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유별…. 특이한 이름이네.”
연구소 등기부등본의 적힌 이름, 맹유별. 말소 사항까지 포함된 등기부등본은 완벽하게 깨끗했다. 연구소 건물은 3년 전에 완공되어 그 누구에게도 넘긴 적 없는, 첫 소유주이자 마지막 소유주.
인스타그램을 열어 맹유별을 검색했다. 맹유별이라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꽤 나왔다. 성 없이 유별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까지 함께 서치 된 모양이다. 성이 다른 사람들은 제외하고, 프로필이나 게시물에 사진이 걸려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을 건너뛰었다.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는 사람이 딱 한 명 나왔다.
해당 계정은 잠겨있었지만, 인스타 아이디는 확인할 수 있었다. 영문 아이디는 깔끔하게 Myubyeol이었고, 이 뒤에 @softcore-mail.com 양식을 붙여 존재하는 이메일인지 확인해야 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보통 아이디 하나로 돌려쓰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이 업계에 구르다 보니 잡기술 정도는 익혔다. 이럴 때 써먹어야지.
언네임드에게 받은 메일이 있으니 수신 서버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유효한 메일인지 확인하려고 수신 서버와 테스트 코드를 넣고 핑을 보냈다.
[MAIL FROM:<Myubyeol@softcore-mail.com>]
……250, OK. 성공 메시지가 떴다. 맹유별의 메일주소는 서버에 존재했다.
맹유별은 최웅과 함께 소프트코어에서 일하고, 실질적으로 회사를 관리하는 동업자일 가능성이 높다. 납골당에서 만난 여자가 맹유별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내 안에 있는 감각이 그 여자가 바로 맹유별이라는 확신에 차서 환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동업 자라기엔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슬프고 억울한, 속이 뒤틀린 그 얼굴.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그저 날카로운 말만 던지고 돌아선, 체념이 담긴 그 모습. 언네임드의 메일을 보며 흔들리던 두 눈.
난 그저 돈벌이만 하면 되는 건데, 그저 밥만 잘 먹고살면 되는 건데. 왜 가슴 한구석이 뜨끔거릴까.
이게 다 피곤해서 그런 거다. 다녀와서 제대로 쉬지도 않고, 또 이렇게 앉아서 정보 찾고 있는 꼴을 봐라. 그러니 헛생각을 하지. 부자들 걱정은 하는 거 아니라고 그랬다. 애써 잠겨있는 인스타그램에서 눈을 떼고 컴퓨터를 껐다. 뇌도 재부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뜨거워진 머리에 냉수를 들이부어 땀내를 빼고,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벌써 새벽 5시. 자야지. 뒤집어지게 자야지. 펑펑 자야지. 꿈도 꾸지 말고 자야지…….
***
기절잠을 깨운 건 진동 소리였다. 손목에 걸린 스마트워치의 진동과 머리맡에 둔 휴대폰이 계속계속 울렸다.
“에이씨……, 여보세요.”
턱에 흘린 침을 손등으로 훔치며 전화를 받자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이유재. 너 아직도 자고 있었어? 지금이 몇 신데?”
어우, 귀청아. 잠이 확 달아나는 목소리에 워치를 확인했다. 오후 1시였다.
“아니 그냥, 좀 졸았어. 왜?”
괜히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음소거를 잠깐 눌러두고 아닌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왜냐니, 너 도대체 뭐 하고 돌아다니냐?”
“아이, 알아듣게 설명해. 갑자기 뭐하냐는 말이 왜 나와.”
자리에 일어나서 물 한 잔 뜨며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더 묻고 싶다. 왜 회사 전화로 네가 근무하고 있냐는 확인 전화가 오는지.”
“뭐?”
물을 마시다 뱉어버렸다. 확인 전화라니, 최근 명함을 뿌린 곳은 연구소 보안요원과 맹유별 두 사람밖에 없었다.
“여자였어? 목소리가?”
켈록 거리며 물어보자 한심하다는 듯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어.”
“뭐라 말했는데? 어?”
“뭘 뭐라 말해. 상대측이? 내가?”
“아 둘 다! 똑바로 말해 서민재.”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자 민재가 까랑까랑하게 웃었다.
“유재야, 말 똑바로 해야지? 헛짓거리하고 다니는 건 넌데 어디서 목소리를 깔아, 응?”
“하아………….”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손바닥에 얼굴 기름이 묻는다.
“민재여왕님, 제발 알려주십사와요. 제발. 제~발요.”
“여왕보다 더 높은 걸로.”
“네네 민재여신님. 만족하셨사와요?”
“별로 만족스럽진 않은데 갸륵해서 알려준다.”
내용은 간단했다. 어떤 여성이, 혹시 거기 이유재라는 사람이 근무하냐고 물어봤다. 민재는 전화를 받고 어디서, 어떤 이유로 전화를 줬는지 물어봤고, 상대방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혹시 끊었나 싶어서 확인해 봤지만 전화는 이어지고 있었고, 여자는 잠깐 있다가 이유재 씨한테 여기서 근무하고 있다는 명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재는 그 말을 듣고 이유재 씨는 외근을 나갔으니 휴대폰 번호로 연락하시는 게 빠를 거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래, 고맙다. 민재야.”
“내가 보증 섰으니까 헛짓하고 다니지 마. 위험한 짓 하지 말고.”
민재는 차가운 목소리로 냉정하게 말했다. 로펌을 운영하면서 보증 서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도 저렇게 말하는 거 보면 속은 여전히 따뜻했다.
“응, 알지. 위험한 거 아냐. 그냥 알아볼 게 있어서. 정리되면 알려줄게.”
“힘들면 말하고. 그, 알지? 이번에 넓은 곳으로 이사도 갔어. 네가 있을 자리 충분하니까 와서 나 도와줘. 너 있을 때 왔던 의뢰인들이 네가 옆에서 잘 챙겨줬었다고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몰라.”
민재가 운영하는 로펌의 시작은 거의 쪽방이나 다름없는 법률사무소였다. 거기서 사무보조를 하며 민재의 일을 도왔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그만뒀었다. 의뢰인 중에서 나를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시하는 걸 민재가 종종 목격했고, 성격 못 죽인 민재가 의뢰인들과 싸워서 말리는 일이 많았다. 이대로면 피해만 주는 짐 덩어리 같아서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법률사무소를 나섰다. 그게 2년 전이니 그사이에 이사도 가고 사람도 붙고 꽤 컸구나 싶었다. 그동안 나는 뭐 했지? 영상 썸네일이나 바꿔가며 조회수 올릴 궁리나 했었다.
“응, 그렇게 말해줘서 진짜 고맙다. 나 이제 일 하러 가야 해. 너도 바쁘지?”
“아, 응. 곧 의뢰인 오기로 한 시간이네. 조만간 한번 봐. 또 이상한 곳에서 연락 오게 하지 말고.”
통화를 끊고 약간의 우울감이 왔다. 이게 그 찐따통인가? 속이 쓰린 게, 공복이라 그런 건지 긴가민가하다. 나가서 밥 좀 먹고, 오늘치 유튜브 업무를 해야지. 대충 세수랑 양치 정도만 하고, 잠옷 위에 겉옷만 걸치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