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발견한 좋은 것-빵(Bread)

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by 보리똥

빵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고소한 버터향이 후각을 자극하더니,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움이 매력적인 빵이란 세계.


내가 어릴 적, 엄마는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가면 야식으로 매일 빵을 얻어왔다. 자식들을 위해 배고픔을 견디고 가져온 것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눈을 뜨자마자 빵을 먹는 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중 맛있던 빵은 겹겹이 쌓인 층이 신기한 동그란 모양을 가진 '페이스츄리'였다. 빵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30초만 돌려주면 어느새 야들야들한 따듯한 빵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빵의 가운데 부분을 좋아했고, 조금 푸석한 가장자리는 동생에게 주었다. 진짜 속마음도 모르고 빵 가장자리만 찾아먹는 동생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시내에 가면 유일한 동네 빵집이 있었다. 이름은 '리치먼드 제과점'으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 같은 체인 빵집이 성행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동네빵집이 지닌 위상은 꽤 높은 편이었다.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 제빵사가 빵을 만들었는데, 특히 노르스름한 옥수수식빵을 잘 만들었다. 식빵 가운데 부분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데, 이곳에 코를 갖다 대면 진한 옥수수향과 함께 풍기는 발효향이 그렇게 좋았다. 오! 식빵에서만 느낄 수 있는 냄새가 무척 신기했다.

내가 좋아했던 빵은 빵 속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아서 더 맛있던 곰보를 닮은 소보로빵, 넓적한 얼굴만 한 맘모스 빵, 먹고 싶지만 빵이 너무 작아서 참아야 했던 낙엽모양 소시지빵이 최애빵 중에 하나였다. 빵만 실컷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산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엄마가 가져다주는 공장 빵으로 배를 채우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리치먼드 제과점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옥수수식빵이나 소보로, 맘모스 빵을 먹는 기회가 있을 뿐이었다.


이제 먹는 즐거움보다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이 더 좋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달달한 빵보다 소박하고 담백한 빵이 더 좋아지는 중년의 나이가 되다니!


어느 날, 잘 다니던 회사를 덜컥 휴직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를 이용해 제빵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을 가니 빵을 직업적으로 배우는 대부분이 20대 청년들이었고, 모두 또랑또랑하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쾌활해서 어딜 가서든 잘 적응하고 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것 같았다. 그런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색한 빵 만들기를 시작했다. 반죽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서로 각기 다른 성분을 가진 밀가루, 작은 발효종이 가진 위대한 힘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남자 선생님은 경상도 사람이었는데, 순간순간 나오는 사투리가 인상적인 분이었다.

빵을 만들며 어떤 부분에 주의해야 하는지, 왜 실패하는지 자세히 설명을 했지만, 뒤돌아 서기만 해도 까먹는 걸 보니 이걸 머리 탓을 해야 하나, 나이 탓을 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어릴 적 좋아했던 옥수수식빵도 만들었고, 동글동글 탐스러웠던 소보로빵도 만들었다.

반죽이 손에 익질 않아서 끈적끈적 손자국이 생겼고, 밀대 사용이 어색해서 반죽에 울퉁불퉁 과속 방지턱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밀가루 반죽은 곱고 예뻤다. 특히 발효실에서 나와 부푼 모습은 정말 예술 같았다.

얼마나 포근포근하고 탐스럽던지, 마치 과일나무에서 동동 매달린 포도송이처럼 아름다웠다.


한 개의 빵이 탄생하려면 물을 넣어 섞고, 오랜 시간 숙성하고, 모양을 만들면 오븐에 들어가서 맛있는 빵이 된다. 어찌보면 인간의 삶도 빵과 같다. 어린 시절 배움이라는 수분을 통해 성장하고 키 큰 어른이 되기까지 수많은 여정이 함께한다. 나는 어린 시절을 '숙성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멋진 빵으로 탄생하는 걸 경험한다.

완성된 빵의 삶은 짧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지 않다.

다 자란 어른이 됐어도 배움의 수분은 늘 필요하고, 성장이 필요하다. 내가 만일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배움을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끈적한 반죽처럼 가능성이 가득한 어른이고 싶었다. 뒤돌아 서면 뭐든 까먹는 자신을 인정하고, 반죽기와 오븐을 산 뒤 수업이 끝난 후 집에서 연습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20대 청년들보다 먼저 국가 자격증을 취득해 버리다니!


그러나 자격은 기본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마흔을 훌쩍 넘었으니 나는 또 다른 빵이 되기 위해 연습 중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빵이 무엇인지, 빵을 통해 타인의 행복을 엿보는 일이 즐겁고 복 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은 모든 자신에게 달려있다. 젊음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라는 걸 빵을 통해 배운다.


오늘은 부드러운 시폰 케익을 구워야겠다.








글밥 김선영 작가, 글벗들과 함께 1월- 주 3회 글쓰기 참여 중입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 화요일은 제8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음악'으로 찾아옵니다.

피아노에 '도'가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이 '음악'을 이야기하는게 어색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