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 지고 도착한 홈 스윗 홈. 사랑스러운 나의 집일 텐데 어째서 문밖에 있는 맹유별의 존재만으로 이렇게 누추해지는 걸까. 지끈거리는 두통을 누르며 냉장고에 넣어둔 한 박스나 있는 숙취해소제를 하나 꺼내 들었다. 내가 사둔 건 아니고, 민재가 놀러 와서 술 마실 때 필요하다고 택배로 한 박스나 시켜뒀다. 냉장고 자리 차지하니까 그냥 하나씩 사다 마시라고 드럽게 꼽줬는데 이런 식으로 쓰게 되리란 걸 몰랐다. 인생이 다 이런 거겠지.
“저기요, 맹유별씨? 일어나봐요. 이거 좀 마시고 정신 차려요.”
현관문을 열자 바로 옆에 주저앉아 벽에 머리를 기댄 맹유별이 보였다.
“여기, 어디예요….”
흔드는 손길에 정신이 살짝 돌아왔는지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한숨을 삼키고 맹유별의 손에 숙취해소제의 뚜껑을 따서 쥐여줬다.
“제 집 앞이요. 드세요.”
“…….”
맹유별은 조용히, 멍하니 날 바라보다 단숨에 숙취해소제를 들이마셨다.
“……으.”
맛없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내 손에 빈 병을 쥐여줬다. 황당해서 한마디 할까 싶었는데, “웩.” 하고 전부 뱉어버렸다. 그러니까, 전부 말이다 전부.
울고 싶어라.
***
집 안으로 맹유별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들이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집 앞에 토악질한 여자를 버리고 문을 닫을 정도로 나는 냉혈한이 아니었다.
서 있을 힘도 없는 여자를 부축해서 씻기고, 그 고급진 옷을 벗긴 뒤 내가 입는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하나뿐인 침대 위에 눕혔다.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응달의 원룸. 꽁초가 가득 찬 재떨이와 쌓여있는 에너지음료의 빈 깡통들. 프레임도 없이 바닥에 둔 침대 위에 있는 맹유별. 실크처럼 부드러운 옷을 벗고 목 늘어난 품 넓은 티셔츠를 입은 맹유별. 꼭 내가 여기로 끌어내린 것 같아 보였다.
“저기요, 그래서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복잡한 마음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자고 있는 맹유별 옆에 앉아 물어봤다. 역시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아까 국밥집에서 먹다 남은 소주 반 병이 눈에 들어왔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병째로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으으…….”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취했나? 그치만 이 정도 양으로 취할 리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자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맹유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왜, 여기까지 와. 왜….”
“……오고 싶지 않았어.”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숙였던 고개를 들고 그 얼굴을 바라봤다.
“알고 싶지 않았어…….”
맹유별은 공허한 눈으로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눈꼬리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이.
“내가 받고 싶었다고 말하면 쓰레기 같을까.”
그 말을 뱉은 맹유별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차라리 내게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뒷말을 삼키며 눈을 감은 맹유별을 보며 형용할 수 없는 진창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그랬다면 괜찮았을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늘어갔다.
“그게 뭐길래, 이렇게 비참해지는 걸까.”
목소리에 점차 울음이 섞인다.
“그게, 뭐길래…….”
디디면 안 될 곳을 디딘 것처럼 해답 없는 무력한 질문들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맹유별의 우울 같은 늪 위에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감당하고 있는 걸까.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보며 휴지를 찾았다.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를 꺼내려다 옆에 놓인 휴대폰 화면의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 아래에는 커뮤니티의 댓글 알림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항상 있던 그 자리에 떠 있었다. 그제야 마셨던 술에 취하는 듯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심장을 로봇팔에게 기증한 최웅, 울고 있는 맹유별, 그들을 보며 알 권리를 외치는 대중,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나. 눈물을 닦아줄 자격이, 내게 존재하나?
먹고살아야 한다, 저 사람은 잘 사니까 괜찮을 거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잖아. 어렵고 못살잖아,라고 스스로를 연민하던 게 독이 되었다. 최웅의 죽음을 팔아먹으며, 맹유별의 눈물을 쥐어짜 내며 이래도 괜찮다는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열쇠를 알려주려고 왔어요.”
휴지를 쥐고 가만히 서 있는 내게 맹유별이 말을 걸어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자리에 앉아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맹유별이 보였다.
“당신에게 메일을 보낸 존재와 연결시켜드릴게요.”
맹유별은 잠시동안 눈을 감았고, 닫힌 눈꺼풀의 틈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걸, 왜….”
혼란스러웠다. 맹유별은 내가 이슈 유튜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와서 정보를 꺼냈다.
“그러게요. 왜 그럴까….”
맹유별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닦아냈다.
“변호사 서민재 씨가 그러더라고요. 유재 씨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맹유별과의 대화는 늘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를 짚어냈다. 카운터를 맞았을 때의 얼얼함이 뒤통수를 가격하는 것 같았다.
“그 믿음을 배반할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 말을 하는 맹유별은 씁쓸해 보였다.
“열쇠는 보안키를 말하는 거예요. 개인정보라 메일로 말할 수 없었을 거고.”
시선을 떨어트려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맹유별이 속삭였다.
“보안키는…… 그냥 단순히 지문이에요. 제 지문.”
그리고 최웅의 지문.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고요한 방을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덮었다.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손에 쥔 휴지를 들고 맹유별에게 다가가 손 위에 쥐여줬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지문이 휴지로 가려졌다.
“그거 핑계잖아요.”
툭 던진 내 말에 맹유별이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믿음을 배반하고 뭐…. 그런 거요. 내가 서민재를 배신하고 말고… 맹유별 씨 안중에 없잖아.”
독기가 사라진 두 눈에 욱여넣은 우울을 보고도 그 말을 믿는 바보가 어디 있겠나.
“…….”
“그렇게 입 꾹 닫고 째려봐도 소용없습니다. 눈물이나 닦으세요.”
손에 쥐여준 휴지를 공처럼 뭉쳐서 놓지 않고 있기에 새로 휴지를 뜯어 눈물이 남아있는 얼굴을 벅벅 문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몰라요. 난 그쪽들 이야기로 돈벌이나 해보려는 사람이니까.”
얼굴을 문지르는 손을 쳐내며 맹유별이 짜증스럽게 바라봤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한테 털어놓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라고요.”
“알아요. 그래서 그쪽 이용하려는 거잖아요.”
세상 물정 모르는 애새끼가 당돌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예예. 쓰고 제자리에 두세요.”
한숨을 쉬며 눈물 젖은 휴지를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고 남은 소주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순진한 건지,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못 하는 건지. 답답했다. 이 답답함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나의 악함에서 오는 걸까, 양심에서 오는 걸까. 한숨을 쉬며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왜 거기 누워요.”
“침대 그거 하나인데 같이 누워요?”
“그건 싫은데.”
“그럼 조용히 있다가 가세요.”
“……집에서 담배 냄새나요.”
“알아요.”
“청소 좀 하세요.”
“예예.”
“…….”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맹유별이 침대에 도로 눕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의 숨소리가 오랜만에 방 안을 채운다는 걸 깨닫자 속이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