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도착 후 내가 마주해야 하는 잘못을 떠올리며 현관문의 손잡이를 쥐고 망설였다. 나는 어쩌면 민재의 말처럼 짐승 새끼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받은 믿음, 돌려줘야 할 믿음이 있었기에 짧게 심호흡하고 문을 열었다.
“…….”
방 안이 고요했다. 인간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적막. 이상함을 느끼고 침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기 하나 남기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맹유별을 대신하듯 베개 위에 포스트잇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폐를 끼쳤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먼저 돌아갑니다. 이번 주 토요일, 연구소로 오시면 메일을 보낸 자와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맹유별-]
정갈한 글씨체로 쓰인 말은 내가 본 맹유별의 위태로운 상태와는 달리 깔끔했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태로운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인 걸까.
포스트잇의 접착 면에는 명함이 붙어있었다. 대표라는 직함과 이름 석 자. 이메일 주소, 회사와 연구소의 주소…. 도대체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어지러웠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맹유별의 행동은 자학이나 다름없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와서 열쇠와 온갖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것도 자극적인 이슈 유튜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돈으로 하는 협박? 그게 다 뭐라고. 속이 썩어서 문드러졌는데. 왜 이렇게까지 멀쩡한 척을 하는 걸까. 창가에 대충 빨아서 널어둔 맹유별의 흰 원피스가 보였다. 토사물에 물들어 불그죽죽해진 부분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 그랬다. 지워지지 않을 거다. 내가 속죄의 의미를 알게 되어도, 죄악의 의미를 알아차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워야 했다. 돌이켜야 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져야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켰다. 브라우저를 열면 자동으로 커뮤니티로 접속되었다. 시간이 좀 지났기에 급상승 동영상의 순위권에서는 내려왔지만 영상에는 '좋아요'가 50만 개 가까이 찍혀있었다. 댓글은 여전히 지저분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분란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자부심을 느낀 이곳은 그저 짐승들을 모아둔 우리에 불과했다는 걸 인제 와서야, 다 늦은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맹유별은 이 댓글들을 봤을까? 비겁하겠지만 슬픔에 눈이 가려져 이 영상의 댓글까지는 보이지 않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서둘러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잠시 마우스에서 손을 놓았다. 맹유별의 영상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 영상들의 썸네일이 화면에 바둑판처럼 좌르륵 펼쳐져 눈에 들어왔다. ‘충격, 두 얼굴의 그녀?! 신상 공개!’, ‘드디어 밝혀진 결별 사유… 꽃뱀은 누구인가?’ 등등 온갖 자극적인 제목들과 클릭을 유도하는 이미지.
이걸, 이걸 정말 내가 제작한 게 맞는가? 몰아치는 미시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분명 내가 제작한 것이 맞는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날로 벗겨진 내 모습이 전시된 것 같아 마우스를 꽉 잡고 모조리 영상을 비공개로 돌리고 커뮤니티에 올린 글들을 지웠다.
내가 한 행동이 죽고 싶어질 만큼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진하게 느껴지는 자기혐오에 얼굴이 화끈거려 손바닥으로 두 눈을 꾹 눌렀다.
정신 차리자. 제대로, 똑바로. 두 뺨을 내려치자 짝 소리와 함께 얼얼함이 퍼졌다. 내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나중 일이다. 지금은 책임을 져야 한다. 수치스러워한다고 내가 했던 행동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곧장 맹유별의 명함을 쥐고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가. 긴 신호음이 뚝 끊겼다. 곧장 이어질 자동응답기 음성을 기다렸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끼고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바라봤다. 통화가 연결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맹유별씨?”
“아, 아요. 여보세요?”
잠깐에 부스럭 소리 끝에 들린 건 맹유별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사람의 목소리였다.
“어, 음. 여보세요? 거기 맹유별씨 휴대폰 아닌가요?”
“아, 이 아가씨랑 아는 사이세요? 여기 지금 아가씨가 물에 빠져서 푹 젖었는데, 와서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곤란한 목소리의 중년 여성이 전화를 받고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경찰에 연락하기 직전이었는데 다행이네요. 여기 아가씨가 푹 젖어서 옷이랑 따뜻한 것 좀 챙겨 오셔야지…”
“어, 어쩌다… 어쩌다 빠졌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까진 모르겠는데…. 아가씨가 많이 추워하네요. 여기 위치 보내드릴 테니까 얼른 오세요.”
무슨 날벼락같은 소식인지 모르겠다. 책상 위에 놓인 정갈한 맹유별의 메모와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웅성거림의 괴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급히 옷과 수건, 그리고 어딘가 처박아뒀던 핫팩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더 챙겨갈 게 없는지 빠르게 집 안을 훑어본 뒤 현관 신발장 위에 던져뒀던 오토바이 키를 챙겨 튀어나왔다. 아차, 담요. 담요 챙겨야지. 신발을 한쪽만 벗고 깽깽이 발로 뛰어가서 적당히 보송한 담요를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