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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Feb 16. 2024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마음

아버지가 변했다

고령인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아버지는 이따금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아이들을 만나도 시무룩하거나, 또 언젠가는 많은 말을 할 때도 있다.  문득 아버지가 치매라는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몇 년 전, 아버지와 큰 다툼을 벌인 일이 있었다.

부모님 집은 30년 가까이 되는 오래된 집이   벼르던 새시 공사를 하게 되었다. 마침내 공사가 끝난 후 그전보다 포근한 집이 될 거라는 대에 부풀어 시골에 갔다. 이럴 수가! 공사가 개판이 따로 없었다.  맞춤  설치라고 생각한 새시는 기성품을 갖다가 고정한 것처럼 쥐구멍보다도 더 큰 틈이 보였다. 그들은 빈 공간을 스티로폼으로 잔뜩 메꿨다. 나는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공사가 끝난 게 맞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내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공사는 끝났고 말고. 젊은 총각이 어찌나 싹싹하고 상냥한지, 일도 꼼꼼하게 잘해서 아주 만족한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날림공사는 아버지의 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만족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아버지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이가 일을 얼마나 잘했는데, 이렇게 일 잘하는 청년은 처음 봤다니까? 네가 새시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원래 이런 공사는 정확하게 맞추기가 어려운 거란다.  뭐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공사를 계약한 사장에게 당장 전화해서 따져야겠다고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는 무슨! 전화하지도 마라. 청년이 얼마나 애썼는지도 모르면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나는 그렇게 아버지와 30분간 새시, 아니 청년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멈췄다. 아버지 싸움이 끝난 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과거 내가 알던 아버지는 어떠한 일에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했고, 그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줄 알았다.  그랬던 아버지가 달라졌다. 공사 결과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청년의 대변인 같았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화를 내는 거고, 아빠는 누구를 위해 청년의 편을 드는 걸까.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불었던 그 해  겨울, 큰돈을 주고 공사를 했만 이놈의 날림공사뼛속까지 시게 만들었다. '아, 코 시려, 에취!

아버지에게 따듯한 마음을 선물한 청년이 만든 새시는   

그 어떤 해보다 추운겨울로 보답했다.


현재 아버지는 치매약 중 가장 높은 용량을 처방받는다. 그만큼 아버지의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가족이 모두 모인 명절날, 아버지는 침대맡에 누워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문득 아버지가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노트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2024.2.5(월요일) 비내림

아침 5시 30분 깨스운전(외출)으로 하고,
30분 운동 4가지를 마치고, 개사료와 고양이 사료를 주려고 했으나 고양이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수협에서 계원들에게 나눠준
갈치 머리에 낚싯바늘이 들어있는데 이 바늘을 제거하지 않고 버려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반드시 바늘을 제거해야 되는데 주민들이 고양이를 생각하겠는가. 고양이가 이를 먹게 되면 틀림없이 목이나
입에 걸려 고통스러운 생사를 겪게 될 것이다.

2시경 굴을 까려고 하우스에 빈굴을 바닥에 펴는 작업을 하고 굴을 까기 시작하였다. 비가 계속 오며 바람이 세차게 불어 추워서
굴을 까기가 힘이 들었다. 한참 동안 휴식을 하고 계속 작업.
연화모친(부인)은 5kg, 나는 4kg을 까는 성과를 이루었다.

 수협에서 보낸 명절 선물은 손  낚시로 잡은 은빛갈치다. 갈치입에는 뾰족한 낚시바늘이 들어가있다. 아버지는 낚시바늘이 든 생선찌끼기를 고양이가 먹다가 다치진 않을지, 하필 아침밥을 주려고 나간 사이 고양이가 보이지 않은 게 불안의 징조가 아닐까 우려했다.  다행히 고양이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다른 집에 살던 뚱보 하얀색 고양이까지 우리 집에서 서식을 한다. 아버지는 과거 동물이라면 질색이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변했다.


농어촌이 어우러진 시골은 겨울이면 굴을 주워 깐 뒤  판매를 한다. 이미 부모님은 수 십 년 해온 일이라도 시골일이 고되기는 매한가지. 젊은 시절 우리 어머니는 손이 워낙 빨라서 굴을 잘 까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어머니도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아버지가 4kg을 깔정도면 과거 어머니는 10kg은 거뜬히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와 아버지의 굴 까는 솜씨는 비등비등하다.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깐 굴을 합하면 9kg이니, 어쨌든  결과가 나쁘지 않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깐 9kg 굴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스스로 '성과'라고 자칭했다.


아버지는 올해 1월 1일부터 일기를 썼다고 했다. 일기를 쓴 가장 큰 이유는 꺼져가는 정신을 하나라도 부여잡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내에 나갈 때마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놓고 가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면서 이대로 살다가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돼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난다고 말했다.

버지의 일기장을  한 장 두 장 읽다가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았다. 침 꿀꺽 삼켰다. 감정이 조절이 안되어 숨을 쉬지 않기로 했다. 숨을 참으니 조금 나아졌다.


내가 할 수있는 일은, 지금보다 좀 더나은 다이어리를 아버지에게 선물하는 일. 그런 의미로 아버지에게 드릴 빨간색 타공 다이어리를 하나 장만했다.

 다이어리에 많은  이야기가 담기는 상상을 본다. 그 속에는 뚱보 고양이와  방울이 강아지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다. 아버지가 오래토록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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