 공원으로 와 줄 것을 부탁한다. 타미야는 공원에서 쿠라모리와 조우하게 되고, 쿠라모리는 타미야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타미야의 아기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려는 시늉을 한다. 순간 타미야는 쿠라모리를 공격해 그를 죽임으로써 아기를 구출한다. 그 순간 신이치가 타미야 앞에 나타나게 되고, 그와 동시에 타미야의 존재를 눈치챈 경찰들이 그녀 주위를 둘러싸게 된다. 경찰들은 타미야가 기생생물임을 파악하고 그녀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는데, 타미야는 경찰들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보호하다 죽는다. 그녀는 죽으면서 자신의 아기를 신이치에게 맡기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한 발짝 더 앞의 질문의 해답에 다가가게 된다.
우리는 인간에게만 있고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것이 이타심이라 말한다. 하지만 타미야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다른 종의 목숨을 지킨다. 이것이 이타적인게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이타심 역시 인간을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될 수 없다는 거다. 거기다 이타적인 행동은 실제로 동물에게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쯤 되면 궁금할 거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대체 인간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난제의 해답은 극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점차 풀리기 시작한다.
기생생물들의 존재를 눈치챈 경찰들은 자위대와 협력해 기생생물들을 소탕해 나가기 시작한다. 인간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할 수 있는 기생생물들도 연발 샷건을 동원한 자위대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상식적으로 대형칼날이 연발 샷건의 상대가 될 리 만무하다. 이는 제아무리 기생생물의 피지컬이 좋아봤자 결국 지구상의 최강의 생명체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예시이다. 그토록 위협적이고 신이치가 아니면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기생생물들이 하루 만에 전멸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리고 자위대들은 기생생물의 보스 히로카와와 독대하게 된다. 히로카와는 본인의 최후를 직감하고 최후의 연설을 한다. 그는 자위대원들한테 총을 쓸 거면 더 가치 있는 일에 써야 한다면서 지구의 환경을 위해 인간을 솎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일침을 날리는데 그 말은 다음과 같다.
"인간에게 기생하여 생물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우리에 비하면 인간이야 말로 지구를 좀 먹는 기생충. 아니 기생수다."
자위대들은 히로카와에게 총을 난사하고 히로카와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로카와는 기생생물이 아닌 인간이었다. 즉 기생생물을 통솔하던 리더는 사실 인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기생생물이 실은 나약한 생명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체계적인 조직 결성이 가능한 인간과는 달리 기생생물은 독자적인 조직을 스스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개인은 집단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기생생물은 개인의 무력은 인간보다 강할지언정 결국에는 패배할 운명이었다.
이번에는 히로카와의 마지막 연설을 눈여겨보자. 히로카와는 지구를 위해, 그리고 생태계를 위해 인간을 솎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누가 봐도 궤변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전체적으로 궤변일지언정 우리가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생태계를 위해서 사라져야 할 악한 존재인가? 그건 당연히 아니다. 일단 글을 계속 읽길 바란다.
기생생물과 인간간의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으나 기생생물이 완전히 박멸당한 것은 아니었다. 히로카와의 부하인 고토가 살아남은 것이다. 그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자위대들을 도륙낸 뒤 도주한다. 신이치와 오른쪽이는 고토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고토는 신이치를 궁지로 몰지만 어이없게 패배하고 만다. 그건 죽을 위기에 처한 신이치가 최후의 발악으로 고토의 왼쪽 옆구리에 찔러 넣은 타다 만 쇠파이프 때문이었다. 오른쪽이는 신이치에게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쇠파이프에 묻은 독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신이치가 사용한 쇠파이프는 타다 만 쓰레기 더미에 있었는데, 오른쪽이는 정황상 아크릴 제품이 타면서 생긴 시안화수소가 쇠파이프에 묻었을 거라고 말해준다. 참고로 시안화수소는 엄청난 맹독으로 대량살상 무기로도 사용된다. 자위대들까지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 있었던 고토지만 그는 인간이 뿜어난 맹독의 부산물에 의해 허무하게 패배했다. 신이치와 오른쪽이는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오른쪽이는 고토가 부활하려는 것을 느낀다. 오른쪽이는 고토를 마무리 하려 하지만 자기가 고토를 죽이면 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살인과 같다며 신이치에게 처분을 맡긴다. 그토록 기생생물들을 혐오했던 신이치지만 맹독성 물질을 막 버리는 인간이 한 생명의 가치를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오히려 지구를 위해서는 살려두는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모든 걸 자연의 섭리에 맡기려 한다. 그런 그에게 오른쪽이는 일침을 가한다.
"너는 지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구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인간이 싫다. 왜냐하면 지구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 걸. 지구의 최초의 생명체는 끓는 황화수소에서 태어났다고 해."
이 말은 들은 신이치는 마음을 바꾸고 고토를 죽이며 길고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우리는 위의 대사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오른쪽이가 신이치에게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히로카와에게 하는 말에 가깝다. 히로카와는 지구를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기생생물들이 인간을 포식하는 것을 도와줬다. 하지만 오른쪽이의 말을 대입해 보면 히로카와의 철학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런 지구에게 위한다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고로 인간이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구를 위해서 사라져야 할 존재는 아닌 것이다. 생태계를 위해 사라져야 할 악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거기다 지구의 최초의 생명체가 황화 수소라는 맹독성 가스 속에서 태어난 것을 고려하면 인간이 지구를 좀먹는다는 말 역시 맞지가 않다.
한마디로 기생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지구에 기생하며 지구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가장 강력한 집단을 이뤄냄으로써 생명체의 최상의 계층에 올라선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은 지구에 있어서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니다. 애초에 지구는 울지도 웃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에 발을 딛임과 동시에 비뚤어진 환경 애찬론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작품, 기생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