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

60대 아버지를 둔 20대 막내딸이 '대한민국의 남성성'을 생각하며 씀

by 서듀로프


나는 아버지 때문에 비혼주의자가 됐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집안의 절대적인 중심에 서 있었고, 본인의 뜻대로 가족의 모든 방향을 정하려 했다.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건 늘 두 가지였다. “건강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야 한다”는 말. 매일 반복되는 이 두 가지 말은 듣기에 따라선 충고였지만, 나에게는 마치 삶의 기준처럼 들렸다. 그의 눈에 내 인생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가 그어놓은 선 위를 밟으며, 어머니와 자매들 모두에게 요구했던 삶을 따르길 바라는 마음. 아버지는 늘 우리가 그의 기대에 맞춰준다는 걸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본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다. 저녁마다 집에 들어오면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아 소주 한 병을 따서 마셨고, 그날의 일이 어땠든 취한 채로 지친 얼굴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잠드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았다. 때로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술기운에 말을 붙였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괜찮은 남자 만나서 빨리 시집가라”. 그가 하는 그 말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신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척하지만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빈 그릇을 설거지하는 건 엄마였고 아무렇게나 벗어둔 양말 뭉치는 묵묵히 내가 빨래통에 가져다 넣었으니까. 나는 아빠같은 사람을 만날까봐 더욱 결혼이 하기 싫었다.


큰언니는 결국 아버지의 기대대로 결혼을 했다. 나는 결혼식장에서 처음으로 언니를 멀리 느꼈다. 언니는 직장에서 스스로 인정받으며 일하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랐던 사람인데, 아버지가 소개해 준 남자와 결혼을 택한 것이다. 결혼식 날 아버지는 늘어선 화환을 둘러보며 자랑스레 말했다. “아빠 인생 잘 살았지?” 그의 말과 표정은 언니의 결혼을 축하한다기보다는, 그 결혼이 자신의 성과라도 되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본 언니의 결혼식은 그저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킨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더 확신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결혼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나는 광고 대행사에 취업한 뒤 오직 나만의 길을 걸으며 내 삶에 집중했다. 결혼에 대해선 더더욱 관심이 없었고, 아버지가 말한 ‘안정된 삶’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남자친구는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내 커리어와 목표를 진심으로 지지해 주었고, 일과 삶에 있어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을 존중해 주었다. 그와의 관계는 내가 아는 모든 관계와는 다른 것이었다.


3주년이 되던 해에 남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반짝이는 다이아를 보며 설렘보다 묘한 불편함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단어 하나가 내게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지 그제야 알았다. 그 한 마디에 내 머릿속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치 결혼이 그가 원했던 방식의 틀에 다시 나를 끌어넣는 것만 같았고, 나는 곧바로 프로포즈를 거절했다. 남자친구가 머쓱하게 반지 케이스를 닫을 때 나던 자석이 맞물리는 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늘 건강을 중요하게 여긴다던 사람이었지만, 막상 본인의 건강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 같다.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고도 어색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약해진 모습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워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겨우 침대에 몸을 기댄 채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힘겨운 목소리로 한 마디를 꺼냈다.


“빨리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라...아빠...숙제다...”


아버지는 말할 때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더니, 마치 몇 마디 말이 그에게 무거운 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떨궜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잠든 아버지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봤다. 내내 나를 억눌러오던 결혼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힘겹고도 무겁게 들리다니. 병실에는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고,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마치 평생을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약해진 목소리와 떨리는 손끝에서 나는, 아버지가 우리를 위한 그 ‘안정된 삶’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계시는 동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방식이긴 해도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내게 강요해왔던 결혼과 가정이 꼭 억압과 희생만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른 가능성을 품은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선택한 사람과 함께 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아버지의 기대를 넘어서는 결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버진 로드를 걷고 있다. 나는 한 손엔 부케를, 한 손은 벨라인의 실크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려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혼주석에 홀로 앉아 있는 엄마를 보며 더욱 씩씩하게 걸으려고 노력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나는 병실로 가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버지 숙제 이제 끝났어. 나 잘 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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