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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un 18. 2022

직장동료는 퇴근 후 어딜 가는 걸까?

그녀가 궁금하다

그녀와 나는 직장동료이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그녀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냐면, 검은 피부를 가졌고, 키 155센티에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머리스타일을 보면,  보글보글 파마머리였다가 쭉 펴기도 하는 걸 보니, 스타일에 변화를 많이 주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아마도 기분전환이 필요한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녀는 재테크에도 능한 편이다. 이미 웬만한 보험은 만기가 끝난 상태고, 저축한 돈으로는 올해 8월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이다. 이렇게 돈만 모아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녀 카카오톡에는 웬만한 국내 여행지에 다녀온 사진들로 가득하다. 사진을 찍을 때는 어찌나 천친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지, 누가 보면 20대 아가씨라 해도 믿겠다. 은근슬쩍 자주 다니는 여행에 경제적으로 부담은 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최대한 맛집이라고 입소문 난 음식점은 코스별로 짜 놓고 여행지에 있는 책방에서 몇 시간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중요한 건 비싼 음식점은 무조건 제외한다. 여행지에서 쓸 수 있는 최대치 돈을 맞춘 후 정해진 금액대 안에서 여행코스를 짜는 것도 그녀만의 여행 노하우였다. 몇 년 전 다녀온 일본 여행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알뜰하게 다녀온 적 있었다.

그녀를 보면 나는 참 무계획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 여행 계획을 세워본 적이단 한 번도 없다. 무작정 떠나고 본 뒤, 떠나는 차 안에서 코스를 정하고, 맛집은 대기줄이 많아서 귀찮으니 눈에 띄는 곳에서 대충 먹는다. 비싼 돈 주고 맛은 실망했던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몇 달 전부터 그녀의 행적이 수상했다. 퇴근 후 집으로 곧장 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살면서 나와 비슷한 코스로 움직였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지, 내 차 뒤꽁무니를 따라오는 그녀가 궁금했다. 어느 날 퇴근 후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하원하며 차를 태우는 찰나, 누군가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곳에서  이름을 부를 사람이 없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녀였다. 이곳에는 왜 왔냐고 물으니, 퇴근 후 수영을 배운다고 한다.  수영을 하기 전,  자투리 시간으로는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 동안 독서를 한 뒤 수영을 한다. 마침 그녀를 만난 날이 어린이날 전 날이었는데, 아이들 주라고 케이크 쿠폰까지 선물해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수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밀린 방송통신대 숙제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녀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잠은 푹 자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그녀의 씩씩한 모습은 여전히 건강했다.

가끔 그녀와 이야기하는 책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다. 아이같이 낭랑한 목소리, 짓궂은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면 폭신폭신 솜사탕처럼 말랑말랑하다. 그런 달콤한 그녀가 재잘재잘 내게 이야기한다. 가끔은 그녀 표정에 푹 빠져버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했던 적도 많았다. 또다시 질문을 던지는 내게, 짜증은 커녕, 구간 반복하여 설명해 주는 다정함은 그녀만의 특급 매력이다.


쌍둥이를 낳고, 남편에게 직장일과 가사노동으로 힘들다며 투덜대던 자신이 떠오른다. 나는 얼마나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결국 힘들다는 기준은 자신이 쳐 놓은 마음속 거미줄에 불과하며, 상황을 얼마나 유쾌하게 헤쳐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녀처럼 자신에게 한계점을 두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런 내가 집중하며 할 수 있는 일은 새벽 기상과 글쓰기였다. 퐁당퐁당 새벽 기상에 실패하는 날도 많지만, 못난 글쓰기라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떤 일이든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마냥 시간이 흘러버리면 언젠가는 후회할 테니까.


내게 있어 좋은 사람이란,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삶을 지혜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그녀가 좋다. 그녀가 곁에 있어줘서 참 고맙다.


그녀는 오늘도 퇴근 후, 내 차 뒤 꽁무니를 뒤따라오다가 도서관 입구로 슝 들어갔다. 그녀의 하얀색 승용차가 빛에 반짝였다. 언젠가는 우리 삶도 반짝반짝 빛 나는 순간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행운은 믿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뻔한 말이 오늘의 나를 일으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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