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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Nov 27. 2022

글쓰기 모임 할까 말까 고민이라면

모임원이 말합니다

얼마 전 3주 동안 진행한 글쓰기 모임이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 모임이 시작할 때마다 고민을 한다.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 글 쓸 시간이 없는데...'라는 비슷한 부류의 고민이 마음을 애태운다. 망설이는 순간 모집정원이 꽉 찼다는 모임장의 글이 올라올 때서야  고민이고 뭐고, "나 좀 꼭 껴주세요."라며 깍두기 신세로 겨우 참여를 한다.


 바뀌는 계절을 산책하듯 여유 있게 보며 걷고 싶은데, 나는 모든 결정 앞에서 마지막이 됐을 때 전력 질주하는 습성이 있다. 아마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미루는 습관이 가져오는 '부랴부랴 병'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 고질적인 병은 마감이 되었을 때 의식처럼 치러진다. 이런 서툰 과정 속에서도 글쓰기 모임원과 한 배를 탄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미소 짓게 했다.


마음속 고민이 무색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하기 위해 모인 걸 보니,  역시 함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번 과정은 그 전보다 더 알찬 수업이 될 것이고, 자신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글쓰기 과정 중반에 이르렀을때  느낀 변화를 기록해본다.


첫째,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 기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출근 준비를 하고 커피 한 잔을 타서 식탁의자에 앉았을 때는 새벽 5시 30분,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이다.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둘째, 모임장이  출간한 책을 바탕으로 사색하는 독서를 하고 그에 따른 생각을 기록할 수 있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늘 '처음'이라는 열정으로 시작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밍밍한 동치미 국물이 되기 일쑤였던 내 생활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읽고, 쓰고, 독자가 되는 동시에  작가가 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스스로가 봐도  어딘지 모르게 멋진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생각이 바뀌니 외모도 변했다. 직장에서도 무슨 좋은 일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오늘 아침 글 한편을 완성하고 출근했거든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셋째, 일상을 돋보기 낀 할머니가 된 것처럼 바라본다. 나는 시력이 꽤 좋은 편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 삶의 일부분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작은 것에도 생각을 부여하고, 혹시라도 글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내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몰랐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거나, 기념일 같은 날을 특별하다 생각했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일 년에 한두 번 일기를 쓰는 것이 글쓰기의 전부였다.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돋보기 낀 할머니가 된 이후부터 내 삶의 눈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넷째, 아이들의 언어를 귀담아듣고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 언어는 그야말로 신비한 언어 바다와도 같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까르르 웃는 모습은 또 어떤가. 그런 개구쟁이 얼굴로 집 있는 달팽이 사진을 보여주며 어린이집에서 본 민달팽이는 집이 없어서 슬프겠다고 한다. 아이 눈에도 집 없는 민달팽이가 애처로워 보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언어는 꾸밈이 없지만 아름답다. 정확한 단어를 구사할 줄 모르지만, 자신이 어떤 표현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표정이 귀여운 짱구 인형 같다. 온갖 좋은 표현으로 우왕좌왕 치장하려 애쓰는 내 글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이들은 글쓰기를 위한 무한한 언어 창고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스승과도 같은 존재이다. 아이들은 알까? 엄마는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깡충깡충 토끼란 사실을.


다섯째, 글쓰기를 하는 자신을 위해 아빠와 가족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들은 내가 책을 출간한 정식 작가가 되지 않았어도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는 이미 작가'라고 인정해준다. 처음에는 그런 가족들의 관심이 창피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모임원으로 참여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뿐인데, 한 달, 두 달을 꽉  채워가는 나를 보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 번은 글쓰기 모임을 통해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첫 글이 다음 메인에 노출이 되었을 때 가족들은 한결같이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둘째 형부는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처제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자랑을 했단다. 아휴, 정말 형부는 못 말린다. 글쓰기를 통해 물질적인 보상은 없었지만 그보다 가족들의 응원에 힘을 얻으며 살고 있다.


여섯째,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대인관계가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말수는 적지만 내면은 하고 싶은 말 천지였는데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전달할 때 마음이 후련해지는 걸 느꼈다. 어느 날 주어진 미션에 다른 과제를 제출한 자신을 보고 모임장은 의도와 다른 글을 쓴 것 같다고 첨삭해 주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이들을 재우며 컴컴한 방 안에서 작성한 글을 고쳐쓰기 했다. 그리고 모임장에게 "고쳐쓰기를 완성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별 것 아닌 일에 호들갑이냐고 할 때 내성적인 내가 글쓰기에 적극적인 모습은 나조차도 놀랄 만큼 큰 변화였다. 글쓰기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드디어 3주간의 길었던 글쓰기 모임이 끝났다. 늘 그렇듯 나는 나 자신과  함께한 모임원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인사를 전한다. 함께 하는 힘이 나약한 자신을 일으켰고, 실패보다 가능성이라는 꿈을 꾸게 했다.

보이지 않는 자신감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장점이 수두룩한 글쓰기인데 어찌 안 할 수 있단 말인가.


책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른의 문장은 ,
내향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무기다.

<어른의 문장력> p.83 김선영 글밥


빵집에서는 작은 조각 케이크를 모아 동그란 케이크를  완성한다. 그중 가장 멋지게 만든 케이크는 고객에게 먼저 판매된다. 내향인이 만든 작은 일상 조각들이 하나 둘 모여 하나의 맛있는 케이크로 탄생하기까지 무수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글쓰기 모임이 있다. 글쓰기는 맛있는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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