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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나무 Feb 15. 2024

칭찬을 의심하는 마음

칭찬받는 걸 좋아한다. 남들이 나의 어떤 부분이든 칭찬을 해주면 대부분 곧이곧대로 감사히 받아들인다. 나의 단점 대신 장점을 봐주고, 거기에 더해 수고스러울 수도 있을 법한데 나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칭찬은 듣고 또 들어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최근 나를 향한 칭찬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긴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마지막 회를 보고 있었다. 특별출연으로 배우 김태희가 나왔다. 그녀는 10명한테 물어보면 11명이 예쁘다고 하는 사람 아니던가. 역시나 화면에서 빛이 나서 감탄하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마침 얼마 전 초등학생 아들이 즐겨보는 만화책 <흔한 남매>에서 배우 김태희가 나온 대사가 있었고, 김태희가 누구냐 물었던 게 기억이 났다.


"환비야, 저 사람이 김태희야. 엄청 예쁘지? 엄마 어릴 때부터 티비에 나왔던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항상 예쁠까."

"아니야, 엄마. 난 안 예쁜 거 같은데."

"그래? 저 정도가 안 예쁘면 누가 예쁜 거야.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난 엄마가 더 예쁜데."


두둥. 진짜냐고 몇 번 물어도 진짜라고 대답하는 아들. 친정엄마는 손자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날려주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어이없을 거고, 아는 사람이 들으면 더 어이없겠지만 아들은 진심으로 내가 김태희보다 더 예쁘다고 힘주어 말했다. 칭찬을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나인데도 이번만큼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쁘다는 칭찬, 무려 예쁨의 대명사 김태희보다 예쁘다는 말을 다른 칭찬과는 다르게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진심을 담은, 온마음으로 칭찬을 해주는 투명하고 예쁜 마음을 그대로 잘 받아 내 마음에 담기만 하면 되는데도 괜히 잘 되지 않았다.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일단 나는 칭찬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미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니 김태희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녀보다 내가 더 예쁘다는 말은 당사자인 나조차도 설득이 안 되는 말이다. 이렇게 몇 줄을 낭비하며 설명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겉치레, 립서비스 등과는 거리가 먼 이제 겨우 아홉 살이 된 아이는 아주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몇 달 전, 우리 집 드레스룸에 짱박혀 있던 우리 부부의 10년 전 웨딩사진을 본 아이는 남자가 아빠인 건 알겠는데 아빠 옆에 있는 저 여자는 누구냐 물었다. 그 여자가 누구긴 누구인가. 당연히 나다. 아이에게 저 여자는 엄마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그 이후 며칠을 더 웨딩사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진짜 엄마 맞냐. 아빠는 그대론데 엄마는 왜 달라졌냐. 엄마는 어떻게? 된 거냐. 아무래도 상하다며 탐정수사를 하듯 눈을 흘기며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가 변한 건 너랑 동생을 키우느라 그런 거라고 답해주었지만 아이에게 명쾌한 대답은 되지 않았던 거 같다. 무튼 찜찜하지만 웃기고, 웃기지만 슬픈 사연이 있었기 때문인지 몇 달 전과는 다르게 김태희보다 엄마가 더 예쁘다는 아이의 칭찬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10년 전 풀메이크업한 나>>>>>>현재 노메이크업의 나>> 풀메이크업한 김태희, 이렇게 이상한 논리라니. 납득할 만한 적당한 이유를 찾는데 실패했다.


타인의 말을 곡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나를 비롯해 친구들도 가끔 그럴 때가 있고 온라인에서도 상대방에게 들었던 말의 의중을 궁금해하는 글을 종종 본다. 자신을 향한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별 의미를 두지 않 말이든 말한 사람의 의도를 씹어보다가 자신을 향한 온전한 축하, 격려, 위로 등을 놓치기도 하고, 상대방의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다가 혼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말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소위 '요즘 애들'은 영악해서 우리 때와 다르다지만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 같지 않다는 분석은 늘 있어왔다. 내가 아이를 둘 키우고 있고, 주변에 다른 아이들도 겪어보니 그럼에도 아이는 아이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티 없으며 대가를 바라고 하는 말이나 행동이 거의 없다. 오히려 본능적이고 즉흥적이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말과 행동을 그대로 믿기로 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빈말뿐인 칭찬인줄 알면서도  기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헌데 나를 우주라 여기는 아이의 진심이 담긴 칭찬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취하면 안 되는 태도다.


그러니까,


난 김태희보다 예쁜 게 맞다. 인정하기로 했다. 아들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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