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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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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Oct 24. 2021

수탉은 왜  엄마 볼을 조았을까?

엄마와 수탉이 살아가는 법

엄마는 자꾸만 땀이 흘렀다. 사나운 수탉이 좋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가장 조심스러운 순간이다.


시골 닭장 안에는 암탉 세 마리, 수탉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계란을 사 먹지 않기 위해 기른 닭들은 서로 번갈아 가면서 "나 알 낳았어요! 꼬꼬꼬 꼬꼬댁!" 하며 소리를 질렀다. 집안일을 하던 엄마는 닭 소리를 듣더니 냉큼 닭장 안을 들여다보니  암탉은 계란을 낳은 후 온기가 가시지 않기 위해 가슴으로 품고 있었다. 문제는 수탉이다. 집에서 사납기로 소문난 이 녀석은 주인이고 뭐고 없다. 녀석은 먼발치서 바라보는 엄마를 보며 윽박지르는 시늉을 냈다.

'무슨 수를 써서 계란을 꺼내야 하지? 저 녀석이 문젠데...'

엄마는 쌀을 한 움큼 가져와 가장 먼 곳으로 뿌렸다. 수탉은 사납기도 하지만 식탐도 세서 암탉을 제치고 가장 먼저 쌀을 먹으려 날렵하게 달렸다. 이때다! 엄마는 수탉이 방심한 틈을 타서 수탉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계란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쌀을 먹고 난 후 계란을 가져가는 엄마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탉은 아쉬운 눈빛을 보였다.

마치 평소에는 보초를 잘 서다가 소변을 누러 변소에 간 사이에 도둑이 든 기분 같은 표정이다. 수탉은 이내 닭똥 밟은 셈 치고 포기하자는 듯 암탉 사이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나 알 낳았어요! 꼬꼬꼬 꼬꼬댁! 이번엔 큰 알 같아요! 꼬꼬댁!"

엄마는 암탉이 우는소리는 자다가도 번쩍 일어날 정도로 귀가 밝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계란을 낳은 후 시간을 지체하면 배가 고픈 암탉은 자신이 낳은 계란을 쪼아 식사 대용으로 이용하곤 했다. 그러니 엄마에게는 계란을 가져와야 할 타이밍이 중요한 셈이다. 하지만 늘 엄마를 예의 주시하는 수탉이 문제다. 어제 당한 억울한 감정에 오늘은 조금 더 강력한 오기가 생겼을 터. 엄마가 닭장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수탉은 쭉 뻗은 꼬리털을 한껏 세우고, 새우같이 작은 눈을 크게 치켜뜨며 엄마를 노려봤다.

"으메! 기죽어! 저 녀석 또 저러네." 엄마는 어제처럼 쌀을 한 움큼 퍼 와서 수탉이 방심한 틈을 탔을 때 계란을 가져오려 했다. 쌀을 바닥에 뿌리며 닭장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가던 찰나 수탉은 뿌린 쌀을 몇 번 쪼아 먹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엄마에게 힘껏 달려들었다. "아이고야!"

수탉은 그렇게 엄마 오른쪽 볼 중앙을 보란 듯이 쪼았고, 엄마 볼에서는 수탉이 쪼은 상처로 피가 흘렀다.


 아빠는 엄마 상처를 보더니 화가 단단히 났다.

​시골에서 기르는 동물 중 닭은 가장 온순한 동물에 속한다. 소나 개, 오리 등을 오랫동안 길러봤지만 주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나운 동물은 우리 집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개가 주인을 물었다면 당장 개장수에게 팔아넘겼을 테지만 황당하게도 이번에는 사나운 닭이다. 아빠로선 닭이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중대 사건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개처럼 닭을 개장수에게 팔 수도 없는 노릇. 아빠는 단단히 각오를 했다. "그냥 닭을 잡아먹자!"

부모님은 닭을 오래도록 길렀지만 육용으로 기른 적은 없었다. 오로지 계란을 얻기 위한 용도일 뿐 그 이상도 아니었다. 우선  닭을 잡기 위해 펄펄 끓는 물을 큰 플라스틱 그릇에 담 왔다. 그러고는 수탉을 끈으로 꽁꽁 묶었다. 옴짝달싹도 못하는 닭은 낯선 광경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꼬꼬 꼬꼬 이게 뭔 일이랴? 뜨거운 물로 목욕하라는 것도 아니고..."

아빠는 시끄럽게 호들갑 떠는 수탉을 그릇에 집어넣었다.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닭은 안간힘을 다해 입수하지 않겠다고 난리였지만 엄마는 아빠를 도와 닭을 물속에 넣었다. 어떠한 생명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 없고, 닭이나 사람이나 죽을 때가 아니면 어떻게든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 이상한 노릇이다. 아무리 물에 담가도 닭이 눈을 감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 생각해 낼 수 있는 게 닭 모가지를 비틀거나 식칼로 모가지를 자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야만 엄마 아빠가 원하는 닭의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시골 분이지만 좋은 말로 하자면 선비 스타일이었다. 닭을 잔인하게 죽이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 "뭐 이렇게 끈질긴 닭이 다 있나? 닭고기 먹기도 힘들구먼! 허허허"

닭잡기 프로젝트는 아빠의 포기로 시원치 않게 막을 내렸다. 그날 이후 수탉은 긴 꼬랑지 털을 홀랑 잘려 멀리서 보면 암탉처럼 초라해 보였고 기가 죽어 사람을 보면 슬슬 피했다. 아마도 계속 사나운 수탉으로 살았다면 아빠는 동네 사람에게 잡아먹으라고 공짜로 주었을 것이다.


"꼬꼬꼬 꼬꼬댁! 나 오늘도 알 낳았어요!"

어김없이 엄마는 닭이 우는소리를 듣자 얼른 닭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오늘은 계란만 가져오던 때 하고는 다르게 웬일인지 닭장 문을 활짝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닭들이 우르르 몰려나왔고 마지막으로 수탉이 나왔다. 마당에는 여린 초록색 풀들이 우거졌는데 닭들은 천국을 만난 것처럼 풀을 쪼아 먹느라 바빴다. 닭장 안에 들어간 엄마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따뜻한 계란을 꺼내왔다. 그동안 계란만 가지러 갔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엄마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고 닭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평온한 산책 중이다. 킁킁킁, 코 속을 자극하는 싱그러운 풀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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