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우리는 여행 중입니다

by 보리똥


5장. 우리는 똘똘 뭉친 가족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가수 김현철에 <춘천 가는 기차> 노래를 좋아한다.

무료하고 지친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이 노래를 들으면 파도처럼 일렁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코끝이 시큰거리는 느낌이다. 나이가 든 지금도 시간만 흘렀을 뿐, 이십 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바로 지금, 여행 계획을 세워야겠다. 남편과 나는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 수많은 펜션 사진을 보며 포근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떠날 목적지는 강촌이다. 말로만 들었던 강촌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 고있었다. 어떤 매력이 있는 곳이길래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일까 궁금했다. 비록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아니지만 춘천으로 향할 수 있다는 마음만큼은 칙칙폭폭 설렘 가득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 겨울이었다. 내가 사는 곳보다 강원도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욱 낮았다.

입가에서는 하얀 김이 폴폴 나왔고, 얼굴은 찡그린 눈사람처럼 일그러져있었다. 우리가 찾은 펜션 위치는 강촌역을 지나자마자 가장 초입에 있었다. 목적지가 강촌 진입로 가까운 곳에 있는 건 좋았지만, 뭔가 강촌의 운치를 느끼기에는 사뭇 아쉬운듯한 위치였다. 강촌 중간이나 끝자락이었더라면 좋을걸. 게다가 펜션 건물은 상가건물이었다. 1층은 젊은이들로 바글바글한 분위기 좋은 술집이었고, 펜션 앞으로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였다.


술집에 들어가서 주인에게 2층 101호를 확인한 후 열쇠를 받았다. 짧은 거리였지만 숙소로 향하는 길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온몸이 떨려왔다. 현관문을 열고 바라본 펜션 광경은 인터넷으로 봤던 사진속 모습과 달랐다. 분명 같은 건물은 맞는데 우리가 본 다정한 느낌이 아니었다. 1층 술집의 따뜻했던 풍경은 뒤로하고 펜션은 말 그대로 여관방처럼 솔직한 조명에 원룸 자취방에서 쓰던 싱크대가 놓여 있었다. 방 크기도 딱 자취방이었다.



"아니, 이 돈을 주고 여길 왔단 말이야? 이건 사기다 사기!"


내 입에서는 불만 덩어리가 눈 내리듯 쏟아졌고, 그 소리를 듣는 남편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마트에 들러 고기와 야채를 잔뜩 사 온 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청결해야 할 싱크대는 여기저기 물때가 가득해서 도저히 저녁밥을 해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먹어야겠는걸! 나가서 먹을까?"

"오케이! 뭐니 뭐니 해도 춘천 하면 닭갈비. 나가자!"


강촌은 저녁시간임에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활기차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단둘이 떠난 여행이지만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곳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인연들이 틀림없었다.


사람들 구경으로 넋이 나간 나를 보며 남편은 저기 보이는 음식점이 어떻겠냐고 했다.

주차장도 넓고 가게 규모도 꽤 커 보이는 음식점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동그랗고 넓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휘익 두르던 아주머니. 이어서 닭갈비보다 더 가득 들어있는 뽀얀 양배추와 고구마, 새빨간 소스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아주머니는 가스불은 강 약을 조절하며 닭갈비와 야채가 알맞게 익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다 익었네요. 약불로 줄일 테니까 조금 있다가 가스불을 꺼주세요."


닭갈비는 뜨거워야 제맛이다. 지글지글 끓는 닭갈비를 한입 베어 먹고 뜨겁다며 호호 불어 가는 모습까지도 맛있는 풍경이다.

남편이 극찬했던 얼음이 알싸하게 동동 떠있는 동치미 국물은 또 어떻고. 닭갈비를 먹을 때는 뜨겁고 맵다가 동치미 국물을 한 잔 들이켜면 순식간에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것이 마치 사계절을 맛보는 순간이다. 봄은 건너뛰고 여름 가을 겨울을 입안 가득 담는 맛이란. 춘천 닭갈비가 이런 묘한 매력을 가진 음식이었다. 강촌에서 먹는 닭갈비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참맛이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술 한 잔 마신 사람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그사이 새하얀 눈은 더 소복이 내려 발목까지 차올랐다. 걸을 때마다 차가운 눈이 신발 속을 파고들었다. 맑은 콧물이 흘러나오려다가 춥다며 다시 콧속으로 쏙 들어갔다. 이런 날 잘못 흘러나온 콧물은 고드름처럼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다.


음식점 주변에는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 굴리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이내 눈싸움으로 번지는 모습이 개구쟁이들이 따로 없었다. 추운 날이었지만 젊은이들 모습은 활기찼다. 강촌은 그 모습 자체로도 좋았고, 건강한 곳이었다.


뻔쩍뻔쩍 멋스러운 숙소를 꿈꾸며 떠난 여행이었지만 숙소는 형편없었다. 덕분에 매콤한 닭갈비와 살얼음 가득한 동치미 국물로 사계절을 맛보았고, 진정한 겨울 왕국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하얀 눈이 달빛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늦은 겨울밤.

잠이 오질 않아 이어폰을 끼고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듣는다.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눈 내리는 춘천을 상상한다. 기분 좋은 여행 첫날밤이다.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춘천 가는 기차/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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