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독서의 치명적인 매력
23년도는 필사의 세계로 뿅!
23년도 새해를 필사 모임으로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십 수년을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내왔고, 심지어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찾는 일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2년 전부터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책을 읽고 필사모임을 하고 있으니, 놀랍지 않은가.
글쓰기 모임을 하기 전까지는 독서의 이유를 몰랐다. 책이 아닌 단순히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글쓰기와 독서는 별개라고 생각했던 자신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독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책과 가까이하는 사람일수록 개성 넘치는 표현을 볼 수 있었다.
글쓰기를 하고 책과 가까이하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경험'의 중요성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글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국 방방곡곡 여행할 수도 없는 노릇. 워킹맘인 나는 현실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늘 그 생활이 그 생활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들 등원을 하기까지 삶은 전쟁터 같았다. 직장에 출근했을 때는 업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탕탕탕! 총을 쏘는 군인만 아니었을 뿐, 일상을 전쟁터에 온 군인 처럼살았다. 육아에 지친다, 일이 힘들다는 뻔한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평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게 했다. 직접 떠나지 않아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고, 어떤 날은 후각을 자극하는 듯한 구수한 냄새를 가진 책을 만나기도 했다. 책은 다양한 경험들이 농축된 집합소 같았다.
문제는 읽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끈기력 없는 자신이었다. 누군가는 한 번 손에 쥔 책은 날이 새도록 책에 빠져 읽다 보니 완독달성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다가 쉽게 흥미를 잃어 다음 날 이면 어김없이 '읽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지루해진 책은 고이 접어둔 채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완독의 꿈은 사치로 머물렀다.
한 번은 굳은 결심을 하고 도서관에서 흥미 있는 책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책을 고른 뒤 책장을 열었을 때는 완독의 가능성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몇 장을 넘긴 이후부터 하마가 하품하다 말고 눈물까지 찔찔 흘려가며 책을 읽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다양한 표현이 들어간 의미 있는 글쓰기는 하고 싶어서 책은 읽어야겠고, 졸음은 쏟아지고, 것 참 딱한 노릇이었다.
마침 글쓰기 모임에서 필사모임을 진행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주저 없이 모임을 신청했고 언제나 그렇듯 모임장의 익숙한 인사와 시작이라는 말에 마음속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이번참에 책을 제대로 잘근잘근 씹어 먹어보는 거야!' 오징어처럼 질긴 책과의 인연을 연결할 고리를 찾았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물 잔을 하고 식탁의자에 앉았다. 식탁은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공간이기도 한데, 그렇게 나는 아침이면 책을 폈다. 필사를 시작하기 전에 노트를 고르는 일도 좋았다. 줄 쳐진 노트가 좋을지, 무지노트가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마치 연분홍색 마시멜로를 닮은 것처럼 달콤한 순간이었다.
출근 전 새벽시간에 읽는 책은, 뭐랄까. 길어야 30분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력은 와따다. 또한 필사할 구절을 찾는 일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마치 어두운 탄광 안에서 숨은 보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광부가 된 느낌이었다. 광부는 밤낮없이 몸이 부서져라 보석 캐는 일에 전념한다. 나는 숨은 보석과도 같은 책 속의 구절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뜬다. '앗, 이 구절이다. 내 마음을 이렇게 감동시켰단 말이지. 너 마음에 들었어!'.
노트 상단 위에 날짜 스탬프를 찍고 책 제목을 쓰고 필사를 시작했다.
안녕! 널 진심으로 환영해.
넌 지금 모습 그대로 정말 사랑스러워.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난 너의 특이하고 유별나고 엉뚱한 면을 다 받아줄 거야.
독특하게 행동해도 괜찮아.
난 너를 있는 그대로 격하게 환영해.
여기 너를 위한 자리가 있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p.94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 주겠다는 책.
또한 언제나처럼 외로운 내게 자리를 남겨주겠다는 책.
이렇게 다정한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글쓰기 모임 2년 만에 깨닫게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책의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책을 알게 되며 필사와 인연이 닿았다.
필사는 빨리 읽는 누군가와 경쟁할 필요도 없으며, 완독의 부담도 느낄 필요 없고, 내가 가진 속도대로 천천히 걷다 보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글쓰기가 준 수혜 치고는 참 멋진 일이다.
글쓰기, 이렇게 매력적인 걸 안 할 이유가 없지.
당신과 나는 글쓰기에 세계에 풍덩 빠진 이야기꾼이 되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