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 누군가는 주 5일 근무로 늦잠 잘 시간에 나는 어김없이 토요일이면 출근을 한다.
또 누군가는 휴일을 맞아 설렘 가득한 여행 계획을 하고 있을 때, 토요일마다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한다. 평일 이 시간이면 출근차량으로 복잡했던 도로는 톡 쏘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뻥뻥 뚫려있다. 운전 중에는 에어컨 바람보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럽다. 바람은 볼록 튀어나온 광대뼈를 살짝 스치더니 머리를 감싸고 콧구멍에 파고들며 비릿한 여름 냄새를 선물했다. 내 작은 자동차는 부릉부릉 잘도 달려간다. 아침부터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행복한 예감.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고민한 우리 3인방은 다가오는 초복을 위해 능이 전복 삼계탕으로 결정했다. 3인방 구성원은 누구냐 하면, 눈썹 긴 온몸에 털보 아저씨, 같은 부서 단짝 친구인 언니다. 앞 전에 내가 쓴 글을 읽은 분들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고작 세명뿐인가요?"라며 궁금할 수도 있겠다. 물론 우리 회사에는 다른 직원들도 많다. 하지만 식사 때마다 사람들과 함께 나가는 게 쉽지 않다. 이 사람 챙기면 저 사람이 아쉬워하고, 그렇게 챙기다 보면 열댓 명은 함께 가야 하는데, 우리가 갑부도 아닌 이상 함께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우리 3인방은 식사를 하러 갈 때마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살금살금 회사에서 나온다. 언젠가 우리를 본 누군가가 함께하지 못해 서운하단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3인방은 더욱 은밀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점심 먹으러 갔으니 지금이다! 각자 한 사람씩 나와."
3인방은 그렇게 토요일에 짧은 점심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음식점 여행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맛집으로 향하는 여행길이다. 마치 여행을 떠날 때 목적지보다 찾아가는 여정이 더 행복한 것처럼, 3인방이 음식점으로 떠나는 여행 또한 설레긴 매한가지. 식당을 갈 때 지나치는 작은 산이 있는데, 산을 따라가다 보면 푸르게 펼쳐진 나무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온천지가 초록물결이고, 가을이면 낙엽 잔치다. 단 5분 동안 초록물결을 바라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햇볕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 12시. 덥다 더워가 절로 흘러나오는 시간임에도 나무들은 우리들에게 작은 그늘을 만들어 줬고, 쉬어가라며 손을 내밀어줬다. 따뜻한 마음씀이 좋아서 나무들에게 인사하며 음식점으로 향했다.
음식점에 도착하니 작년에 보았던 백구가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하얀 털은 여전히 뽀얗고, 두 눈은 더없이 맑은 순둥이 인형 같았다. 더운 날씨에 지친 표정이었지만, 이 언니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3인방은 백구와 인사를 나눈 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살을 파고드는 에어컨 바람과 능이버섯 향이 코를 찔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작년 여름 이야기를 나눴다. 그해는 무척 더웠지만 주말마다 떠나는 짧은 여행으로 여름을 견뎠다는 둥, 이 시간이 가장 기다려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서로가 건강해서 다행이고, 우리가 이만큼 우정을 쌓아왔다는 사실도 감사하단 말과 함께.
"주문하신 능이 전복 삼계탕 나왔습니다."
"우와! 작년보다 더 푸짐한 저 자태 좀 봐. 능이버섯은 크기가 더욱 커졌고, 전복은 뽀얀 속살이 탱글탱글하네. 닭과 함께 오랜 시간 끓였을 붉은 대추는 포근포근 잔뜩 부풀었고, 푸른 부추와 대파는 자연 모습 그대로 향기롭구나. 닭과 함께 보글보글 끓고 있던 찹쌀은 돌솥이 뜨거워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며 여기저기 아우성이네. 그런 의미로 한 입 먹어볼까나."
털보 아저씨는 삼계탕이 끓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껏 감탄을 한 뒤 , 이후 아무 말 없이 숟가락으로 삼계탕 탐색에 나섰다. 일단 능이버섯으로 입속 샤워를 마친 후 통통한 전복을 그릇에 떠 담았다. 전복은 질기지 않고 적당히 씹혔다. 닭은 부드러웠고 국물은 담백했다. 피클은 느끼함을 잡아주듯 알싸하고 새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겉절이는 젓갈 향과 함께 텁텁하지않고 아삭하고 깔끔했다. 닭고기를 먹다가 조금 심심할 때 겉절이와 피클로 입맛을 돋웠다. 우리 3인방은 삼계탕 한 그릇을 국물까지 뚝딱 해치웠다.
"캬! 이 맛이 바로 여름의 맛이지!"
배 부르게 잘 먹었다는 꺼억! 트림 소리조차 부끄럽지 않은 우리들. 심지어 소화가 너무 잘된다며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방귀를 뀌어대는 털보 아저씨 바람에 한참이나 창문을 열고 냄새를 내쫓느라 바빴다는 후문도 있다. 그렇게 우리들의 여행이 조금씩 저물어 갈 즈음,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뜨끈한 삼계탕도 먹었으니 시원한 커피 한 잔 어때?"
배 부르다며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다고 하더니, 2차로 커피여행 만장일치.
솔솔 불어오는 후끈한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커피가 주는 쿨한 이 느낌은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매주 떠나는 여행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성비 갑이란 말이야. 거창하진 않지만, 거창하지 않아서 더욱 빛나는 우리 3인방의 여행. 그나저나 다음 주는 어떤 여행을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