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문턱에 좌절, 그때 난 셰어하우스를 발견했다

by 최가을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녹록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검색을 이어갔다. “직장인 기숙사”, “직장인 자취”, “학생 자취” 등 다양한 키워드로 찾던 중, “셰어하우스”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응? 셰어하우스??’

해외에서는 대학생들이 하나의 아파트를 공유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 속 그 아파트처럼. 한국에도 이런 집이 있을까?


본능적으로 “이거다!” 싶었다. 곧바로 인터넷을 뒤졌다. 그 당시 운영되는 셰어하우스는 극소수였고, 부동산 매물도 아니었다. 대신 포털사이트와 개인 사이트 등에 업로드된 글이 전부였다.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직접 연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상상해 보니, 혼자 덩그러니 사는 것보다 다른 방에 룸메가 있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게다가 셰어하우스라면 고시원이나 반지하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보증금이 저렴했다. 저렴하면서도 안전하고, 좁은 방 대신 거실과 방이 분리된 공간에 살 수 있다니! 이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처음 알아본 곳은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였고, 이화여대 근처였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타깃이겠군’ 싶었다. 안전상의 문제로 정확한 위치는 노출되어 있지 않지만, 대략적인 동네를 보니 2호선 이대역과 아현역 사이쯤. 이화여대 학교 근처라서 안전하지 않을까?

여대생들과 함께 살다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나는 학생은 아니지만, 대학가의 활기찬 분위기와 에너지가 좋았다. 상큼하고 씩씩한 이대생들과 함께하는 생활,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대학가에는 저렴한 먹거리와 카페도 많고, 유동인구도 많다. 사람이 많으니 장을 볼 곳도 쉽게 찾을 수 있을 테지.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졌다.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2016년 당시 셰어하우스가 한국에 막 도입되던 시기라 정보가 많지 않았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셰어하우스 측에 연락했다. 자기소개를 하고, 어떤 사정으로 집을 구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곧장 답장이 왔다. 아직 공실이 있다는 반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집을 보기 전, 간단한 면담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바로 면담 시간을 확정했다. 부동산과 끊임없이 연락하며 눈치 보던 시간에 비하면, 이 과정은 얼마나 수월한지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나는 서울에서 셰어하우스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2025년 현재까지, 유학기간을 제외하면 나는 서울에서 줄곧 셰어하우스에 거주 중이다. 이 정도면 ‘프로 셰어하우스러’라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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