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y 한서

까짓것 함 해봐, 라고 기세 좋게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열쇠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루머들이 제법 황당하다.
로봇 팔은 사실 거대 안드로이드의 일부였다, 공학자의 몸을 안드로이드로 바꾸는 실험 중이다, 공학자는 학교 폭력을 당하던 찐따였다…….
“공학자가 게이인데 애인한테 차여서 자살했다? 지랄 진짜 존나 쓸데없네.”
게시글이나 영상들의 조회수는 꽤 나왔는데 대부분 저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밖에 없었다. 이슈 유튜버로 살면서 하룻밤을 날밤 까며 정보를 찾아봤는데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는 건 처음이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한숨을 푹 쉬고 마른세수를 해도 손에 묻는 얼굴 기름 때문에 기분만 나빴다. 더는 인터넷에서 찾아본다고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봤다. 다크서클이 깊었고, 이마 기름이 앞머리에 닿아 떡져서 가닥가닥 뭉쳐진 걸 보니 인정하긴 싫었지만, 방향성이 틀렸던 것 같다.


“……몰라. 일단 씻자. 씻어. 어휴.”


생각은 수용성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 않았나. 일단 씻고 나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겠지.

***

조금 더 멀끔하고, 보송한 모습으로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샤워를 위해 풀었던 스마트워치를 습관처럼 챙기다가 문득, 녹음 기능이 생각났다. 홈버튼을 꾹 누르면 자동으로 시작하는, 이슈 유튜버의 삶을 살면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기능. 내가 언제부터 집 안에서 정보를 찾았지?
허겁지겁 짧은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고 공기계를 켜서 받은 메일함을 열었다. 언네임드가 보낸 메일 하단 서명란에는 아무 이름도 없었지만, 기본적인 내용이 적혀있었다. 소프트코어의 팩스 번호, 공개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


“그래, 그래…. 이걸 잊고 있었네.”


엠바고가 걸린 정보를 내가 인터넷에서 얻었나? 아니, 직접 발로 뛰면서 얻었다. 열쇠를 찾으려면, 집 근처에라도 돌아보는 게 맞지. 어쨌든 뭐가 있는지 확인이라도 해봐야 하잖아? 혹시 모르지, 문이 열려있을지.

***

소프트코어의 연구소는 닫혀있었다.


“그치, 도어록이지…….”


요즘 시대에 열쇠 쓰는 집이 어디 있겠나. 쥐구멍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근처를 빙글 돌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몰라서 담장 밖으로만 빙글 돌았는데, 하도 기웃거려서 그런지 연구소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거기, 잠깐만요.”


유명 보안 업체의 조끼를 입은 남자는 강압적인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분명 사이렌 같은 건 안 울렸는데, 여기 관리자가 꽤 공들이고 있었나?


“아이고, 어쩐 일로…?”


괜히 모르는 척하며 머리 굴릴 시간을 벌었다. 이대로 걸려들어 갔다가 경찰서로 넘어가면 귀찮아질 게 뻔했다. 스마트 워치의 홈버튼을 꾹 눌러 녹음 기능을 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 주변을 계속 왔다 갔다 거리시던데 무슨 목적입니까?”


의심하는 눈초리로 단호하게 말하는 직원을 보고 재빠르게 명함을 꺼내서 넘겨줬다.


“아뇨, 그냥 이 동네 이사 오려고 알아보는 중인데 신기해서 좀 돌아봤어요.”


명함은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파놨던, 처치 곤란의 남는 것들이다. 가끔 이런 일에 사용하는, 가짜 명함이라고 보면 된다.


“알만하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명함을 받고 한층 누그러진 태도로 말했지만, 여전히 말투가 고압적이었다.


“예, 알죠. 그럼요. 죄송해요. 그냥 요즘 뉴스라던가, 여기저기서 핫…, 아니 말이 많잖아요.”


최대한 얌전하고 무해하게 웃어 보이며 보안 요원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려고 노력했다.


“그냥 지나가다가 여기가 거기라니까 궁금해서요. 사장님은 여기 어떻게 된 건지 아세요?”


혹시나 해서 떠보듯 물어봤지만, 그는 팔짱을 끼고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 아래 진 그림자가 꽤 무섭다.


“궁금하신 건 알겠는데, 여기 기웃거리시는 거 곤란합니다. 지금은 우선 경고만 드리는데 계속 이러시면 경찰도 옵니다. 아시겠어요?”


보안요원인지 직원인지, 투덜거리며 원래는 출장비 청구되어야 하는데 넘어가 드린다는 생색을 내며 내가 자리를 뜨는지 지켜봤다.


“에이썅, 텄다.”


돌아가면서도 힐끔거리며 직원의 동태를 살펴봤지만, 그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다시 살펴보긴 글렀나, 워치의 녹음 기능을 끄고 후퇴했다.
연구소 개구멍 찾기는 실패했다. 드럽게 담배가 말렸다.

***

강남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본 적 있는가. 나를 빤히 지켜보는 중년의 시선을 느끼며 좆됐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 있는가. 꽁초를 버리는 순간을 노리는 매처럼 과태료 딱지를 들고 다가오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그 이후 인터넷 쇼핑 중 장바구니 금액이 맞지 않아 충동적으로 구매한 휴대용 재떨이를 잘 쓰고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프트코어 연구소 잠입 실패 이후 주변을 돌아봤다. 근처 부동산도, 서치 해서 나온 공학자의 집 주소도. 탈탈 털어봐도 유의미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소프트코어의 본사는 서울이라 당장 확인하러 갈 수 없었다. 이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곳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뭐 이름이 이러냐. 코끼리 추모 공원?”


어마무시하게 넓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납골당. 이 동네에 집을 구하는 척 부동산에 가서 입방아 좀 떨었더니 기자들이 여길 드나들었다는 소식을 얻었다. 이름값 하는지 과하게 넓었다.


“여길 언제 다 확인하냐.”


온라인으로 고인이 계신 곳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지만, 공학자의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 3명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는 게 나왔다. 위치도 다 떨어져 있어서 동선이 과하게 커졌다.

잘 닦여진 길을 떨떠름함을 품고 걸었다. 스마트 워치에서 자동으로 운동을 카운트하기 시작해 3만 보를 넘었다는 알림 창이 보였다. 추모객이 반대 방향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꽃이라도 사야 하나…?”


아무리 이슈를 쫓고 어그로를 끌면서 먹고사는 나라도 이런 숙연함 앞에서는 잠시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추모 공원의 아름다움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다루는 정보의 무게를 처음으로 체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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