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켜 준 유일한 것에 대해
"피아노 칠 줄 아세요?"
"아니요."
"악기를 하나라도 다룰 줄 아는 게 있어요?"
"없어요... 없으면 안 되나요?"
피아노에 '도'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음악을 유달리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음악을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학창 시절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가요를 공테이프로 녹음을 해서 친구들에게 선물해 주는 걸 즐겨했다. 요즘 시대에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이지만, 당시 나는 내가 선곡한 노래를 듣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어떤 노래가 좋았는지 친구 이야길 듣는 일이 즐거웠다.
하나의 공테이프에 노래를 10곡 정도를 넣었고, 최신 유행가요보다는 친구들이 즐겨 찾지 않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이 가수는 대체 누구야? 근데 노래 좋다?"
이런 말을 들을 때 하늘을 나는 것보다 더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나이답지 않게 알려지지 않은 노래를 들은 이유는 모두 큰 언니의 영향이 컸다.
언니는 나보다 더 음악적 색깔이 뚜렷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언니가 음악적 재능이 탁월하거나 특별한 편은 아니었지만, 언니가 틀어놓은 노래를 들으면서 가수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한창 '브라운 아이즈' 노래가 유행이었던 시절에,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나얼'보다, 감수성이 예민해 보이는 '윤권'이 더 좋았다.
자, 이참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한 번 떠나보자.
윤권이 작곡한 노래 중 애창하는 노래가 있는데,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그룹, '팀'의 '별'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잠들어 있던 감수성이 촉촉해지는 걸 경험한다. 그리고 윤권의 '갈색머리'는 가을마다 듣는 애창곡이기도 하다. 윤권은 나얼과 비교했을 때, 가창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음악적 분위기나 고요함이 특별함을 자아낸다.
탤런트 이장우 말고, 가수 이장우의 음색도 좋아했다. 가녀리면서도 여성적인, 하지만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가 좋았다. 한 가수가 얼마나 감정을 갖고 노래하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시(時)처럼 들리는 이유도 내가 노래를 좋아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오래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즐겨 듣다가 언니와 함께 대학로에 있는 학전블루에 가서 그들의 콘서트를 처음 보게 되었다. 재밌는 게 처음 콘서트를 간다고 텔레비전에서 아이돌 팬클럽이 하는 것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준비해 갔는데, 공연장에 갔더니 관람객이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밖에 되질 않았다. 덕분에 공연장 맨 앞자리 중앙에 앉아 가수와 눈 맞춰가며 관람했다는 사실. 앞자리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앉아있는 팬이 고마웠는지 가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기도 했고, 공연이 끝난 후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친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
"이 아저씨 누구야? 가수야?"
가사가 있는 노래보다는 피아노 음악이나 기타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는 가사가 있는 음악보다 없는 음악이 집중하기에 좋다. 음악은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거나 글의 주제를 떠올리게 해 주고, 때로는 추억을 소환하게 해 준다. 신기하게도 집중을 할 때에는 음악이 잘 들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 산만해진 기분이 들 때 멜로디가 귀에 들린다.
최근에는 찬양을 자주 찾아 듣는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도 찬양을 즐겨 들었고, 위로와 치유를 경험했다. 30대 끝자락에 아이를 갖게 위해 시험관 시술을 하며 힘든 시기를 겪으며, 문득 찬양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가진 아이가 7주를 견디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회사 출근길 차 안에서 찬양을 들으며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애써 했던 눈화장이 지워질까 봐 옷소매로 눈물을 얼마나 닦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게 찬양은 한바탕 눈물을 쏟게 했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해 준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블로그에 기록을 시작했다. 기록을 할 때마다 다른 음악을 듣곤 하는데, 기록 후 오늘 들은 노래 링크를 걸어두었다. 내가 음악을 통해 이렇게 치유받았으니 누군가도 함께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어떠한 음악적 재능이나, 악기를 다루는 능력은 하나도 없지만, 음악이야 말로 내 삶에 있어서 빛과 같은 존재였다.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음악은 자신을 영감의 세계로 이어주는 안내자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생일을 맞이하여 동생이 평소 갖고 싶던 스피커를 선물해 주었다.
휴대폰으로 들을 때보다 훨씬 웅장하고 고급스러워서 스피커의 효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런 느낌을 아는가. 어느 멋진 커피집을 갔는데 가슴을 후벼 파는 음악이 머릿속을 빙빙 맴도는 느낌을. 바로 스피커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조금 더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그런 느낌.
늦은 나이에 소원이 있다면 꼭 한 번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학교종이 땡땡땡도 좋고,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도 직접 연주하고 싶다. 어릴 적 내가 만져본 악기라고는 '멜로디언'이라고 바람을 휘휘 불면 작은 피아노 건반처럼 생긴 악기였다. 연주를 잘했던 친구들은 두 손으로 반주를 넣어가며 멋진 화음을 자랑했는데, 나는 한 손으로 겨우 아장아장 걸음마만 했다. 하지만 그걸 아는가.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음악적 감성이 풍부해서 좋은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주관적인 평가다)
오래전 음악 채널이었던 ' 벅스뮤직'이란 게 있었는데, 가입자가 상황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여 올리면 좋아요나 댓글수로 랭킹에 올라가는 채널이 있었다. 나는 아침에 들으면 좋은 곡들로 20곡 정도를 모았는데, 그게 반응이 좋아서 긴 시간 랭킹에 올랐다. 돈이 생기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음악은 묘한 매력이 있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은 이렇다"라고 알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언어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내가 연주한 음악을 듣고 환상에 빠지는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글밥 김선영 작가, 글벗들과 함께 1월- 주 3회 글쓰기 참여 중입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 금요일은 제9 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새벽기상(아침)'으로 찾아옵니다.
게을러진 자신을 일으켜주는 '새벽기상(아침)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