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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Apr 08. 2022

나는 왜 털보가 부러울까?

긴팔원숭이를 닮은 남자, 그를 파헤쳐 보자!



그는 남자다. 올해로 나이가 몇 살이나 됐더라.

생각해보니 행동은 영락없는 20대라 나이가 가늠이 안된다. 그렇다고 그가 젊어 보이느냐.  또 그렇지도 않다. 한눈에 봐도 그는 깡마른 새 다리를 가진 남자다.


걷는 모습을 보면 새 다리처럼 가늘어서 바람이 불면 툭 하고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 한 번이라도 새 다리로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이따금 새 다리를 가진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특히 스키니 진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야말로 새 다리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나 역시 유행에 힘입어 들어가지도 않는 스키니 청바지를 입었다가 엉덩이고 허벅지가 올록 불록하여 긴 티셔츠로 가리기 바빴던 통통족이었다. 알다시피 스키니 청바지는 입을 때도 힘들지만, 벗을 때는 더욱 힘들다. 바지를 벗는다고 한 게 비밀스러운 것까지 함께 벗겨지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에게는 '새 다리'보다 더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의 매력도  폴폴 흩날렸는데,  그것들은 검은색에 가깝고 빳빳하며, 몇십 개가 서로 무리 지어 살고 있다. 어릴 적에는 키가 크다가 성인이 되면 멈추지만, 이것들은 죽을 때까지 자란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그를 닮은 사람은 찾기가 어려워 가장 유사하게 생긴 하얀 눈썹 긴팔원숭이라도 초대했다. 어머나! 특히 가운데 원숭이와 우측 원숭이가 그와 어쩜 외모까지 쏙 빼닮았다. 마치 그의 이름이라도 붙여주고 싶은 원숭이들이다.  


그는 더운 여름이면 군인처럼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데, 그 때문인지 길고 덥수룩하게 자란 눈썹이 유독 눈에 띈다. 아무리 봐도 그는 털이 많다. 심지어 얼굴에는 수염 구멍 천지다. 하루라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털보가 되기 십상. 술을 좋아해서 지인들과 노느라 외박을 한 뒤 출근 한 다음날이면,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게 무조건 티가 나는 사람이다. 모두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털' 덕분이었다.


나는 그의 새 다리가 부럽고, 털보인 눈썹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 반쯤은 부럽다.

왜냐하면 나는 그와 반대로 눈썹 털이 적다. 눈썹이 거의 몇 올 없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있는 눈썹도 탈모가 와서 빠지고 있으며, 남겨진 털들도 듬성듬성 나있어 모양도 이상하다.  덕분에 외출할 때는 늘 기본 눈썹을 예술작품 그리듯 한 올 한 올 그려줘야 한다.

이런 게 귀찮아서 2년 전에  눈썹 반영구 시술을 했다.  재밌는 건 해마다 유행하는 스타일이 있어서 모양이 얇다가 두꺼웠다를 반복했다. 한때는 둥근 얼굴형에는 얇고 갈고리같이 생긴 눈썹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최대한 산을 만들어 갈고리처럼 길게 빼는 게 핵심 포인트였다.

또 몇 년 전에는 소녀시대 효연처럼 낮고 두꺼운 눈썹 모양이 유행을 했다. 지금은 또다시 얇아진다는 말도 있고. 나는 유행 따라 눈썹 문신을 했다가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주 가끔은 눈썹 숱이 많은 긴팔원숭이인 그가 부럽다. 언젠가 그의 눈썹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몇 달 전보다  더 길게 자라 있었다. 식물에 물을 주고 적당한 햇볕을 받으면 키도 크고 잎사귀가 쑥쑥 자란다.  지난번보다 눈썹이 더 길게 자라 보이는 건 식물처럼 잘 먹고 건강한 햇볕을 쫴서 그런 걸까. 그는 꽤 그럴싸한 눈썹 식물을 얼굴에 기르고 있는 부러운 사람이었다.  


한 번은 심하다 싶게 자라는 눈썹을 보며 절반 길이로 자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사실 긴 눈썹으로 인해 인상이 험해 보이거나 나이가 들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릴! 내 눈에 칼이 들어와도 눈썹은 못 자른 데이! "


경상도 남자인 그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단 방에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질세라 함께 일하는 언니가 말했다.  "눈썹 좀 잘라서 ㅇㅇ 씨 좀 이식해 줘 봐. 맨날 부러워하잖아."

맞다. 나는 그가 부럽다. 깡마른 새다리도 부럽고, 털 복실이 눈썹도 부럽다. 비가 억쑤로 내리는 날 그는 눈에 덮칠 빗방울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미세 먼지 천지일 때 눈썹은 먼지까지도 흡수할 것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는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늘 한결같이 변함이 없다. 하늘은 착한 그에게 선물로 '긴 털'을 내리신 거다.


가끔 많은 털을 가진 그를 회사에서 마주치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질 때가 있다.

"왜 그라는데? 뭐 잘못 먹었나?"

이번 내가 쓴 글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고, 사진이 없어서 당신을 닮은 비슷한 사진으로 대체했다고 긴팔원숭이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원숭이를 자세히 보더니 내 등짝을 냅따 내리쳤다. 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당장 이곳을 피해야 했다.


반복적인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그는 유쾌한 사람이다. 그가 있어서 하루하루가 즐겁다.


그나저나 눈썹이 얼마큼 길게 자라는지 계속 지켜봐야겠다. 더 길게 자라면 긴팔원숭이보다 더 긴 눈썹을 가진 동물을 찾아야 할 텐데, 과연 그런 동물이 존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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