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발견한 좋은 것- 고양이 (Cat)

고양이가 이런 동물이랍니다

by 보리똥

갓 마른 수건처럼 보송한 너의 털, 충분하게 기분이 좋은 듯 지긋히 눈을 감는 너.

때로는 애교 섞인 표정과 눈빛으로 나를 사로잡곤 하지. 일곱 가지 무지개를 닮은 햇살이 거실 창으로 펼쳐질 때, 하얗고 가벼운 털이 공중에 하나둘 사뿐히 떠나닌다. 엣취! 너로 인한 알레르기.

재채기도 이길 만큼 소스라치게 귀여운 눈웃음에 덩달아 함박웃음을 짓는다.


마흔이 넘어 고양이와의 첫 동거가 시작되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고양이와 함께 한 적이 없었고, 길고양이를 보며 예쁘다며 손짓했던 게 전부였다. 그랬던 내가 휴직 몇 개월을 앞두고 우연히 너를 만났다. 너는 하얀 실뭉치처럼 작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풍선과도 같았다. 비쩍 마른 몸은 그동안 엄마 젖이나 제대로 먹고 자란 건지 모를 정도로 연약해 보였다.

다이소에 가서 네가 머물 작은 집과 분유를 샀다. 아기 대하듯 우유를 주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헤매는 너를 보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품이 그리운 거다. 엄마 살결이, 엄마의 냄새가 그리운 아기 고양이는 모든 게 낯설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우유는 안 먹더니 간식은 미친 듯이 먹는다. '아! 바로 이런 게 네가 좋아했던 음식이었구나'를 깨닫는다.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취향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고, 그렇게 가족이 되어가는 중이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반기는 너. 넓은 거실에서 홀로 지내서 외로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온다. 물 한잔을 마시고 서재 의자에 앉았다. 너는 무릎 위에 올라오더니 금방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다. 때로는 몸을 움찔대는 모습이었는데, 꿈속에서 사나운 호랑이라도 만났을까. 아니면 자신보다 몇 배나 더 큰 고양이를 만나서 경계를 하고 있는 걸까. 허벅지에 안긴 너는 정말 가볍고 따듯했다. 아마도 사람의 어린 시절처럼 네게 가장 소중한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9개월 정도가 지나니 작았던 너는 금방 성묘가 되었다. 몸통은 팔뚝만큼 길어졌으며 주인과 노는 시간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나이가 되었다. 낮에는 온종일 잠을 자는 게 일이고, 반면 어두컴컴한 저녁에는 혼자 뛰어노느라 바쁜 것 같더라. 가끔 늦은 새벽, 우당당탕 쾅쾅 부서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너는 누군가 함께 하지 않아도 혼자 잘 놀고, 잘 자고 잘 먹는 나이가 되었다.


아직도 난 고양이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햇볕을 좋아하고, 잠자는 것을 좋아하며, 간식 츄르를 좋아하고, 그루밍을 즐기는 너는 전형적인 우리 집 고양이라는 것.

나도 햇볕을 좋아하고 잠자는 것을 좋아하며, 빵을 좋아하고, 벌판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가족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심각한 비염을 앓고 있어서 늘 훌쩍이는 게 일상인 사람으로서 어릴 적부터 동물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고양이가 가족이 되는 걸 극도로 반대했던 그가 조금씩 달라졌다.

너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고, 다이소에 가서 츄르를 만 원어치 씩이나 적극적으로 사 오는 사람이 되다니!

남자는 처음 고양이를 보며 수도 없이 재채기를 하더니 점차 횟수가 줄어들었다.

너는 남자에게 어떤 존재인가?

고양이는 극도의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시끄러운 걸 싫어하며, 쉼을 좋아한다. 내가 보기엔 남자 또한 심성이 착하고 화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고양이와 마음의 결이 잘 맞는 것 같다.


고양이는 까칠까칠한 자신의 혀로 주인의 손가락을 핥기도 하고, 때로는 콧등을 핥는다. 손가락은 그럭저럭 참을 만 한데, 아무래도 콧등을 핥을 때는 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혀가 놀랄 정도로 까슬까슬하다. 두리뭉실 예쁜 모습뒤에 숨은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고양이가 핥는 이유는 보호자를 가족처럼 인식하고 애정을 표현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콧등을 핥을 때 무척 이상한 느낌이지만, 참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 가족은 고양이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너의 이름은 '왕동생'.

왜 왕동생이냐고 물으니, 동생이긴 한데 우리보다 금방 클 거니까 '왕'자를 하나 더 붙여서 '왕동생'이라고 한다. 왜 우리도 별명을 지을 때 언니긴 언닌데 가장 큰 언니를 '왕 언니'라고 하는 것처럼, 왕동생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왕동생은 우리 가족이 되었다.

외출하고 들어오면 강아지처럼 먼저 나와서 반겨주는 너. 응아도 담아놓은 모래통에 잘도 싸고, 방 안에서 짖을 일도 없고, 사람만 봐도 무서워서 도망가는 네게 산책도 필요 없으니 우리 가족에게 고양이만큼 적합한 동물은 없는 것 같다.


햇살 좋은 오늘, 왕동생의 하얀 털이 여기저기 날개 단 듯 날아다닌다.

이런 왕동생은 내게 씩 눈웃음을 짓는다. 때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걸 느끼며 하루에도 열댓 번이나 청소기를 돌린다. 덕분에 집이 반짝반짝 윤이 난다.


한참 동안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은 말한다.

"왕동생아! 우리 네가 죽을 때까지 같이 오래오래 살자!"


왕동생이 그러겠노라고, '야야오오옹~~~~' 가늘고 긴 목소리로 화답한다.







글밥 김선영 작가, 글벗들과 함께 1월- 주 3회 글쓰기 참여 중입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월요일은 제7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빵'으로 찾아옵니다.

구수한 '빵'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