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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Oct 09. 2022

직장동료와 책을 읽으면 생기는 일

그녀와 함께 한 책 이야기

직장동료와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함께 읽을 때 좋은 점은 '함께 책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인터넷 서점에 주문하니 다음 날 도착했고, 나머지 한 권은 도서관에 예약신청을 해 둔 걸 찾아왔다.  토요일은 그녀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한 날이다. 킁킁 새 책 냄새가 나를 반긴다.

함께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에서 까르르 웃음이 나오면 어느새 그녀는 내가 웃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24 쪽을 읽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마을 사람들 행동이 재미있어."

"난 아직 거기까지 안 읽었는데 얼른 읽어봐야겠다."

내가 자신보다 책장을 먼저 넘기고 있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분주하게 24 쪽을 향해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녀와 나는 또 하나의 공감 거리가 생겼다. 그녀와 나의 관계가 점. 점. 점.이었다면 책을 통해 ___선이 되는 순간이다.


  "5일을 도시생활, 이틀 동안 시골생활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도시에서 살다가 잠시 떠나는 시골도 좋지만, 시골에 정기적으로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더 바쁜 생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시골에 텃밭이라도 만들었다면 가꿔야 하고, 집 보수 공사도 자주 해줘야 하고, 한 겨울에 보일러라도 고장 나면 어찌해. 자고로 집이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 금방 고장 나더라고."

그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래 그녀 말이 맞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이상하게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


언젠가 그녀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에게는 외 아들이 있었는데, 연애하던 여자를 2년여 만나더니 스물아홉 살에 덜컥 결혼을 하겠단다. 그녀는 조금 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는데 당장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허락했다. 결혼 후 아들이 떠난 방은 침대와 책상,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주인 잃은 방처럼 썰렁함이 있다고 말했다. 똑같이 온 집안에 보일러를 트는데 유독 그 방만 썰렁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인지 묻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사람의 손길'이라 말하고 싶다. 사람 체온이 침대와 책상 차가운 물건에 온기를 전한다.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사람 손길만큼 따뜻한 건 없다. 그렇기에 집을 비운다는 건 오롯이 차가운 물건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더 이상 집이 차가워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주 찾아가서 보듬어 주고 따뜻한 밥을 지어야 한다. 밥에 온기가 온 집안에 퍼질 때야말로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내가 살 던 시골마을에는 높거나 얕은 굴뚝이 하나씩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굴뚝에는 퐁퐁퐁 새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궁이 불로 솥단지에 밥을 지었고 이내 안방 바닥이 따뜻해졌다. 귀한 손님이 집에 찾아온 날은 꼭 손님을 아랫목으로 앉혔다.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의 집 지붕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저 집은 인제 밥을 해 먹는구먼."하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집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해 먹었고 누룽지를 만들어 구수한 누룽지탕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집은 늘 따뜻했다. 매일 굴뚝에 연기를 피워냈고 그 속에서 우리 집은 식구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과자 하나를 더 먹겠다고 싸우기도 했고, 식혜 한 사발 더 들이키겠다며 싸우다가 그릇이 내동댕이 쳐진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쫓아왔고 무섭다며 맨발로 마당을 빙빙 돌던 기억도 난다.  


시골이 참 좋긴 좋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형형색색 바뀌는 풍경을 보노라면 자연과 하나가 되곤 한다. 깊어가는 가을에는 앞마당 가득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이름 모를 꽃들은 활짝 피어있다. 고추만 이야기하면 섭섭하지. 지금은 배추에 총각 무, 대파 등 식물 만물상이 되어있는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집. 식물은 홀로 자라는 것 같지만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렇지 않으면 병충해에 잎이고 열매고 남아나질 않는다.


"나는 그래도 도시생활에 한표야. 시골에서 살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한다고. 시골에서 아무나 사는 게 아니지. 나도 시골에서 살 때 우리 아빠는 뚝딱뚝딱 기술사였어. 마룻바닥이 무너지면 다시 만들어야 했지. 그 당시 싱크대가 어딨어. 아빠는 어디서 목재를 주워와서 부엌 선반을 만드셨지. 아, 밥상도 만드셨다. 그래도 그때가 좋을 때지. 시골집은 가족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어야 해."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저자는  일이 끝난 금요일마다 여성 홀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서울에서 금산까지 두 시간 반 거리를 시골로 떠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 혼자서 어떻게 외진 시골에서 이틀을 보낼 수 있지? 아무리 고양이랑 함께 있어도 나라면 무서움을 많이 타서 쉽지 않을 것 같아."

"무서움이란 눈에 보이지 않듯,  스스로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도 혼자 긴 밤을 지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작가는 누구보다 용감한 여성인 것 같아."


계절을 담은 편안한 시골 사진과 글을 보면서도 공포 운운하는 우리 두 여자는 아무래도 결혼을 한 현실적인 여자임이 틀림없다. 결혼이란 홀로 지내는 시간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음을 뜻한다. 우리는 미혼여성과 상황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가족 없이 홀로 무언가를 하는 게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직장에서 읽는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책이 아니라 책에 담긴 정겨운 사진만 보더라도 우린 상상 기차를 타고 시골여행 중이었다.

"만약 나도 작가처럼 시골에 내 집이 있다면, 사진처럼 큰 주황색 장미꽃 화단을 만들고 싶어. 다른 꽃보다 장미꽃을 보면 황홀함이 느껴져. 마치 내가 장미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람같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하하하."

"우리가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장미처럼 아름다워지는 순간일 거야.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멋진 화단을 꾸밀 날이 오겠지. 그나저나 나는 88쪽을 읽었는데 언니는 얼마나 읽은 거야?"

"수다 떠느라 40쪽 밖에 안 읽었다. 근데 이 책 참 좋다. 덕분에 책도 함께 읽고 고마워."


회사에서 짬짬이 읽는 독서는 은근히 스릴이 있으면서도 즐겁다. 덕분에 주말을 지루하지 보내게 되었다는 감사와 함께  퇴근인사를 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토요일 이후는 다른 날보다  근사하고 행복한 주말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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