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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an 08. 2023

입이 즐거운 추억의 과자 '비 29'

오래전부터 과자를 좋아했고 즐겨 먹었다. 어릴 적 나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손님이었다.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천 원을 들고 쥐방울 드나들 듯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시골에는 걸어서 20분 거리에 구멍가게 두 개가 있었다. 마을 안쪽으로 걷다 보면 먼저 나오는 가게가 영란이 아저씨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상숙이 아저씨네가 나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부른 가게 이름은  부모님이 자주 이야기를 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동네에 가게가 하나면 상관없지만 두 개였으니 구분이 필요했다.


두 가게의 분위기는 비교가 될 정도로 달랐다. 영란이 아저씨네는 동네 사랑방 같아서 가게 안은 늘 놀러 온 아저씨들로 가득했다. 우리 아빠도 함께 어울리던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영란이 아저씨는 장사는 뒷전이고, 아저씨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니 동네 꼬마가 과자를 사러 오는 시간이면 아저씨들에게 "아! 기다려 기다려!" 외치며 무심하게 계산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랬던 아저씨였으니 꼬마들의 과자 취향을 제대로 알리만무했다. 나는 수 십 가지 과자 중에 맛있는 과자를 찾아내는 센스를 가진 꼬마였다. 모름지기 과자는 어떤 디자인으로 포장을 하던 맛과는 전혀 무관했다. 포장이 제 아무리 화려해도 맛이 따라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무조건 포장보다 맛이 우선이다.


영란이 아저씨네 가게에 도착하면 일단 과자 정리가 미흡했다. 정리는커녕 뒤죽박죽 섞이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도 더러 있었다. 아저씨네서 과자 한 봉지를 고르고 나면 자연스럽게 유통기한을 살폈다. 혹시라도 유통기한이 지난 걸 사 갖고 반품하러 왔다고 하면 아저씨는 늘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 뭐 이걸 그냥 먹지, 알아서 골라서 갖고 가!"

아저씨 가게는 정당한 이유로 반품을 하는 건데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가게가 틀림없었다.


상숙이 아저씨네는 영란이 아저씨네 가게보다 5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야 나왔다. 솔직히 조금 귀찮았다. 특히 찬 바람 몰아치는 겨울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추운 계절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숙이 아저씨네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상숙이 아저씨네 가게는 분위기부터 산뜻했다. 영란이 아저씨네 가게에서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냄새가 폴폴 풍긴다면 상숙이 아저씨네는 그런 냄새가 없었다. 일단 가게부터가 깔끔했다.

'그래, 이런 곳이 과자 천국이지!'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과자들만 엄선해서 일열로 정리한 모습만 보더라도 저절로 흥분이 되었다.


오늘도 엄마에게 받은 용돈 천 원으로 어떤 과자를 고를까?  당시 과자 대부분이 200원이던 시절이다. 200원이면 5봉을 살 수 있으니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었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과자는,  들어는 봤는가. 바로  ' 비 29'라는 과자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를 수 있겠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진 맛이라 이따금씩 그리운 과자 중 하나다.

출처:농심 블로그

1981년도에 출시되었다고 하니 오래전에 출시된  과자였다.

출처 농심 블로그

'비 29 '는 세월이 흘러 2009년도에 다시 출시되었다가 지금은 단종되었다고 한다.

이 과자의 특징은 부드러운 옥수수 콘에 카레와 소고기 소스가 어우러져서 카레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어릴 적 이 과자를 처음 먹어보고 새로운 맛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우! 정말 맛있다!'

물론 카레를 즐겨 먹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생소했던 '카레맛'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과자의 단점을 꼽자면 동그랗고 큰 크기 때문에 양이 적었다. 한 봉지를 뜯어 몇 개 입에 넣다 보면 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족 중 누군가와 함께 먹는 날에는 아쉬움만 남는다. 과자 한 개라도 더 먹기 위해 얼마나 빠른 손놀림과 눈치 작전이 필요한지 모른다.


재밌는 건 그 당시 가장 좋아했던 '비 29' 과자는 영란이 아저씨네 가게만 팔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란이 아저씨가 '비 29'를 독점할 수 있던 건 어리숙한 상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억나는가. 몇 년 전 허니버터칩이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을. 아마도 아저씨는 허니버터처럼 '비 29'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단골을 만들 심상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과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란이 아저씨네를 가야 했으니 아저씨의 미끼상품은 꽤 성공적인 아이템이었다.  매일 영란이 아저씨네 가는 게 싫어서 어떤 날은 검은 봉지 한 장에 몽땅 비 29만 구매한 적이 있었다. 계산을 하며 영란이 아저씨의 눈빛이 아직도 떠오른다.

'비 29'하나면 꼬마 고객확보쯤은 문제없겠어!'라는 생각을 했을듯한 눈 빛을 말이다.


혀 끝에 맴도는 고소한 옥수수콘이 달지 않고 신기한 맛을 가진 과자라고 생각했다. 과자가 이렇게 맛있어도 될까 싶은 그런 과자.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 주인공이 카레라는 사실도 어른이 되어 알게 되었다.

다시금 '비 29'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 당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가끔 추억이란 놈은 나에 어딘가를 부여잡고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때로는 가슴이 메이도록 아프다가도 또 때로는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다. 이게 나이가 먹는다는 증거일까.


오늘은 추억의 과자 '비 29'를 떠올려 봤으니, 다음번에는 어떤 과자를 기억해 볼까.

상상만으로 마음과 입이 즐거운 종합선물세트 같은 과자 이야기.

다음번에 또 찾아옵니다. 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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