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 해 줄래?

여자가 쓰는 남자 이야기

by 보리똥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1년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만난 지 벌써 햇수로 9년째다.

그녀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도 네다섯 살 꼬맹이가 있을 나이에 아직까지 연애라니. 나는 몇 년 전부터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반대로 이렇게 연애만 하고 있다. 그녀는 나와 다르게 연애는 좋아했지만 결혼은 싫어했다. 말 안 듣는 장난꾸러기 아이들, 가족들 뒷바라지에 자신은 어디 하나 보살피지 않는 엄마의 삶이 싫단다. 낡은 티셔츠를 입고 아이들이 먹고 남은 찬 밥을 먹는 게 싫고, 내 부모가 아닌 시부모님을 대하는 게 어려워 결혼을 반대했다.


하긴 나는 아들만 둘인 장손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내가 장손이라고 부담을 주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와 친척들은 제사를 건너뛰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우리 집은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제사만큼은 상다리가 휠 정도로 음식을 준비했다.

1년 중 제사만 네 번, 명절까지 합하면 총 여섯 번의 제사를 지내던 엄마였다. 우리 집 상황을 전해 들은 그녀는 다른 것보다 제사 지내는 게 가장 싫단다.

우리 엄마처럼 제사를 여섯 번이나 지낼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제사는 네 번만 지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께 건의할 수 있는데 그녀의 단호한 표정을 보니 그것도 소용없는 일인 것 같다. 그렇다고 제사를 아예 안 지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결혼식을 몇 번이나 미루다가 그녀 나이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결혼 승낙을 받았다. 나는 멋진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지내온 세월이 벌써 10년이 돼간다. 그녀는 프러포즈는 생략해도 된다고 하였다.


결혼을 하기 위해 부모님들을 모시고 상견례를 했다. 상견례 장소는 집 근처 조용한 한정식집이었다. 음식이 코스별로 조금씩 나왔지만 양가 부모님들은 첫 만남이 어색했는지 맛있는 음식이 나와도 서로 눈치만 볼뿐이었다.

그러다 말주변이 좋은 우리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고, 저희 아들과 형님 딸이 만난 지 햇수로 10년째랍니다. 좋든 싫든 이젠 보낼 때도 된 거쥬?"

붙임성 좋게 형님이란 말을 먼저 꺼낸 아버지는 그녀 아버지에게 웃음을 보였다.

"둘이 좋다는데 얼른 결혼시킵시다. 시간 끌 필요 있습니까?"

"자자! 형님 음식이나 맛있게 먹고 이야기 나눕시다. 형님 먼저 이거 드시소."


경상도가 고향이지만 충청도에서 오래 살아온 아버지의 말투는 기분에 따라 지역별 사투리가 나왔다. 아버지의 한마디로 서먹했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양가 어머니들의 대화의 중심은 결혼 날짜는 언제가 좋을지가 관건이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했다. 젊은 시절 잘 살아보겠다고 이것저것 괜찮은 사업이라 하면 불처럼 달려들던 맹수 같았다. 그 옛날 사채업까지 뛰어들면서부터 제때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들로 인해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오죽하면 살 집이 없어서 여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가난이란 말을 가장 싫어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 엄마는 아버지와 살면서 가장 고생을 했던 분이다. 아들 둘을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닌 분이 우리 엄마였으니까. 그러니 그녀에게 결혼만 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고생 안 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는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결혼만 하면 버젓한 집 하나 장만해 줄 수 있는 형편도 될 수 없을뿐더러 학벌도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그녀는 나와 결혼한다면 우리 엄마처럼 고생문이 훤하다.


그동안 그녀에게 선뜻 결혼하자는 말을 망설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멋진 남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낭만 있는 프러포즈도 하지 못하는 소심한 남자라서 더욱 미안하다.


오늘은 일을 마친 후 동네 금방에 들렀다. 금방에는 반짝이는 예쁜 반지도 많았지만, 모양 없는 심플한 14k 반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더 예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할게.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더 비싸고 좋은 반지를 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웠지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녀를 위한 반지는 내 마음처럼 반짝였다. 이렇게 예쁜 반지를 더 예쁘고 고운 손가락에 선물할 생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4월의 신부님께 이 반지를 선물한다. 우리 지금처럼 한 평생 사랑하면서 살자!"

그녀는 반지를 보며 웃음을 보였다. 짐작한 대로 그녀가 기뻐한다.


멋진 프러포즈를 기대했을 그녀. 하지만 반지 하나에도 감동했고, 지금까지 본 그녀 모습 중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그녀에게 든든한 남자가 되고 싶다.


"당신, 나와 결혼 해 줄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