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자주 가는 국밥집. 여긴 별별 국밥을 다 판다. 콩나물국밥은 기본이고 뼈해장국, 선짓국, 사골국……. 사장님이 가게 이름을 간단하게 24시 해장국이라고 지어두셨는데, 내가 보기에 여기는 국밥천국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사장님 콩나물 하나요.”
콩나물국밥을 주문하고 자주 앉는 자리에 앉았다. 가게는 뭐, 오래 살아남은 동네 가게답게 적당히 허름하고 근처 주민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흔적들이 있었다. 벽에 남긴 학생들의 낙서. 잔뜩 있는 연예인 이름과 하트. 떡볶이 국밥이 맛있다는 내용. 여기 이런 것도 있었나? 메뉴판에는 없는데. 학생들이 만들어달라고 했었나 보다.
“어젠 왜 안 왔어?”
“내가 뭐 맨날 여기서 먹나.”
“맨날 먹드만.”
사장님이 기본으로 나오는 밑반찬을 내주며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뭐, 배달은 질리고 밥은 먹어야 하니 맨날 오긴 했다만.
“바빴어요. 아, 소주도 하나. 빨간 뚜껑으로.”
“낮술 하면서 숙취도 때려잡으려고? 욕심도 많아.”
“아잇, 그냥 좀 줘요.”
사장님은 자신의 농담이 재미있었는지 킬킬 웃으며 주방으로 갔다. 등 뒤쪽 벽에 걸린 티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몸을 돌려 화면을 응시했다. 뉴스에서만 벌써 대여섯 명이 죽어 나갔다. 아나운서는 무감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자, 여기. 콩나물. 그리고 소주.”
사장님이 콩나물국밥과 술을 트레이에 밀고 왔다. 그리고 간단한 안주도.
“아이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주방에서 먹는 거 쪼께 떼왔어. 골뱅이야. 같이 먹으라고.”
사장님이 인심 좋게 말하며 트레이에서 국밥을 내려놨다.
“근데 왜 소주잔을 두 개나 들고 오셨어?”
“옴메? 앞에 앉은 처자랑 같이 자시는 거 아냐?”
사장님이 눈을 끔벅이며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봤다. 아니, 비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최웅의 봉안당에서 본, 그 여자. 이 자리와 뒤지게 안 어울리는 고상하고 우아한, 맹유별.
***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을까요, 맹유별 씨?”
황당한 낯으로 물었다. 사실 맹유별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승부수를 던졌다. 여자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무 무늬가 없는 고급 소재의 흰 원피스와 창백한 낯의 유순한 얼굴. 그 모습과 대조적으로 눈빛에 있는 독기는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만들었다.
“뒷조사는 그쪽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니까요, 무직 백수 유튜버 이유재 씨.”
반응을 보니 이름이 맞나 보다.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야 할지, 무직 백수 유튜버라고 불린 것에 기분이 나빠야 할지 오묘했다.
“아무것도 아닌 당신 같은 인간들 정보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다만 맹유별은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미간을 찡그리고 쏘아붙였다. 그리곤 앞에 놓인 소주를 낚아채 뚜껑을 까서 잔에 따른 뒤 테이블 위에 탕 내려놨다.
“뭐해요? 안 마시고.”
맹유별은 넘치게 따른 소주잔을 향해 턱짓을 까딱하며 가리켰다. 사형선고 같은 느낌에 두 눈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 술을 털어 넣었다.
“크으으…….”
간만에 들어가는 알코올의 쓴맛이 이목구비를 구겨버린다. 바로 앞에 호랑이를 두고 좋다고 소리칠 뻔했다.
맹유별은 그런 내 모습을 팔짱을 낀 채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다리도 꼬지 않고, 올곧고 정갈한 모습으로.
“그쪽도 한잔하시죠? 안주야 뭐, 저는 국밥으로 충분하니까 골뱅이 드시면 되겠네.”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옆에 있던 남은 잔에 소주를 콸콸 따라 맹유별의 앞에 내려뒀다. 그녀는 도자기처럼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소주를 바라봤다.
“왜, 못 드시겠나? 그럼 뭐. 내가 먹고.”
고사를 지내는 듯 술 앞에 두고 한참을 얌전히 바라보는 게 웃겨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고 싶긴 했다만, 술이 식는 걸 보긴 어려웠다. 아깝게시리. 다시 가져오려고 손을 뻗었다.
“누가 못 먹는다 그랬어요?”
