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5년 만에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34평, 15년 된 구축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주변 사람들은 외진 곳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굳이 사야겠냐고 만류했다.
사실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사정상 우리에겐 15년 된 아파트라도 감지덕지였다.
15평 작은 집에서 이사하는 날, 이삿짐을 포장하는데 가져가야 할 짐보다 버려야 할 짐들이 더 많았다.
그동안 이렇게 불필요한 짐들을 방 한편에 잔뜩 쌓아두고 살며 집이 좁다고 되뇌었다.
이사 온 집은 34평답게 널찍했다. 특히 베란다 경치가 좋았는데, 바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또한 수납공간이 15평과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많았다. 가져온 짐들이 없어서 남편과 대화하는 내내 지하에 있는 것처럼 서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 집 중 가장 넓은 공간은 베란다였다. 요즘 짓는 아파트야 베란다를 확장해서 나오기 때문에 애초부터 거실이 넓다. 구축의 경우 확장은 개인 선택이다. 특히 이 집은 베란다가 거실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넓은 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입주하며 기본 인테리어를 했기때문에 베란다 확장까지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저 베란다는 베란다답게 빨래를 건조하거나 여름이면 아이들 물놀이를 하기엔 제격이었다.
시간이 지나 넓어서 좋았던 베란다는 그다지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빨래는 의류 건조기가 대신했고, 물놀이는 시간이 허락되지않아 할 수없었다. 단지 아이를 안고 나가 바깥 구경을 조금씩 해주는 정도로 그칠 뿐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베란다가 보이는 거실에 놀이방을 꾸며주었다.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꾸며준 작은 공간은 공놀이를 즐길 수 있는 소소한 놀이터가 되었다. 여전히 베란다 문은 굳게 잠근 채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파란 하늘만이 유일한 휴식처였다.
집에서 2년을 살았을 때, 거실 베란다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늘어나는 장난감에 넓은 놀이공간이 필요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중대한 회의를 하며, 돈이 들더라도 좀 더 넓은 공간을 만드는것에 동의했다.
코로나 19 감염이 점차 확산될 시기였다.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않던 상황에서 집은 말 그대로 주거 목적을 떠나 제2의 놀이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랐다.단순히 거실 확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확장 후 여름에는 상관없지만, 겨울에는 따뜻한 공간이 더 절실했기 때문에 중문이 없으면 안 됐다. 확장은 해야 했고, 중문은 있으면 좋겠고.'그래, 우리 집은 폴딩도어가 필요하다!"결국 거실에 폴딩도어를 설치하자는 결론이났다.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지, 견적을 낸 후 공사는 단 하루 만에 뚝딱 끝났다.
폴딩도어를 설치한 후 아이들만을 위한 테라스를 만들어 주었다. 남편과 내가 바란 건 아이들이 오붓하게 마주 보고 앉아 우유 한 잔의 여유나, 그림책을 보며 수다스러운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엄마 아빠의 바람처럼 아이들은 우유나 밥을 먹으며 풍경을 바라보기를 좋아했고, 아이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른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였다."시하야?""응, 아떠(알았어)" 서로에게 주는 무언의 암호이다.
'우리 집이 새 집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마음속 어딘가에서 입버릇처럼 흘러나오던 말이 무색하리만큼 아이들은 이 공간을 좋아한다.거실에 있는 시간보다 베란다에 나가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걸 보니 아이들의 공간을 만들어주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곳이 깨끗한 새집이었다면, 이런 소소한 공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을 거다.15년 된 오래된 집이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던 곳. 오래된 집이라 감사하고, 우리의 바람처럼 아이들이 이곳을 좋아해 줘서 다행이다.
작년 말부터 이곳은 20년을 미뤄온 재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덕분에 우리 집값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분위기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남편과 나는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를 종종 외치고 있다.
누군가는 새것이 좋다고 할 때, 우리는 낡은 집을 선택했다.낡은 집을 하나 둘 꾸미고 바꿔가는 재미는 새 집 못지않게 행복하다. 행복은 그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됐고, 제철 만난 장미처럼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