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zue Jan 04. 2023

집단주의와 경쟁과열에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우리는 





#1. 손톱달



이해 할 수 없는 '입신양명'의 문화?



학교, 직업, 외모, 사는 동네, 차종등으로 서열화된 문화에 짓눌려 사는 한국 사회.











꿈을 꿨다. 아버지랑 손을 잡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가장 윗층으로 가자 값비싼 트위드 소재의 재킷세트를 입은 여성들과 스웨이드 가죽 재킷을 걸친 남성, 모피를 걸친 사람들이 우리를 반겼다.



허름한 면소재의 티를 입은 아버지와 나를 아래위로 훑더니, 트위드 재킷을 입고 있던 아주머니가 줄하나를 두고 저걸 무사히 건너가면 이 아파트에 가장 상층부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꿈속에서 본 그 줄은 아주 위태로웠다. 그 아래에는 몇천미터의 허공으로 떨어져 죽은 사체들이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아버지가 줄을 오르려 했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꽉 잡은 채 말했다.



"아빠. 그냥 우리 지하 주차장에 가자."



꿈속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우리 아들 여기서 행복하게 살게 해줄께"


(꿈속에서 나는 6살 소년이었다.)




그 뒤의 꿈 내용이 기억이 안난다만 그 부잣집 사람들이 주차장까지 따라왔던 느낌은 난다.



나는 가끔 이런 꿈들을 꾼다. 전쟁터에서 사격을 하기 위해 경기 테세속에 있거나, 괴물을 피해 친구들과 숨거나 혹은 아파트의 상층부에서 천공아래를 내려다 보는 꿈들을 말이다.




톨레 랑스. 개인주의에 대한 공동체의 배려. 소수자 보호.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사회. 학생 체벌을 금지하며 지금은 많은 것들이 완화되어 가고 있다.



'No hell bellow us, above us only sky'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존레논(비틀즈 멤버)중 imagine을 좋아하신다. 가사. 내 블로그에도 적어 둔 기억이 난다. 인상 깊은 구절이다.



'No hell bellow us, above us only sky'


우리 발아래 지옥은 없다. 위에는 하늘 뿐이다. 상상하라. 국가가 없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살인도 희생도 없는 곳. 몽상가가 아닙니다.



뭘 말하는 지 느껴진다. 존 레논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알고 있다.



개인주의자들의 모인 공간이 절대 '폭력적이지 않은 공간'임을 말해주는 노래 가사인 것이다. 나는 존 레논의 절절한 이 말들을 뼈에 박아 넣는다.




특히 인스타나 블로그를 하는 이유에 있어서도, 인정이 아니라 외로워서가 아니라 '내 생각 정리 공간'임을.



그래서 좋아요나 댓글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또 '안하무인'이라고 오해 받겠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썼다. 15살때부터니까 꾸준히 했으니 약 15년이 된 셈이다.



주변에서 팔로워 수가 많이 오르고 발전했다고 칭찬을 하거나 브런치 합격했다고 문학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한다.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정말. 평판으로 생각하고 그 목적으로 해본적은 결코 없다.



나는 양아치 부류들, 거저 먹고 겉으로 화려한 개살구들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고지식하다'고 많이들 말한다. 좋게는 '애어른같고, 장녀같고, 훌륭한 맡며느리감'이라며 예전에 이대쪽에 있을 때 듣곤 했다.



글을 보면 내가 굉장히 냉정한 사람일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낯가리는 겁많은 고양이같다는 생각을 분명 할거다. 내가 확신하고 이렇게 쓰는 이유는 우리가 가족은 물론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줄곧 그렇게 말해주고 대했기 때문이다. (말이 산으로 갔다.ㅎㅎ)




나는 오노레드 발자크를 가장 좋아한다. 서양 소설 문학중에. 그를 좋아한지는 약 8년이 되었다. 대학시절 알바를 해서 강박적으로 서양문학책들을 사모았다. 그 시절 문학동네 전집 시리즈를 읽어내리다. 오노레드 발자크의 신간 '나귀가죽'을 읽었다.



그의 작품은 영감을 주었다. 뭐랄까. 한 인간이 파우스트와 거래하여 성공에 매몰되어가지만 타락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 혼돈되어져 가는 스토리 전개 방식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를 조사했다. 발자크는 많은 사업을 했다. 출판 사업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사업을 하는 족족 망했고 어마어마한 부채를 졌다. 그 몫은 가족들에게 갔다. 하지만 발자크는 글재주가 있어 그 빚을 값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사채업자에게 쫒기면서도 글을 투고하고 받은 어마어마한 수입으로 사업을 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이 희곡 같아서 웃어 버렸다. 하지만 그의 도전 정신과 미친 듯이 글을 써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 보며 존경할 수 밖에..








#2. 표지판



수직적 집단주의 문화. 그러니까 학벌이나 어떤 직장에 살고 어떤 동네에 살고, 차종이나 아이들의 집 평수를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를 말한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식한 태도인가



-



과거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 고작 5학년이었다.


옆 친구가 그랬다.



"우리집은 평수가 50평이야. 이번에 새로 지은 집. 자이 아파트 살아. 나"



"혜주 넌 몇 평에 살아?"



그때 나는 아파트 평수에 대한 개념을 잘 몰랐다. 그전에는 '주공아파트'라는 곳에 살았다. 그보다 2배 큰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어떻게 대답할 까 고민을 하다 답했다.



"나 주공아파트 살았는데. 거기보단 큰거 같아."



그러자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도 있어?"



