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연상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여자가 쓰는 남자 이야기

by 보리똥


내 나이 스무 살, 그녀 나이 스물세 살에 우린 처음 만났어요. 가수 김형중에 '세 살 차이' 노래 아시죠?

어머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은 오래전 노래라 모를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면 유튜브에서 <세 살 차이> 노래를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세 살 연상 연하 커플이 얼마나 달달한 연애를 하는지 노래만 들어도 심쿵하거든요! 제가 그랬어요. 그녀를 본 순간 이 여자다 싶었거든요.


유난히 수줍음이 많은 저는 그녀를 좋아해도 쉽게 고백할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그녀 나이가 많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어떨 때는 개구쟁이처럼 웃고 떠들다가 누가 봐도 놀랄 만큼 밥을 많이 먹이 먹는 그녀를 보면서 궁금한 게 많아졌어요. 어느 날 친한 누나에게 그녀에 대해 듣게 됐어요.

" 남자 친구는 없고, 듣기로는 먹는 걸 좋아한대. 처음이라 어색하니까 좋아하는 걸 선물해 줘도 좋을 것 같아." 매일 먹는 게 부실할 수 있으니 다음날은 맛있는 김밥을 선물해 줘야겠어요.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알고 싶지만 천천히 알아가면 될 거예요. 급하게 서두르다가 그녀가 나를 멀리할 수도 있잖아요. 지금까지 이성을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처음에는 급 관심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시들해졌거든요. 뜨거운 사랑도 좋지만, 일정하게 오래도록 따뜻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


아! 오늘 그녀가 출근하지 않았나 봐요. 확인해 보니 치과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고 해요. 오후쯤 되어 그녀를 볼 수 있었고, 점심을 먹지 못했을 테니 누나에게 김밥을 전달해 달라고 했죠. 누나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어요.

"야! 사랑니를 한방에 두 개나 뽑았단다. 아파서 김밥 못 먹겠데. 어쩌지, 대신 내가 잘 먹을게. 고맙다 동생아!"

김밥을 주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사랑니를 뽑은 그녀 상태가 더 궁금했어요. 아프지는 않았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더 알고 싶었지만, 알다시피 저는 소심한 성격이라 먼저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팀 회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다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시끄럽고 활기찬 분위기였지만, 유독 그녀만은 술을 마시지 않는 모습이었어요. 알고 보니 그녀는 술만 마시면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술을 못 마신다고 해요.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은 게임을 하자고 했어요.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은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폭탄주를 먹어야 할 운명이었어요. 지켜보니까 그녀는 술도 못 마시지만, 게임 실력도 젬병이더라고요. 게임 이해력도 좀 느려서 어김없이 벌칙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였어요.


둥둥 둥둥! 게임이 시작됩니다. 그녀가 벌칙을 받을게 뻔하니 내 가슴까지 벌렁벌렁해지기 시작했어요.

예상대로 그녀가 당당히 벌칙 주인공이 되었고, 폭탄주는 그녀 앞에 놓였어요. "마셔라 마셔라!" 운을 떼는 선배들 사이에서 그녀를 구출해 줄 사람은 저 밖에 없었어요.


"폭탄주는 제가 먹겠습니다. 이런 건 여자가 먹으면 안 되죠."


"어우! 이런 달달한 로맨스는 또 뭐지? 흑기사 흑기사?!!" 선배들의 야유를 뒤로한 채 폭탄주를 벌컥벌컥 마셨어요. 꺽! 트림이 저절로 나오면서 창피한 마음에 저 역시 그녀처럼 홍당무 얼굴이 되어 있었어요.

사실 홍당무가 되면 좀 어떤가요?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했어요.


우리는 회식을 계기로 연락 하며 지냈고, 처음 데이트를 한 날이었어요. 하필 그녀는 데이트 첫날부터 미용실 파마 스케줄을 잡았어요. 약속시간이 지난 이후 그녀는 부랴부랴 나타났어요. 꼬불꼬불 파마를 상상했는데, 머리카락을 쫙 펴는 파마를 했다고 해요. 그녀 머리카락이 얼굴과 귀에 촥 달라붙어있는데 좀 거추장스럽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그녀 모습을 떠올리면 둥그런 얼굴형에 긴 생 머리를 흩날리는 모습이에요.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그녀 머리에서 향긋한 샴푸 향이 나요. 과일 냄새 같기도 하고 꽃향기 같기도 한 게 가슴 설레게 해요. 그녀가 뾰족한 얼굴형이었다면 새침한 여우 같은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동글동글한 얼굴형이라 다행이에요.


오늘은 그녀와 함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갔어요. 평소 먹지 않던 스테이크를 썰고, 후식까지 먹었어요. 그녀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 편안한 모습이었어요. 훌륭한 분위기에 멋진 말로 그녀를 환하게 웃게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어요. "나는 이런 편한 분위기가 좋더라. 우리 집에도 이곳 같은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지?"

훗 날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그녀를 위한 멋진 공간을 만들어 줄 거예요. 좋은 음악과 따뜻한 차 한 잔을 하기에 좋을 공간을요. 만난 지 몇 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우습잖아요? 그래서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어요. 어리숙하고 숫기 없는 연하 남자 친구를 이해해 주는 그녀가 고마웠어요.


레스토랑을 나와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주는 날은 추운 겨울이었어요. 만난 지 처음으로 그녀 손을 살포시 잡았더니 예상대로 꽁꽁 얼어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그녀 손을 나의 주머니에 집어넣었어요. 어느새 따뜻한 온기가 금세 퍼졌어요. 추운 날씨였지만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어요.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면 더없이 행복할 거예요.


드디어 그녀 집 앞까지 도착했고,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에요.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을 약속했고, 아쉬운 마음 가득했어요. 헤어지자마자 전화로 밤을 지새울 테지만, 얼굴을 보는 것만큼 좋지 않았어요. 그녀를 알지 못했던 시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기할 정도였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바람처럼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지금처럼 헤어질 일도 없고 평생 함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은 늘 핑크빛이에요. 그녀에게 어떤 프러포즈를 해야 할까요? 박력 있는 남자처럼 멋지게 프러포즈하는 건 어렵겠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프러포즈를 하고 싶어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녀 얼굴만 보이고, 밤하늘을 바라봐도 온통 그녀를 닮은 별들뿐이에요.

어쩌죠? 저 아무래도 사랑에 빠졌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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