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의 핸들을 잡았다가, 술을 마셨다는 걸 깨달았다. 다급하게 택시를 잡았고, 기사님에게 최대한 빠르게 출발해 달라고 지갑에서 오만 원권을 꺼내 내밀었다. 덕분에 평소라면 20분 넘게 걸릴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했다. 분명 근처일 텐데 하고 전화를 걸었다가 웅성거리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주변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어느 한 곳만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맹유별씨!”
사람들의 눈길을 따라 뛰며 맹유별의 이름을 불렀다. 물미역처럼 축 늘어진 머리칼 위로 덮어진 얇은 수건, 덜덜 떠는 몸 위로 누군가가 덮어줬는지 모를 커다란 겉옷. 사람들의 선의를 두르고 있어도 맹유별은 여전히 처량함에 젖어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에 맹유별은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두 눈이 마주치는 이 순간. 그냥,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주변의 소음도, 발을 헛디딘 것 같다는 사람들의 말도. 워치에서 울리는 심박수 경고음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맹유별을 챙겨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문득 이명이 멈추고 정신이 들었을 땐 난생처음 보는 모텔방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맹유별의 머리칼을 말려주고 있었다. 드라이기의 더운 바람 때문일까, 숨이 막혀왔다. 결국 드라이기 전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왜 울어요.”
건조하고 고요해서, 바로 앞에서 낸 소리라는 인식을 못 했다. 손길이 피부에 닿았을 때, 뺨 위로 시린 손이 닿았을 때 비로소 감각이 돌아왔다. 아, 지금 내가 울고 있었구나.
“제가, 너무 멍청해서요.”
“…….”
“책임지려고 했어요. 내가, 노력해서… 용서를 구하면 된다고, 그… 제 잘못을요. 그러니까요, 맹유별 씨에게… 아니, 아니. 내가 했던, 것들이요. 전부요, 사람들에게 전부 다….”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통제하지 못한 입에서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말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어떤 잘못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몰랐어요. 제가, 너무… 늦게 알아서….”
몰랐다는 말이 면죄부로 쓰일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변명처럼 튀어나온 말을 막을 수 없었고, 이 말을 뱉은 것조차 후회스러웠다.
“죄송… 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파열하는 단어들을 겨우 이어 붙여서 만든, 너덜거리는 초라한 사과였다.
“그러게요…….”
맹유별은 조용한 대답을 하고 내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냈다.
“그 아이가 그렇게 가버린 건, 어쩌면 제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만히 쓸어내리는 손길에서, 아주 먼 향수가 느껴졌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슬픈 그리움이.
“운이 좋아요, 이유재 씨. 적어도 사과를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은 있잖아요. 전 이제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고, 사과조차 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맹유별은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었다.
“제게도 자격이 있나 싶어요. 용서할 자격이요. 그건 제 몫이 아닌 것 같아서요.”
“…….”
“그냥, 똑같이 도망치고 있던 처지의 인간끼리….”
그 말이 그저 아파서.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맹유별은 내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게 무서웠다. 나 같은 인간이랑 엮여서, 고급진 원피스가 더럽혀지고 초라한 모텔방 안으로 추락했다는 게. 그럼에도 원망 없이 내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게.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울린다는 게 가장 공포스러웠다.
“전, 저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모르겠어요. 자격이라는 건 누가 주는 걸까요?”
맹유별은 차가운 손을 떼고 가만히 내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다 들킨 것 같았다. 다, 끝난 것 같았다.
“내가 그 자격을 주는 걸까요? 아니면 법이?”
“…….”
“그것도 아니면, 돈이?”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삶이 너무 어려워요. 난 분명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비참해졌어요.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오점이 남은 것 같아요.”
맹유별의 고개가 서서히 떨어진다. 다시는 그 눈빛이 어두워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짧은 순간에, 맹유별은 내 손을 낚아챘다.
“내가, 잘못 살아왔을까요?”
“……아뇨.”
내 대답에 맹유별은 두 눈을 감았다.
“전혀요. 맹유별 씨는, 최선을 다했어요.”
“내가 그랬다면, 당신도 그랬겠죠.”
비겁하더라도, 삶이 역겹더라도. 인간성을 잃더라도. 우리의 인생은 그 무엇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러니 후회마저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거다. 미화도 아니고 인정도 아닌, 그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최선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 말 들으려는 건 아니고….”
맹유별은 한숨을 쉬고 날 바라봤다. 그제서야 그 안에 담긴 불안이 보였다. 내 속이 다 들킨 것 같아서 무서웠는데, 눈을 맞춘다는 건 그런 거였다. 서로를 알아가는 가장 솔직한 대화방식이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맹유별에게 잡힌 손을 되레 꽉 쥐고, 다짐했다. 내 비겁함이 최선이었음을 안다.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일부라는 걸 안다. 다만 앞으로 남길 나의 최선이, 더 이상 비겁하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더 나은 최선을 남기도록.
“같이, 같이 가요.”
그 말을 들은 맹유별은 두 눈을 조금 더 자주 깜빡였고, 코끝이 조금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습기로 반짝였지만,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고마워요.”
내가 할 말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