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옷가게 사장이 되다

끝나지않은 그녀들 이야기는 계속된다

by 보리똥

옷가게 경험이 없던 내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위치한 곳에 작은 옷가게를 차렸다. 그동안 수 만 번이나 옷가게를 꿈꿔왔다.

'내 가게가 있었으면...' 평생 숙제로만 남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가족들은 한결같이 "직장이나 잘 다니지, 옷가게는 아무나 하나? 너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래, 직장을 잘 다니다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 수도 있겠지만, 결혼을 해서도 옷가게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만 같았다.

나는 하고자 하는 건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포기도 잘하지만 포기 못지않게 시작도 잘한다. 당장 실행에 옮기자.


첫 번째. 가게를 물색하자.(어디든 상관없다. 가게만 할 수 있다면)

두 번째. 타깃을 정하자. (타깃이 어딨겠어. 무조건 가게를 시작하고 생각하자)


인터넷 지역 카페를 통해 머릿속에 상상했던 가게를 발견했다. 작고 아담하고 월세까지 저렴했다. 다른 가게를 둘러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한 번 좋다고 생각한 건 끝까지 밀어붙여야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 가게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이렇게 한눈에 봐도 좋은 가게는 누군가 금방 낚아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화 속으로 들리는 주인 음성은 상냥한 말투였고 나보다 훨씬 젊은 아가씨 같았다. 가게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렸고, 작은 시내에 위치했다. 하필 가게를 보러 간 날이 장날이라고, 하늘이 어떤 일로 노했는지 비가 바가지 쏟아붓듯 내렸다. 이럴 때는 우산을 써도 내리는 비를 피할 길이 없었다. 온몸이 비에 젖어 축축했다.


그 당시 나는 결혼 전이었고, 당시 남자친구(현재 남편)와 함께 가게를 보러 갔는데, 그는 비 내리는 게 예사롭지 않다고, 가게를 시작하지 말라는 하늘의 개시가 아니겠냐고 했다. '쳇! 별 핑계를 다 대는군.' 그는 옷가게 시작을 한사코 말린 사람 중 하나였다. 부모님께서 평생 개인사업을 하다가 결국에는 빚만 떠 앉게 됐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떤 사업이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야. 어떤 각오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안된다는 법이 어딨겠어. 나는 잘할 수 있어'


억세게 내리는 비를 뚫고서야 겨우 가게에 도착했다. 예상한 대로 가게 주인은 20대 중반의 늘씬하고 동그란 눈과 뽀얀 얼굴을 가진 예쁜 아가씨였다. 말투도 어찌나 상냥하던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녀 꿈은 '항공 승무원'이었다. 가게를 하면서 승무원이 되기 위한 자격조건을 갖추려 옷가게를 하며 공부하고 있었다. 만일 그녀가 승무원이 된다면 남성 승객들은 그녀에게 자연스레 삼촌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게 짓던 미소까지 아름다운 그녀였다. 그녀가 어떤 말을 꺼내도 마음은 살살 녹아내려갔다. 같은 여자 가봐도 정말 아름다웠던 그녀. 세상은 참 불공평하기도 하지.


그녀가 운영한 가게 주 타겟층은 40~50대였다. 주로 큼지막한 남방이나 티셔츠가 주를 이루었고, 전체적인 색상은 어두운 색이 많았다. 50대여도 고상하거나 단정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 중년층에게 안성맞춤인 옷이었다. 그녀는 본인이 거래하는 모든 거래처 정보를 전부 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가게를 시작해도 아무 걱정이 없다는 말까지 첨부했다. 그녀는 시설비, 거래처 정보 면목으로 500만 원을 요구했고 나는 경험 없이 시작하는 것에 비해 그 정도쯤은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나는 기필코 가게를 하고자 고집을 부렸다. 한 번 보고 왔던 작은 가게가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에 회사 업무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목표한 대로 밀어붙여야 했다. 옷 가게를 하기 위해 퇴사를 하자!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라면,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다.

"과장님,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아니, 갑자기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게... 원래 제가 옷가게를 하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어서 얼떨결에 계약을 했거든요."

"그렇군.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과장님 말마따나 하고 싶은 건 하고 사는 게 맞는 말이긴 하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온 삶을 투자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처럼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고 살지 못한다. 소심하기도 하거니와 현실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살 수밖에 없다. 난 그런 삶에 회의를 느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지금, 옷가게를 시작하는 일이다.


당시 나는 운전면허가 있었지만 회사-> 집, 집-> 회사만 오고 가는 실력이었다. 회사 출근하는 것조차 겁이 나서 주행 연수를 몇 시간 받고 난 후에야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옷을 사입하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동대문을 찾아간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아니, 모험이다 못해 큰 용기를 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남자 친구는 이런 운전실력으로는 동대문에 동자도 근처에 가지 못하고 온 서울 시내를 맴돌 것이라 했다. 하긴 운전을 하며 직진은 잘했는데 차선 바꾸기가 어려웠고, 내비게이션을 보고 가는 것도 서툴러서 매번 좌회전, 우회전도 놓치고 말았다. 시골 운전도 이 정도니 서울 운전은 불 보듯 뻔했다.

하는 수없이 남자 친구는 직장을 다니며 본인이 직접 함께 옷 사입에 동참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도저히 내 운전실력을 믿을 수 없겠다는 것이다. 올커니! 사입을 하러 가는 건 이제 남자 친구만 믿으면 되는 일이었다.


가게를 시작하려 하니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는 날들이 이어졌다.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는 내게 시설비 500만 원을 받더니 가장 아꼈던 키티 계산기를 선물해 주었다.

"이 계산기가 돈을 벌어줄 수 있는 운을 줄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호호호" 온통 핑크색뿐인 계산기는 둔탁한 숫자 눌림이 조금 거슬렸지만, 그녀의 말처럼 성공할 수 있는 운이 담긴 계산기라 믿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제 그녀도 여길 떠났고, 대신 내가 이 자릴 지키는 옷가게 주인이 되었다.

어떤 손님이 이 가게를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찾아가는 일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호호호. "

나도 그녀처럼 예쁜 미소를 띠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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