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해야만 일할 수 있는 사람들

장애 여성 노동자의 하루가 말해주는 것들

by hyejoocontext




서울의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계단식으로 된 에스컬레이터와 가파른 계단, 그리고 비좁은 입구에 자리한 승강기가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비교적 신체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이기에 이러한 시설을 큰 불편 없이 오가며 걸어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지체장애인들은 공공시설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된다. 이것 또한 사회가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40대 후반의 뇌 병변 ‘장애 여성’인 한 여성은 출판사에서 교정·교열 업무를 한 지 10년째다. 그녀와 같은 다른 장애인들의 경우도 ‘쓸모 있음’을 증명해야만 간신히 취업할 수 있다. 장애인의 경우 2021년 기준 한국에서 만 15세 이상이 되면 대개 학업을 중단했다. 당시 장애인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62.7%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었으며, 장애인 고용률은 37.3%로 장애인 3명 중 1명 수준에 불과하다.


장애인은 교육을 이어 가기도 어렵지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도 좁다. 장애인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또한 드물다. 2022년 하반기 기준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취업자 중 다수가 사회복지업이나 보건업에 종사하는데, 이 비율은 12.5%에 그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연민을 받으며 보호받아야 할 대상, 즉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인식된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인간답게 일할 선택권은 지나치게 협소해진다는 점이 큰 문제다. 장애인의 노동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이것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장애인들에게 노동할 기회가 없어 복지와 재활의 대상이 되면서도, 정작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성은 소외되기 때문이다.




‘선량한 차별’ 속에 놓인 장애인들은 대부분 ‘장애인 재택근무’라는 키워드 안에서 선택지를 찾아야 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경우 대개 상담직이나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택근무로 생계를 이어 간다. 업무는 홈페이지 모니터링, 포토샵 작업, 블로그 관리, 온라인 홍보·마케팅 등으로 한정된다.





취업 기회 확대를 위해 정부는 의무고용제를 채택했는데, 이는 1990년 「장애인 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도입되었다. 장애운동사에서 의무고용제는 1980년대 1세대 장애인 운동가들이 장애인 생존권 보장이라는 절실한 요구와 함께 쟁취한 성과다. 그러나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1991년 당시 의무고용률은 2%에 불과했다. 의무 고용이라는 이유로 패널티를 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장애인의 임금 수준은 매우 낮다. 또한 장애의 정도(경증, 중증)에 따라, 그리고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따라 임금 격차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남성 장애인조차 고용될 기회가 부족한 상황에서 여성 장애인은 거의 채용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사실 중 하나는 현 장애인 근무자 인터뷰 조사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 제1항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거쳐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장애인의 적절한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임금과 노동권이 침해되는 허탈한 상황을,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 한 사람인 그들이 더 이상 겪지 않기를 바란다.


재택근무의 경우 근무 환경 개선의 책임은 오롯이 근무자에게 돌아가며, 회사에서 지급해야 할 서류 용지나 필기구 등도 장애인들이 직접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일하는 것도 서러운데, 매일 방 한켠에 앉아 적은 급여로 회사가 부담하지 않은 사무용품을 하나하나 구입해야 하는 노동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대중교통조차 자유롭게 이용하기 힘든 사람에게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공공시설의 잔인함까지 떠올린다면, 심리적 막막함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애인 근로자는 근무 환경이나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 재택근무를 지속할수록 시력이 나빠지고 근육통을 완화할 운동조차 하지 못해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 회사들은 보험이나 배상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일하는 장애 여성으로서 직장인 건강검진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흔하다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 지체장애인의 경우 ‘운동을 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고, 두통을 비롯해 비뇨생식기 증상, 뇌·심장·혈관·뼈 등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받게 된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장애인과 아픈 몸에 대한 혐오와 동정이 공존한다. 장애인 또한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독립을 원하는 장애인들 역시 노동자로서 오늘의 하루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장애가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뒤처진다는 이유로 비상식적으로 기회를 제한하고, 시설을 편협하게 유지하는 현실은 2026년의 지금에 와서는 너무 뒤처진 시대의 흐름이 아닌지 되짚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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