맹유별은 매서운 손길로 내 손을 쳐내곤, 단번에 쭉 들이켰다. 독한 것, 쓰다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단번에 삼키고는 테이블 위에 탕! 소리가 나게 내려둔다.
“꽤 치네. 한 잔 더?”
그녀의 잔에 다시 한번 넘치게 따라주자 눈썹이 꿈틀거린다.
“네 차례잖아.”
병을 뺏어가 내 잔에 따라주더니 앞으로 쓱 밀어둔다.
“차례가 어딨어요? 마시면 마시는 거지.”
알코올이 슬슬 몸에 도는 듯 텐션이 살짝 올라간다.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슬쩍 웃고는 잔을 들고 입에 털어 넣는다.
“캬-!”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3대 선물 니코틴,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과 카페인은 매일매일 채우고 있었다만 술은 매일 마시긴 어려웠다. 근래에 부족했던 알코올이 채워지는 감각이 짜릿했다.
“왜, 안 마셔?”
“알코올중독자야 뭐야.”
맹유별은 황당한 표정으로 잔을 뺏으려는 내 손을 치우고 잔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입가를 적시는 술 몇 방울을 티슈도 아니고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고상하게 닦으면서 말이다. 그 모습이 매콤한 국밥의 향과 낡아 바래진 벽지, 통일감 없는 화초들이 가득한 이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제법 유쾌했다. 페라리에서 명품 가방 던질 것 같은 인간도 초장에 비벼진 골뱅이를 입에 넣는구나.
***
“그래서 도대체 뭣 때문에 온 걸까.”
고작 소주 3잔에 취해 뒤집어진 맹유별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이렇게 많이 맥였어?”
“아이, 맥이긴 뭘 맥여. 꼴랑 두 병 시켰고, 이 사람은 꼴랑 3잔 먹고 뒤집어진겨.”
“시퍼런 대낮에 잘하는 짓이다.”
국밥집 사장님은 쯧쯧, 하는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상을 치웠다. 소주가 남은 병도 치우려길래 후딱 말렸다.
“에헤이, 이거 남았잖아요.”
“어이구? 더 마시게?”
“아니 그건 아니구 가져가게.”
“잘 한다. 그럼 가져갔다가 병은 가져와.”
사장님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꼬깃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반 정도 남은 소주병을 넣고 손에 들려줬다. 집이 코 앞이라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체면치레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보다.
“알았어요. 계산이요 계산.”
조금만 더 있으면 잔소리할 기색이기에 후딱 일어나 초록 지폐 두 장을 꺼내 카운터에 내밀었다.
“저 아가씨는 버리고 가게?”
사장님이 주황 지폐 한 장을 거슬러주며 맹유별을 슬쩍 봤다.
“뭐, 사장님이 여기서 재워주실라고?”
“아니 상판떼기 고운 양반이 뭣허러 여기까지 왔나 궁금해서 그러지.”
“그르게, 나도 궁금하네.”
사장님이 내미는 지폐를 받아 들고 맹유별에게 다가갔다. 맹유별이 내내 끼고 있던 팔짱이 흐트러지고 고개는 뒤로 젖혀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두 눈을 감았는데도 동공을 움직이는 중인지 파들거리는 눈꺼풀. 목 아래 쇄골팍까지 붉게 달아오른 피부. 참 손 많이 가게 한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허락 없이 몸에 손 올리긴 그래서 테이블을 두드렸다. 맹유별의 눈꺼풀이 힘겹게 올라가자 텅 빈 동공이 나를 향해 움직였다. 그 가득하던 독기가 다 빠지고, 우울함만 진득하게 붙은 눈망울.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
맹유별은 아무 말 없었고, 흐느적거리며 테이블을 짚고 일어났다. 고작 소주 3잔에 이러는 것도 대단하다고 본다.
“잡… 잡아….”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겨우 뱉은 말이 붙잡아달라는 말이어서, 아무 말 없이 부축했다. 누구한테 잡아달라고 하는 건지 알고 하는 말일까.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안타깝다는 듯 쯧쯧 소리를 내며 출입구의 문을 활짝 열어줬다.
“가다가 숙취해소제라도 사다맥여. 저러다 토할라.”
“집에 많어. 가서 먹일게요.”
사장님과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도 어여쁘고. 왼손에는 소주병, 오른쪽 어깨에는 취객. 그리고 존나 무겁고.
“하아 씨바…….”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