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궁중떡볶이다!

결혼, 이 좋은 걸 왜 안 해?!

by 보리똥


'오늘 저녁은 배달음식으로 할까?'


퇴근 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때마다 수십 번이나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다. 집에만 돌아오면 몸은 노곤해지고 배가 고픈 아이들은 군것질거리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저녁밥을 먹기 전에 열량이 높은 걸 먹는 날에는 어김없이 밥은 "노노!, 엑스야!"를 외친다.


'대충 먹더라도 집 밥이 최고지.' 밥을 하기 위해 쌀 통문을 열었다. 평소 신경 쓰지 않아서인지 쌀통에 쌀이 없는 걸 몰랐다. 다행히 얼마 전 엄마가 넉넉히 두고 먹으라고 가져온 시골 쌀이 있었다. 도정한 지 얼마 안 된 쌀인 듯 투명한 빛깔이 탱글탱글 잘도 영글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이후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어떤 반찬을 해야 할까 고민한다. 며칠 전 사놓은 다진 소고기와 쌀떡, 어묵을 꺼냈다. 아이들을 위해 궁중떡볶이와 어묵국을 해 줄 참이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파와 양파를 달달 볶아줬다. 소고기를 살짝 볶은 후 쌀떡을 넣고 간장과 꿀을 첨가해 간을 맞춰주었다. 음~ 소고기의 담백한 맛과 쫄깃한 쌀떡 궁합이 어우러진 궁중떡볶이가 완성되었다.


어묵국을 만들기 위해 무와 대파 머리,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끓였다. 냄비에 있던 야채를 빼냈다. 나무젓가락에 어묵을 지그재그로 끼어 넣은 후 육수에 넣었다. 끓는 육수에 어묵은 순식간에 주먹만 한 왕 어묵으로 변신해 있었다. 어묵은 가스불에 한껏 부풀었다가 이내 작아졌다. 희한하기도 하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모습이.


아이들 식판에 궁중떡볶이와 어묵을 가지런히 담았다.

"으잉? 떡뽀끼다!" 오랜만에 엄마표 떡볶이를 본 아이들 반응이 재미있다. 포크로 수저로 열심히 콕콕 찍어 먹는 모습에 엄마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퇴근 후 엄마는 저녁식사 준비와 집안일에 가장 바쁜 사람이다. 오롯이 나만 알고 나만 추스르던 삶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러니 나이 많은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 골골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금 더 젊을 적 아이들이 곁에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내 삶이 조금 편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지. 삶이 편하다는 기준은 없다. 몸이 좀 힘들더라도 마음만은 이렇게 가뿐한걸! 조금 더 일찍 결혼 했더라면 지금처럼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어려웠으리라.




마흔셋 골드미스인 회사 동료가 있다. 그녀는 가끔 출근하는 아침마다 나와 마주칠 때가 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출근 달리기'를 하는 나를 보면 절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생기지 않는단다. 왜왜? 내가 어때서?

"아무리 봐도 넌 참 대단해.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하는 거 보면. 누구는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어서 휴직한다고 하는데, 일에 육아에... 난 못해 못해."


나 역시 좀 더 젊은 나이에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결혼만 하면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도 끝을 낼 수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그려왔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현실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녀의 말도 인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내 모습이 좋다. 그냥 좋다.


그녀는 올해 여름이면 아파트를 분양받아 부모님을 떠나 살 준비를 하고 있다. 회사 월급 절반이 아파트 분양 이자로 갚아나가야 하는 현실이라며 회사 다니는 게 재미없다고 했다. 나 역시 3년 후면 또 다른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고 우리 역시 그녀처럼 대출이자에 힘든 상황을 겪게 된다.


그녀와 나는 비슷한 상황이지만 다른 한 가지가 있다.

이사를 간다면 방 세 개 중 아이들 방은 어디에 만들어 줄 것이고, 거실에는 텔레비전을 없앨지 책을 놓을지, 엄마만을 위한 공간은 어디로 할지, 부부가 함께 사용할 침대는 싱글 침대 두 개 혹은 더블 하나로 고민했다. 아빠는 부부가 무슨 싱글 침대냐며 버럭 화를 냈지만, 나는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반면 그녀를 떠올려보자. 우리와 같은 평수에서 살지만 방 세 개는 모두 그녀만의 공간이다. 안방에서 잘 수도 있지만 방 분위기나 채광에 따라 얼마든지 방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침대는 크든 작든 혼자 사용한다. 때로는 무서운 꿈을 꿀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곁에는 아무도 없다. 썰렁한 분위기에 거실에 텔레비전은 필수다.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더라도 늦은 저녁까지 전원을 끄지 못할 수도 있다.

나만을 위한 공간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작은 공간을 찾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나는 직장인이자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의 엄마다. 아이들을 위해 배달음식보다는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이라도 맛있게 요리하는 요리사 기도 하다. 때로는 자신 한 몸만 돌보는 싱글녀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나는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라 혼자 사는 건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내 한 몸 조금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엄마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그런 내게 누구보다 따뜻한 지원군인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녀가 이런 내 마음을 헤아려줄 날이 있기를 바란다. 혼자보다 둘이 낫고, 둘보단 셋이 낫고, 셋보단 넷이 낫더라. 아니 다섯이면 더 좋을 테고!


삶은 그렇게 복작복작 지지고 볶아야 제맛이다. 마치 쫄깃한 궁중떡볶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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