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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Apr 02. 2022

대리님이 메신저에 로그인되었습니다

공포스러운 대리님 쪽지를 매일 아침 받는다

회사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된 시기에  두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첫 번째 확진자로 인해 연쇄 감염이 발생하더니 TV 뉴스에 방송되기도 했다. 확진자가 나오면서 회사 전 직원이 PCR 검사를 했고, 다행히 확진자 두 명을 제외하고는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회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무실 인원 중 일부는 본관에 위치한 곳에서 분리 근무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부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리를 이동해야 했고, 네 명의 팀 직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인  H대리님이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대리님은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다른 부서 사람과 전화 통화할 때면 입에 모터라도 달은 듯 온종일 수다 삼매경이다.  평소 바쁠 때는 대리님 수다가  들리지 않다가 어떤 날은 귀에 쏙쏙 박혀 업무 집중이 안 될 때도 있었다.


'아! 정말! 시끄러워서 못살겠어요!  사무실 혼자 전세 냈어요? 회사에 일하러 왔지 수다 떨려 왔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음에 답답한 가슴을 턱턱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여파로 H대리님이 없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업무 집중이 좋아졌고,  꼼꼼한 일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문제점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켜면  자동으로 메신저 접속 알림 창이 뜬다. 알림 창이 뜨자마자 귀신같이 알고 메시지가 두 눈을 깜빡였다.




"똑 출근?
옆에 누구는 출근했어요? 메신저가 꺼져있나 봐요.
별일 없는 거죠?"

"재고 중 어떤 제품이 수량이 틀린데,  사람들 시켜서 확인 좀 해주고."

"9시 넘어서 퀵 차량이 도착할 건데 메일 확인해서 출고 준비요."

"재고 중 날짜 임박 제품 어떤 건지 확인해줘요."

"옆에 누구 씨한테 발주 확인 좀 해서 메일 좀 넣어달라고 해요.
옆에 누구 씨 전화 좀 받으라 하세요.
왜 이리 통화가 안되는지 원..."
.
.
.

 -대리님, 저는 당신의 비서가 아니라고요!-


나는 마감작업을 할 때면 신경은 평상시보다 더 날카로워진다. 바쁜 와중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오는 쪽지는 나를 더욱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신없이 마감을 하고 있는데 쪽지가 날아왔다.


" 제품 날짜 좀 확인해 보고 회신 줘요."


순간 머릿속은 '바쁘다고 해야 할까?' ' 다른 사람에게 말하라고 할까?' '모른다고 해야 할까?' 도무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던 찰나, 에라! 모르겠다!

메신저 접속 상태를 빨간불 [대화 불가/ 매우 바쁘니 건드리지 마시오]로 설정해 두었다. 다행히도 대리님은 퇴근 전까지 아무런 쪽지도 보내질 않았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 50대 대리님은 어린아이처럼 내게 삐거다.  삐친 게 맞다. 삐치거나 말거나!


사람 마음이 간사하게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아침에 컴퓨터 전원을 켜자마자 인사처럼 날아오던  쪽지가 오지 않으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심지어 공유해야 할 업무도 소통이 안되어 불편하기까지 했다.

나원참! 아침마다 날아오는 귀찮은 쪽지를 기다릴 줄이야...

며칠 뒤,



"똑!
출근?"

"뭐가 잘못된 거 같은데, 확인 좀 돼요?
내가 메일 보낸 게 있는데 파일 열어 일자별로 확인 좀 해보겠어요?"

"어느 거래처가 잘못 나갔다는데 처리했어요?
처리하고 쪽지 좀 줘요. 빨리! "

"지금 바빠요?"
.
.
.
-대리님은 한결같군요! -

대리님은 삐친 뒤에도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삐친 마음이 진정된 것 같아 다행이긴 하다.


업무적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날에는 하루에도 몇십 번이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 꿈이나 삶의 방향이 직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날에는 더더욱!

하지만 내가 앉아서 일할 공간이 있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포기하고 싶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결국 꿈이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풀 꽃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똑?

출근?"


회신-> "대리님, 저 오늘도 아이들이 어린이집 안 간다고 뒹굴뒹굴 대는 아이들 겨우 데려다주느라
또 지각했어요."
...
...


"그럴 수도 있죠.
아이들 육아하며 일하느라 고생이 많아요.
업무가 마무리되면 일주일 한 번이라도 조기 퇴근합시다! "



솔직히 제가 이 말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쪽지 보내줘서 고마워요. 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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