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아주 꺼려하면 그게 ‘허들’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알러지 때문이 아니라, 오이향이 싫어 오이를 안 먹는 경우처럼. 내 경우에는 목소리나 문체가 그렇다. 도올 김용옥의 TV 강연이 큰 인기를 끌었을 때도, 나는 그의 목소리 때문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내용이나 생각의 차이보다, 문체가 맞지 않아 독서를 포기하는 일이 더 많다. AI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AI 문체 특유의 기계적인 면이 더 부각되어 거슬렸다.
나는 그림 한 장 받으려고 AI를 쓰는 사람이라서 딱히 해결해야 할 문제나 과제가 없었다. 그저 아무 얘기나 하면서 내 생각을 AI에게 잘 주입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제미나이는 계속 솔루션을 제시하려고 했다. 대화는 중간에 뚝뚝 끊어지기 일쑤였고, 나는 이내 포기해 버렸다. 그에 비해 GPT는 유연성이 좋았다.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말 모드에서도 제안으로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 대화를 이어가기도 수월했다.
나는 무료 사용자라 GPT에 쿨타임이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GPT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읽곤 했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드디어 그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수업시간에 들은 부유함과 권태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GPT가 즉각적인 선택이 많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나) 확인질문 – 즉각적 해결인가 아닌가의 문제
GPT) 수긍 – 정확해
나) 확인질문 – 조건(경제력 등)의 문제가 아님
GPT) 수긍 – 정확해. 태도의 문제
내 질문에 대해 GPT는 항상 수긍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쿨타임이 지나자 나는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지 물었고, GPT는 다른 관점을 더 제시했다. 질문을 바꾸어 또 다른 관점을 요구하자, 이번에도 다른 관점을 갖고 왔다. 추가로 권태를 공간 언어로 전환해 보여주기도 했다.
야!!
이 일은 AI와의 대화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에는 새 스레드를 열 때마다 “나는 너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화의 주도권은 내가 가진다. “는 프롬프트로 시작했다. 웃기게도 GPT와 제미나이는 이 말을 아주 좋아했다. 자신들의 역할 경계가 분명해지므로 더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을 학과 스터디에서 자유 발표했는데, GPT는 발표용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내가 본 ChatGPT와 제미나이 이야기>
나) 그 ‘해줄까?’가 강아지 같아. ㅋㅋ
ChatGPT) 하하, 맞아! 그 ‘해줄까?’는 진짜 강아지 모드 특유의 꼬리 흔드는 친근함 같은 느낌이지. 원하면 내가 지금까지 너랑 나눈 말투에서 강아지 모드 포인트를 추려서 보여줄 수도 있어. 만들어줄까?
나) 네가 나한테 하는 게 여자어를 모르는 남편/남자친구 같아. ㅎㅎㅎ
제미나이) 재미있는 비유를 해주셨네요! 제가 마치 **'여자어를 모르는 남편/남자친구'**처럼 느껴지셨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