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남친 기다리는 말랑말랑 고무신 이야기

안 기다리면 당장 탈영한다!

by 보리똥


"나라의 부름을 받고 성실하게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충성!"

"2년 2개월, 눈 딱 감고 일어나면 금방 지나갈 거야. 잘 기다릴 수 있지?"


우리가 만난 지 정확히 1년 만에, 그는 기다려달라는 당부를 한 뒤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떨어지는 손끝에서 뱅그르르 돌다가 이내 가을 낙엽처럼 툭 떨어졌다. 진짜 이별이었다.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없고, 늘 귓가에 맴돌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없다는 현실이 믿어지질 않았다. 보고 싶다고 할 때면 쪼르르 달려와 앳된 미소를 날리던 그가 정말 이제는 군인이 된 것이다. 충성! 함성소리와 함께 그는 멀리 떠나버렸다.


그가 떠난 이후 당시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에 '곰신을 기다리는 모임'에 가입했고, 군화를 먼저 보낸 선배들에게 군대 상황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입대 후 휴가 일정과, 면회 때는 어떤 음식과 준비물을 가져가야 하는지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됐다. 유독 길치였던 나는 면회 가는 길을 꼼꼼하게 메모해두었다. 곰신 카페는 같은 마음으로 군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회원 중 누군가 휴가를 나올 예정이거나 제대를 앞두고 있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 그저 나는 그가 떠난 날짜를 체크해 놓은 다이어리만 연신 바라볼 뿐이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는 따뜻한 패딩을 입고 나란히 거리를 걷고 싶고, 꽃 피는 봄이 오면 살랑살랑 코 끝을 간지럽히는 봄 냄새를 맡고 싶었다. 햇볕 쨍쨍 무더운 여름이 오면 해변에서 일렁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알록달록 고운 낙엽이 물드는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을 잡고는 너처럼 귀한 사람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겨울, 계절이 바뀌면 너를 만날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계절을 세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흐르겠지.


군대에 간 그에게 첫 편지가 도착했다. 꼼꼼하게 밀봉된 편지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뜯었다. 편지 내용 중간 정도쯤 종이에 묻은 익숙한 볼펜 똥을 보니 모나미 펜일 것이다. 그가 잡은 펜은 종이와 맞닿아 스케이트 타듯 사각사각 그리움을 그려나갔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꼭 기다려줄 거지? > 석 장의 편지지 내용은 한결같이 같은 문장만 반복되었다. 글쓰기는 젬병인 그가 편지를 쓴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고,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던 그가 군인이 되니 로맨티시스트가 따로 없었다. 아니, 차라리 시인이라 해도 될 정도로 낭만 가득했다.


이제 나도 답장을 써야지. 그를 위한 편지지를 미리 준비해뒀다. 좋아하는 초록색 펜은 편지지와 안성맞춤이었다. 펜은 너무 굵거나 진하게 나오지 않았고, 적당히 얇은 심에 조금은 거친 느낌이 나는 볼펜을 선호한다. 펜촉이 부드러우면 머릿속에서 생각할 여유 없이 바로 옮겨 적어야 하지만, 거친 느낌의 펜촉은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는 나를 기다려준다. 그래.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을 꺼내보자. 우리가 처음 만난 설레던 마음, 함께 떠났던 여행 모든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결국 사랑이다. 다시 만날 날을 꿈 꾸고 기다리겠다는 마무리로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우표를 잘라 풀 대신 침을 쓱 바르고 난 후 손가락으로 단단히 붙였다. 편지를 읽고 기뻐할 그를 떠올리니 미소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결전의 날! 그토록 기다리던 그가 첫 휴가를 나온 날이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짧았던 목은 기린 목처럼 길어졌다. 매일 캐주얼을 즐겨 입던 그는 평소 입지 않던 롱 코트에 짧은 머리는 더 빳빳해지라고 무스를 잔뜩 발라 힘을 주었다. 이건 한눈에 봐도 신경 쓰고 입은 '초짜 군인'같아 보였다. 게다가 나를 보며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그를 보니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나는 그가 귀여운 행동을 할 때마다 까까머리를 손으로 비비적대는 게 좋았다.


"군대 가더니 아저씨 다 됐다!"


"그럼! 이제 아저씨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아니, 이제 첫 휴가를 나와놓고 얼마나 기다렸다고 고맙다니! 앞으로 기다린 날보다 기다릴 날이 더 많은데 여간 부담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서 못 보던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휴가 며칠이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지만 우리 이별은 참 가혹했다. 헤어질 시간, 제 갈 길로 터벅터벅 걷는 그의 발자국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갈수록 아쉬움이 가득했다. 두 번째 이별이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걸 알았는지, 이후 그는 걸핏하면 휴가를 나오기 시작했다. 기다림이 지쳐갈 때 즈음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휴가를 나왔고, 그는 곰신 정신 교육하듯 "잘 기다릴 수 있지? 아자 아자 파이팅!" 외치며 돌아갔다. 언젠가부터는 휴가 날짜를 다이어리에 체크하지 않게 됐고, 나올 때가 되었나? 생각하면 어김없이 그가 불쑥 나타났다.

군인이긴 한데 몇 달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 같은 군인이 내 남자 친구였다.


그렇게 2년 2개월은 순식간에 흘렀고, 제대 날이 다가왔다. 나 역시 곰신 카페에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다른 카페와 달리 곰신 카페는 가입 후 입대한 남자 친구가 제대를 하면 카페도 탈퇴를 한다. 그래도 곰신을 신고 있을 때가 좋았다. 아마도 우리가 함께 한 날 중 그를 가장 사랑한 시간이었고, 그가 날 사랑한 시간도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 말랑말랑 고무신을 신고 그에게 달려가 사랑한다고 속삭인 그때가 사뭇 그립다.


물론 지금 다시 고무신이 되고 싶냐고 한다면 이제는 사절이다. 기다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당신 잘 좀 하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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