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을 함께 지나, 새로운 아침. 잠든 유별을 깨우지 않고 먼저 화장실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씻고 나오자 잠에서 깬 유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잤어요?”
“네.”
가라앉은 목소리에 물을 한 컵 따라 건네주면서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유별이 물을 마시는 동안 생긴 정적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며 뒷목을 문질렀다.
유별은 손을 내렸지만, 머그잔을 그대로 쥐고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 망설이고 있었다.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함께 연구소에 가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나의 빠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유별은 여전히 머그잔 위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건, 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인지 뜸을 들이기에 혼자 괜한 추측을 이어갔다. 연구소, 한차례 거절당했던 공간. 그 안에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어려워하고 있을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무섭거든요.”
“괜찮아요. 같이 갈게요.”
무엇이 무섭냐고 물어볼 수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가서 확인한다면 알 수 있겠지.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굳이 몰아세우며까지 확인할 이유는 없었다.
유별이 준비를 마치길 기다렸다가 함께 모텔 밖으로 나왔다. 푸른 하늘과 강렬한 태양 빛으로 인해 긴 밤에 보였던 촘촘한 별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가야 할 길이 명확했으니까. 더 이상의 맹목은 없었다.
고속버스로는 2시간 반이 좀 넘게 걸리던 길이, 유별의 차로 함께 이동했을 때 1시간 반이 좀 넘게 걸렸다. 돌아갈 여유조차 없는 듯이. 그동안 유별은 핸들을 꽉 잡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희게 질린 손마디에서 오로지 긴장만이 맴돌고 있다는 게 보였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연구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추모 공원에 있던 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
그제야 내가 옆에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유별이 작은 소리를 냈다.
“거기 부동산 가셨잖아요. 최복 부동산.”
그 부동산 이름이 최복이였나? 그냥 근처를 다 뒤집어가며 정보를 찾아다녀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기가 지인의 지인분이 하시는 곳이에요. 애초에 동네가 작아서, 여기서 뭘 해도 이야기가 다 돌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유별의 홈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었던 거다.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다닌 건 애당초 소용이 없던 일이었다.
“거기 옆집 미용실이 동창네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소문이란 소문은 다 모여요. 부동산 주인분이랑도 친하셔서 거기서 저한테 전화 주셨거든요. 경찰 부른다는 거 막고 제가 나섰죠.”
“……아. 음,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경찰서로 끌려갈 뻔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감사는요, 무슨. 저도 그냥, 제 지푸라기 잡으러 갔을 뿐이에요.”
유별은 작게 중얼거리고 차를 세웠다. 긴장감을 풀어주려 말을 걸었는데, 집중하다 보니 도착했는지도 몰랐다.
“지푸라기요?”
유별이 안전벨트를 푸르는 모습에 나도 곧장 따라 풀며 질문을 이어갔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깨고, 등이고, 새삼 작아 보였다.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서 연구소의 담장 안을 들어갈 궁리를 했었던 내가, 그저 내려놓았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물 앞에 도달해 있었다. 인생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투성이었다.
“웅이의 마지막 흔적이 당신에게 있었으니까요. 그 메일이요.”
“언네임드…….”
내게 심장의 필요성을 물은 언네임드는 최웅이었을까? 하지만 내가 메일을 받았을 당시에 이미 최웅은 심장을 기증한 상태였다. 그러니 최웅이 직접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예약 메일일까? 하지만 어떻게 날 특정해서 보냈겠는가.
“들어오세요.”
유별이 먼저 앞서서 연구소 건물의 문을 열었다. 열쇠가 지문이라는 말답게, 보안용 지문 리더기에 손가락을 올리자, 인식이 완료되었다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앞서 들어가는 유별을 따라 텅 빈 연구소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건물이 소리를 뱉어내듯, 발소리가 울렸다. 깊은 동굴 속처럼, 인기척 없이 죽어버린 공간의 서늘함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 특이하게도 카드리더기 옆에 보안용 지문 리더기가 하나 더 붙어있었다. 그 앞에서 유별은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듯, 유별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 안에서 배어 나오는 공포감을 읽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유별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붙잡은 손에서 유별의 빠른 맥박이 느껴지는 듯했다. 느껴질 리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내 심박수일까?
“이 안에는…… 그 아이의 심장이 있어요. 마주하기 무서워서 여태 도망치고 있었어요.”
유별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에 젖은, 축축한 늪에서 건져 올린 날것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과 함께 오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두렵네요.”
“……무엇이요?”
이번에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홀로 두고 싶지 않았다. 두 눈을 마주하며, 무엇이 두려운지 물었다. 재촉이 아닌, 안에 담긴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실이요. 내가 그 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비참함이 날 죽일까 봐…….”
유별의 시선이 내 두 눈에 닿았다. 진심이 닿은 건지는 몰라도, 유별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의 죄책감과 간절함이 내게도 스며들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곁에 있을게요.”
무력한 말이었다. 하지만 유별에게는 그 말이 필요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의지할 곳이 없기에 이런 말에 안심하는가, 안타까움에 속이 아렸다.
유별은 긴장의 숨을 크게 내쉬고, 보안 인증을 마친 뒤 문을 열었다. 넓고 아늑한 공간에 발을 딛자 어쩐지 구름 같은 포근한 향이 났다. 걷어진 커튼 사이로 맑은 햇볕이 방을 데우고 있었고, 생활감이 가득한 방 안을 먼지가 나풀거리며 빛을 머금은 채 날아다녔다.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돌아보자 유별은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동안은 늘 유별이 앞서 걸어왔는데, 이 공간에서는 한 발 내딛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아- 오셨어요, 사랑하는 유별!”
분명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거대한 단상에 놓인 기계적인 팔 하나가 바퀴를 굴리는 모터 소리를 내며 공간 중앙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이에요! 옆에는 새로 오신 분이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하와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박사님의 비서 AI랍니다.”
손을 흔들 듯 인사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유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재 씨에게 메일을 보낸 존재가 바로 하와예요.”
예상하지 못한 존재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