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13일, 진돗개 '진숙이를 만나다'
당시 daum 카페였던 '진돗개 동호회'를 통해 백구 진숙이를 분양받게 됐다. 진숙이는 짐칸을 타고 멀리 지방에서부터 수도권까지 상경한 강아지다. 처음 진숙이를 버스터미널에서 만나게 된 날은 무더위가 시작되려 하는 초여름으로 기억된다. 진숙이는 장거리 이동에 힘든지 기력이 없어 보였다. 진숙이를 안고 30분 이상 되는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버스도 있었지만 강아지를 안고 탈 때 사람들 눈치 보는 게 싫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진숙이에게 물을 주니 먹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래도 더위를 삭히기 위해 몸을 씻기고 편안한 이불 위에 올려주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진숙이가 오기 전에 준비해놓은 방울을 목에 달아주니 꽤 귀여운 모습을 가진 아이였다. 딸랑딸랑 작은 방울소리가 울리도록 돌아다니는 걸 보니 진숙이는 꽤 호기심이 많아 보였다. 이윽고 혀를 내밀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인다. 강아지는 천성적으로 사람처럼 웃는 게 어렵다고 들었는데, 진숙이는 해맑게 웃었다. 누가 뭐래도 정말 웃는 모습이었다.
"미소가 예쁜 우리 진숙아! 우리 오래도록 친구 하자!"
2006년 5월 8일, 진숙이는 엄마 경찰에게 잡히다
모내기가 막 시작되고 있던 시절, 시골 모습은 온통 푸르름이 가득하다. 길가에 핀 철쭉꽃은 형형색색 고운 모습이었다. 쥐똥나무 담장은 연두색 아기 이파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으악! 평온함도 잠시, 갑자기 어디선가 난도 꾼이 나타났다. 엄마가 애써 키우고 있는 파밭에 들어가 여기저기 몸을 비비고 돌아다니느라 정신없던 진숙이었던 것이다.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 경찰은 처참한 사건 현장을 뒤늦게 발견했다. 수갑은 진숙이 전용 목줄이다.
"이놈, 진숙이! 풀어졌다 하면 사고뭉치네. 당장 목 줄 채워서 묶어놔야지 안 되겠다!"
엄마는 진숙이게 게 목줄을 끼우면서도 진숙이 표정을 보며 웃음보가 터졌다.
쑥대밭이 돼버린 파밭을 생각하면 안타까웠지만 엄마와 진숙이의 행동이 재밌었다.
2006년 11월 26일, 진숙이가 엄마가 되다니!
마냥 아기 같았던 진숙이가 황구를 7마리나 낳은 날이었다. 진숙이는 백구인데, 왜 새끼들 모두 황구인지 의아했다.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엄마를 통해 알게 됐다.
"진숙이를 좋다고 따라다니던 개가 죄다 누룽이었어. 흰둥이였으면 얼마나 좋아. 누룽 이를 쫓으면 뭐해. 나 없는 사이 또 찾아와 있던걸. 이놈 진숙이는 누룽 이만 낳을 팔자야."
엄마 말 뜻은 '이미 진숙이는 백구를 낳을 수 없다'로 해석하면 된다. 팔자라면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는 일이지만, 새끼 백구가 없어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룽이라도 꼬물꼬물 귀엽기만 하다.
새끼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눈이 보이지 않으니 엄마젖을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진숙이 곁에서 얼굴 여기저기를 비비며 돌아다닌다. 새끼가 많으면 엄마젖을 차지하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엄마젖을 찾지 못해 방황만 하던 강아지는 젖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진숙이 똥구멍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큰 젖을 독차지하고 있는 뚱보 강아지를 똥구멍에 옮겨놓고, 불쌍한 녀석에게 젖을 물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현명한 대처가 아닐 수 없었다.
진숙이와 함께했던 15년 전 기록이다. 이미 하늘나라에 있는 강아지와의 추억.
만일 2006년 1월 13일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내 기억 속에 진숙이는 영영 사라졌을 거다. 다행히 소중한 모습들을 차곡차곡 쌓아놨기에 진숙이를 떠올리며 시절의 행복을 회상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카페라는 공간에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기록할 때는 대단한 문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솔직했다. 행복한 찰나의 순간이 좋았고,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흥미로웠다. 내 글을 보는 동호회 회원들은 함께 축하해 주고, 함께 웃어주었다.
지금 보더라도 사진 속 시골 풍경은 내가 눈으로 담고 있는 것보다 더 포근했고 정겨웠다. 꽃이 피고 지는 일처럼 작은 일상의 모습들이 기록으로 남았다. 도시보다 시골은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눈이 오고 비가 내리는 모습, 파랗던 고추가 붉게 물든 모습, 봉숭아 꽃이 핀 게 엊그제 같았는데 그새 씨가 맺혀 있는 일처럼 시간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시골 풍경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린아이들이 곁에 있는 지금도 기록하는 일을 즐겨한다. 힘들고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록을 통해 힘든 과정을 극복한다. 또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물을 돋보기 보듯 관찰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길바닥에서 개미가 무엇을 물고 가는지, 잠자리는 왜 날지 않고 땅바닥에서 걷는지, 싫어하는 애벌레는 왜 자꾸 눈에 띄는지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기록을 위한 관심병이다.
어제는 누군가 내게 물었다.
"금 중에 가장 비싼 금이 뭐인 줄 알아?"
한참을 망설이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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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그래,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있어 가장 찬란하고, 소중한 순간이다.
2021년 5월 28일 금요일 오전 6시 24분, 먼지처럼 사라질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