소위 말해 낙후된 아파트 지역에 살다 조금 괜찮은 도시로 왔는데, 아이들은 가난한 지역의 세계를 아예 알지 못했다. 뭐 나는 더 그부분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집에 무슨 영화 애니메이션 테이프가 많다며 구경을 간 기억이 있다.



우리집과 다르게 모든 가구가 새것이었고 그릇이며 가져다 주는 간식들이 다양하고 예뻤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그 자랑은, 어린 시절에도 아이들이 많이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부자동네 사람들도 경쟁 피라미드 속에 서로를 경계하고 은근한 시선속에 물어 뜯으려는 테세를 가하고 있다.



그런 탓일까?



나는 어릴 적 부터 그런 경쟁의식을 못느끼다 처음으로 느꼈던 나이가 25살이었다. 그 정도로 스스로가 좀 어벙벙한 성격이었다. 대학 졸업후 서울에 올라왔었다. 방송 촬영을 배우러 학원 등록을 한 상태였고, 고시원을 3개월 잡았다. (그럼 1~2만원 깎아줬기 때문이었다.)



학원이 갑작스레 폐강이 되면서 계약한 고시원에 발이 묶인 상태 였다.



그래서 월세와 각종 휴대폰, 식비 등등을 마련하며 계약기간인 딱 3개월만 머물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보며 처음으로 강박적으로 일처리를 하게 되었다. 잡지나사 사진관은 전문직이기 때문에 직원동료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그 이상의 역량을 내지 못하면 윗사람 눈에 나고, 일주일도 안되서 잘릴 수 있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다를 바 없이 스카이 대학을 나온 사람이 내 자리 옆에 있었다. 그들은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회사의 윗사람들의 '예우'의 실체는 남달랐다.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지'



이건 어디서나 중요하다는 그 사실을. 서울에 2년간 있으면서 몸소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를 뼈저리게 느낀 건 어느 직장이나 존재했고, 대학생들의 그 '과잠'이란 풍조들을 연세대 근처에 돌아다니며 몸소 느꼈다.



신촌 거리를 다니면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터울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심지어 나보다 어려도 좋은 학벌을 가진 친구들에게 눈에 나면 안되는 회사가 많았다. 후배들에게 마저 극 존칭과 예우를 차려야 하며 집단 주의에 군대 이상의 갑질 문화가 팽배했다.



어느 지방에 회사나 갑질 문화를 피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우리가 회사에서 혹은 사회에서 학교에서 전이되어져 온 태도들을 알게 모르게 답습해 온 우월의식의 행동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내 생각을 말하면 ..



그냥 남을 안 부러워 하면 안되나? 그리고 남들로부터 벗어나 개인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게 나쁜가? 이다. 예를 들어 회사 회식 문화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회사측에서 '개인이 꼭 술문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단체 생활에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믿음'은 회식 문화에 참석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이방인처럼 대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회식을 참여하지 않는다 해서 암묵적으로 직원을 이방인처럼 대한다면 그 회사는 기필코 좋은 회사는 아니라고 본다.



회사는 서로가 좋기 위해 다니는 곳이다. 유령취급당하면 그 사람은 일을 잘해서 많은 업무를 처리하더라도 관두기 마련이다.



회사가 가족이라는 말은 썩었다. 회사는 돈을 벌러 가는 곳이다. 회사는 철저히 '일의 능률을 올리고, 일거리를 잘 처리해 회사의 입지를 올리는 경력'과 관련되어 있을 순 있어도 그것이 '친목'이면 안된다고 본다.




그래선지 나는 회사에서 도외적으로 행동을 한다. 지방에 일했을 때도 그랬다.태생이 부산 사람인데도 서울 깍쟁이에 버금갈 정도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일로써 야근을 많이 시키고 말지만, 늘 회식을 강요받지는 않았다.













#3.전봇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유를 침해 당해야 하는 순간들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연대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사회를 견뎌내는 방법을 배워가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 개개인이 흩어져 생활하는 시기 가족공동체로 부터 뗸석기와 간석기를 활용해 음식을 채집하고 먹던 시기를 떠올려 보면 어떤가?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해 옆에 있는 호모사피엔스에게 필연적으로 그 방법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인생이 꼭 매일 매일 뒷통수를 맞고 배워가는 깨달음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다.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과거 서양문물에서 들어온 기이한 문화중 지금 가장 일반적으로 여기는 사상이 여기 있다.



타인을 위하는 길이 나를 위한 길이다. 서양에서는 타인과 함께하는 공동체. 그리고 개인의 분수를 지킬줄 하는 노예생활 즉 히바이어던이라는 집단폭력으로써 노출되어져 왔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취임시기가 되면 두 편으로 나눠 싸운다. 나는 이 태도에서 바라보는 '객관적 지표'가 과연 개인의 행복을 얼마나 가져다 주고 있는가 의문을 느낀다.



많은 장점을 가진 한국에 이민을 온 사람들이 다시 떠나고자 하는 이유. 양극화, 빈부격차, 불평등, 취업난, 저성장등이 한국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이내 21세기까지 반문되어져 오는 사상은 '군대식 모델화'는 변화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주의'는 일반적으로 저주받은 주홍글씨처럼 한 사람을 폄하하기 쉬운 조건으로 놓이게 만든다. 개인주의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좀 흔한 말이지만,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의 전략을 수렴하는 사람을 뜻한다. 서구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성은 사회 존립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합리적 태도'는 개인만이 할 수 없지만 전략적으로 나 자신의 이익과 동시에 '반대의 인센티브(불이익)'을 받아들이며 이 중간에서 적절히 타협하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다들 행복합시다. :) !!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개인주의자'로 서는 것을 두려워 말길 바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