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득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렇게 주식을 가만히 가지고만 있는 게 답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그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한 마디씩 던진다. 다투진 않지만 남편과 나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팽팽한 신경전이 돈다. 몇 주째 공을 들여도 넘어오지 않자 급기야 자신의 계좌를 내밀며 수익률을 보여준다.
테슬라, 엔비디아, AMD,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네, 김 비디아님. 좋으시겠어요.‘
그간 테슬라를 비트코인 보듯 취급하던 나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수익률을 보고 속으로 놀라긴 했다. 최근 뉴스와 방송에서는 미국 빅 테크 기업 주가의 급등으로 주식시장이 흥분된 상태였다. 박스권에 갇혀 있는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을 사서 수익을 낸 건 민첩하게 움직인 남편의 투자 성과였다. 좋은 일이다. 우린 경쟁자가 아니라 부부니까. 단지 증권계좌를 나눠서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 심기가 불편했다.
정기적으로 각자 가지고 있는 주식을 함께 점검하곤 했지만 요즘 통 나는 박스권에 갇힌 코스피 지수처럼 박스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동학 개미인 나에게 당장 서학 개미가 돼 보라는 설득은 고공 행진하는 주가를 보면서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주식을 사며 갑자기 트럼프가 된 양 자국 주의와 애국심이 발동했다. 아니, 어쩌면 나처럼 게으르고 우직한 곰 같은 투자자에게 리밸런싱 (금융 자산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을 주기로 투자처를 재조정하는 일)을 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주식은 사서 오랜 기간 동안 보유해야 한다는 제2의 워런 버핏이 되려는 나에게 혼란이 찾아왔다. 마치 내가 겨우 흔들리지 않게 쌓아놓은 돌탑이 무너지려는 느낌이랄까.
엔비디아 주가
방송과 신문에서는 연일 미국 주식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많은 이들은 한국과 미국 주식시장을 비교하며 한국 시장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왜 미국 주식을 사야 하는가 ‘를 외쳤다. 현대차는 테슬라와 비교되고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비교되었다. 전자들은 시가총액과 성장성, 주가에서 완패였다.
미국 주식 시장이 가진 몇 가지 훌륭한 점은 명백해 보였다. 나의 잠을 방해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미국 나스닥 지수와 테크 주의 수익률이라면 기꺼이 희생해도 될 듯했다.
주주 중심의 기업의식, 안정적인 배당과 기업의 실적, 다른 요인들보다는 주로 실적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
미국은 세계의 자본을 주도하는 시장이자 세계적인 기업이 수두룩한 곳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이제야 주식이 오르니 말이지 마이크로소프트 노트북을 매일 두드리고 나이키를 신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도 익숙한 일상이라 별 신경을 안 썼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대화에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넷플릭스에 가입하지 않은 나는 친구들에게 말이 안 통한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몇 달 전 내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살 때만 해도 매매 시간이 실시간 10분 지연으로 다른 앱을 켜고 따로 봐야 했다. 지금은 증권사에서 환전도, 매매 시간도 실시간 서비스로 제공되었다. 수익의 2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수익률에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똥고집과 오픈 마인드 사이에서 나는 갈등했다. 얇은 귀와 중심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나를 시험했다. 나는 나만의 투자 방식과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내 것을 고수하려 했다. 투자에 있어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최소로 가져가려는 나에게 위기가 찾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수익이 지지부진한 것은 기꺼이 기다리고 견뎠지만 새로운 수익을 찾아 나서는 일에는 게을렀다. 신문을 보고 최근 동향을 스크랩했지만 스크랩만 했다. 메타버스와 NFT 이야기가 신문에 나온 지 오래지만 나는 읽기만 했다.
우리 집에는 미국 주식이 이렇게 오르기 훨씬 전에 사놓은 책들도 많았다. 『미국 주식이 답이다』, 『미국 배당주 투자』, 『슈퍼리치는 해외에 투자한다』...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미국 주식이냐 한국 주식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쌓아놓은 돌탑이 균형을 조금 더 탄탄하게 유지하기 위해 돌의 위치를 바꾼다거나 다른 돌을 가져오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아도 괜히 한 번 건드려볼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Buy & Hold 전략을 찬양하며 내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였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두드리지도 건너지도 않았다.
내가 가진 자산의 ’ 리밸런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리밸런싱은 주기적으로 실제 투자 비중을 목표 비중과 맞추는 것이다. 만약 자산의 60 퍼센트를 주식, 40 퍼센트를 채권에 투자한다면 상황에 따라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종목의 산업별 분야를 다양하게 가질 수도 있고 한국, 중국, 미국 주식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듯하다. 원자재, 금, 리츠와 ETF를 가지고 안정자산과 변동 자산의 상쇄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시장은 늘 변수가 있으니 상황에 따라 비율을 조정하거나 포트폴리오 종목을 변경하는 것이다. 리밸런싱은 결국 위험을 줄이고 자산을 안정적으로 늘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워런 버핏도 리밸런싱은 주기적으로 실행했을 것이다. 나는 기업이 하는 사업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한 계속 보유할 종목을 분류했다. 개인적으로 주식은 ’ 기다림‘을 실행할 때 보상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는 종목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다. 비바람이 불어 다시 돌탑을 쌓아야 할 상황을 대비하고 때에 맞춰 변화를 주는 일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쁘고 번거롭고 힘들어도 투자라는 영역에 들어온 이상 가치에 대한 판단,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 새로운 종목의 발굴은 필수였다. 나는 민첩함과 과감함보다는 신중함을, 신속한 판단보다는 지켜보는 쪽에 속했다. 천천히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주식도 그렇게 고르고 운용했다.
어떤 성향이 항상 주식시장이라는 시장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다르다. 그래서 꾸준히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다. 『거인의 포트폴리오』의 저자 강환국은 자산의 배분을 6개월, 또는 1년에 한 번 리밸런싱함으로써 연 8~15퍼센트의 복리수익을 유지하면 10년, 20년 후 원금이 놀랍게 불어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변화가 늘 과감하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천천히 과거를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이루어지는 변화도 있다. 나의 리밸런싱도 그렇게 해나가야겠다. 자산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 힘쓰면서. 고집쟁이 영감처럼 굴지 말고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어쩌면 늘 같은 자리에서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AI가 아니니까 늘 흔들린다.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로 또는 더 나은 방식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할 뿐.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나 같은 투자자에게도 리밸런싱은 필요하다. 단지 미국 주식이 호황이라서 따라갈 생각은 없다. 똥고집인지 몰라도 이것도 내 중심이다. 대세를 따라가느라 끌려다니는 리밸런싱이 아니라 내 자산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