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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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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Oct 24. 2021

엄마와 바둑이

바둑이도 엄마가 되었다

"바둑아! 이리 와. 아이고 예뻐라!"

우리 집 대문 앞에는 예쁜 강아지가 살고 있어요. 강아지는 어릴 때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고, 가족 중에 나를 가장 잘 따라요.


바둑이가 어릴 때는 목 줄이 묶여있지 않아 함께 동네를 뛰어다녔어요. 어느새 손으로 안아줄 수 없을 만큼 컸을 때 엄마는 두꺼운 목줄을 바둑이 목에 채웠어요. 이제는 아침마다 반갑다고 꼬리 치며 달려들던 바둑이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요. 그날 이후 눈을 뜨자마자 바둑이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그곳에서는 바둑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어요. 기분이 좋은 바둑이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다며 볼을 핥아주었어요. 바둑이 혓바닥이 스칠 때마다 간지러워 까르르 웃음이 터져버렸뭐예요. 

"우리 바둑이! 오늘 추웠지? 나와 함께 자면 따뜻할 텐데... 방에다 재울 수도 없고... 네가 방에 들어오면 아빠는 야단 난다."

"아이고, 또 개집에 들어가 있는 거야? 더러우니 들어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엄마는 바둑이 집에 들어가 있을 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잔소리를 퍼부어요. 나는 바둑이 집이 제일 좋은데, 무엇이 더럽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바둑이도 엄마 잔소리를 눈치챘는지 얼른 밖으로 나와서 엄마를 맞이하며 꼬리를 흔들었어요. '쳇! 매일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뭐가 그리 좋다고 꼬리까지 흔들어!'

엄마는 아침마다 전 날 저녁에 먹고 남은 밥찌꺼기를 가지고 바둑이 그릇에 부어주었어요. 배가 고팠던 아침, 엄마가 주는 밥이 반가워 꼬리를 쳤던 건데, 나는 한 번이라도 바둑이 밥을 챙겨준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바둑이에게는 엄마가 기장 소중할 수밖에.


어느 날부터 바둑이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어요. 하얀 털을 가진 남자 친구는 쭉 뻗은 늘씬한 다리에  체구가 좋은 강아지였어요. 바둑이도 백구가 좋은지 꼬리를 흔들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어요. 나는 바둑이가 여자였는지 남잔지 관심이 없었는데 이날 보니 영락없는 철부지 여자였지 모예요. 둘만의 달콤한 로맨스는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아요. 내가 학교를 다녀온 사이 나 몰래 결혼식을 치른 백구와 바둑이. 그날 이후 바둑이의 식탐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눈에 띄게 배가 부풀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두면 바둑이 배가 언제 터질지 몰라 걱정이 됐어요. "엄마, 바둑이 배가 더 커지면 빵! 터져버리는 거 이 닐까? 병원도 데려갈 수 없는데 죽기라도 하면... " 걱정스러운 내 말에 웃음만 보였던 엄마는 바둑이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치의 선생님 같았어요.

"바둑이도 엄마가 돼가는 과정이란다. 너도 엄마 배가 남산만 할 때 세상에 나왔거든!"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 아침.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침마다 바둑아! 부르면 반갑다고 꼬리 치며 나와야 할 녀석이 코빼기도 비치질 않았어요. 어제저녁 배가 터질 것 같더니 혹시 간 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바둑이 집을 살폈어요. "우와! 바둑이 새끼 낳은 거야? 근데 이게 몇 마리야? 하나, 둘, 셋, 넷,... 열 마리?"

바둑이를 닮은 털과 아빠 백구를 닮거나 그렇지 않은 새끼도 있었어요. 작고 보송보송한 새끼들은 엄마 젖을 찾느라 낑낑대느라 바빴고 바둑이도 새끼들 몸을 핥아주느라 내가 온 것도 잊은 듯했어요.

"엄마! 바둑이가 새끼를 열 마리나 낳았어. "

엄마는 슬리퍼를 신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얼른 바둑이에게 달려갔어요. "바둑이 상태를 보니 새끼를 낳을 것 같더라니... 아이고 새끼들이 많기도 허네. 바둑이 고생했다" 추운 겨울 날씨에 바둑이가 걱정되어 엄마와 함께 근처 논에서 볏짚을 가져와 바둑이 집 바닥에 깔아줬어요. 볏짚은 바둑이와 새끼들에게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게 해 줄 거예요.

아침마다 바둑이 집에 들어가 함께 노는 게 즐거웠는데 이제는 집이 좁아져 그럴 수가 없어졌어요. 아빠가 지금보다 더 큰 집을 구해준다면 가능 일. 하지만 이런 마음을 눈치챈 엄마는 내게 말했어요.

​"바둑이 새끼들은 네가 크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랄 거란다."

분명 엄마 말처럼 바둑이 새끼들이 나보다 더 빨리 자라 아장아장 걷는 시기가 찾아오겠죠. 그때가 되면 내가 대장이 되어 이 녀석들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뛰어다닐 거예요.

우와! 그날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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