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바닷바람은 다른 육지 바람보다도 울룩불룩 천하장사처럼 힘이 세다. 피부 속을 파고드는 습한 공기와 서해바다에서 풍기는 비릿한 짠내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성난 사자처럼 일렁이는 파도는 누군가라도 덤비는 날에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표정처럼 씩씩했다. 덕분에 바닷물에 발끝을 넣는 일조차 두려워서 한참 동안 일렁이는 파도만 바라보았다.
갈매기들은 육지로 나와 어른 키높이 정도로 날아다녔다. 날렵하게 잘생긴 우윳빛 얼굴에서는 얼른 새우깡을 하움큼 던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새우깡은 없고 마침 갖고 있던 갈매기 얼굴보다 더 큰 바게트 빵을 던지니 날름 물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갈매기는 식탐이 꽤 강한 동물임이 틀림없다.
매향리 바닷가는 관광객을 위해 주차장이 잘 구비된 편이지만, 지금처럼 더운 날씨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근처 회센터마다 이미 폐점한 지 오래되었고, 그나마 유지하는 곳은 바닷가 근처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숍뿐이었다. 얼마 전 장사를 하고 있던 구멍가게도 문을 닫았다. 구멍가게에는 대나무 낚싯대나 지렁이 밥 등 낚시용품도 있었고, 소소하게 과자와 음료도 있었다.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건, 그만큼 매향리 바다를 찾는 이가 없는 탓일까. 관광객은 줄고, 빈 상가로 인해 휑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사람이 북적이는 장소는 싫어했고, 아이들과 함께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대표적인 장소가 내 고향 매향리였다. 뻔하게 익숙한 장소이지만, 그런 뻔한 이유가 우리들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매향리 주민들 80% 이상은 농사보다 바닷일이 주업인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논과 밭,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농사보다는 바닷일을 하는 편이다. 우리 엄마는 몸뚱이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매향리에서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다고 종종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향리 주민들 대부분이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많아서 바닷일도 마음처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물론 우리 부모님도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농사일과 바닷일이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동네는 발전되고 있지만 그 속도만큼 발 빠르게 따라갈 수 있는 주민이 몇 되지 않는 건 동네가 점차 고령화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늙은 부모님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으니 매향리는 다른 동네보다 더욱 조용한 곳이다.
두 달 전,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고 KBS 다큐멘터리 방송작가가 연락을 해온 적이 있었다.
매향리 바다에 관련된 내용으로 취재를 하려 했지만, 읍사무소로 연락을 해봐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혹시 어촌계장이나 부녀회에 도움을 받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현재 매향리 어촌계장도 이렇다 할 동네 활동을 하는 게 아니고, 기존 어촌계장이 어찌어찌 명성을 앞세워 공적자금을 횡령하는 등 문제가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비리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그만큼 과거 내로라했던 동네 지도자들도 연세가 지긋하셔서 모든 게 귀찮다는 입장이다. 물론 동네에서 어촌계장을 30년 이상 하셨던 우리 아버지도 KBS 취재팀이 반갑지 않았다. "KBS가 대수냐. 대통령이 온다한들..."
아버지도 귀찮고, 부녀회에 문의해도 처음에는 취재에 응해준다고 했던 분들이 갑자기 말을 바꿔 취재해 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KBS 취재는 방향을 바꿔 다른 동네를 취재하기로 잠정 결정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와 풍경이었다. 어릴 적 걷던 작은 도로는 여전히 고요했고, 먹고살기 위해 채취한 굴 껍데기는 모래밭을 대신했다. 선착장 근처에 심어져 있던 보리수나무 열매는 빨갛게 무르익은 모습이었다. 파란색 하늘 흰 구름은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예쁘게 피어났다.
앞으로 매향리는 조금 더 멋진 모습으로 변모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다른 고장보다도 더 멋진 이곳 내 고향 매향리. 철 모르던 시절 바닷가를 종횡무진하며 뛰어놀던 소녀가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바닷가에 첨벙 들어가 대나무 낚싯대를 휘두르던 사내 같던 소녀가 지금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 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나는 추억 부자가 틀림없다. 이건 내 고향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왜 사람들은 매향리에 오지 않는 걸까. 궁평항, 제부도, 대부도보다 더 한 적하고 멋진 내 고향 매향리.
우리 아이들은 또 다른 추억을 매향리에서 체험하고 쌓아가는 중이다.
멍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내게 파도가 말한다.철썩철썩, 이제 그만 집에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