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그 슬리퍼 대신 ETF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28)

by 김세인

올해는 숏 패딩을 입고 어그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띈다. 나는 검은색 두터운 롱 패딩을 입고 다닌다. 유난히 올해는 그 옷이 무겁고 답답해 보인다. 나는 어그 슬리퍼를 검색해보기는 하지만 뒤꿈치가 추울 것 같고 비싼 것 같아 망설인다. 결제는 유행이 다 지난 내년에 할지도 모르겠다.


패션뿐 아니라 나는 대세를 따라가는 데 느리다. 나이 먹고 갑자기 개성이 생겼는지 유행을 거스르고 싶은 심리도 생긴다. 인스타그램보다는 네이버 검색창이 익숙하고 E-book보다는 종이책이 좋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거부하거나 고개도 안 돌리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따라가고는 싶지만 게으른 사람, 재빠르게 변화를 따라가는 사람, 심지어 변화를 앞서 나가는 사람. 나는 고개도 안 돌리다가 뒤처지는 사람 쪽에 속한다. 얼리 어답터인 남편에 비해 나는 버티다 버티다 안될 것 같으면 그제야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인다.




이런 나의 성향이 투자할 때도 여실히 드러난다. 수소차, 메타버스, NFT와 같은 대세의 흐름과 관련된 주식은 검증되기 전까지 사지 않는 편이다. 물론 이런 종목들은 변화를 선반영 하기 때문에 초반에 급등했다가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긴 하다.


요즘 나의 포트폴리오는 정체되어 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로 전기차와 바이오 종목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새로 들어올 친구가 필요하다. 뉴페이스가 들어와서 분위기를 상큼하게 해 주면 좋겠는데 너무 새롭거나 분위기가 다른 친구는 또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분위기에 맞는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문에서 ETF라는 단어를 읽은 건 몇 년 전이다.

처음에는 ESL이다 ETF이야 하는 용어들이 생소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니 관심도 없었다. ETF는 Exchange Traded Fund의 약자로 상장되어 있는 주식의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코스피 2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한국을 대표하는 200개의 대형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산다면 미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500개의 대형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TF가 활성화되면서 최근에는 산업별 섹터별로 모아놓은 상품이 많다.


IT, 전기차, 헬스케어, 금융, 리츠, 반도체 등 목적과 성격에 따라 만들어놓은 ETF의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사실 나는 ETF는 투자하는 재미도, 수익률 면에서도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장의 분위기가 좋은 강세장일 때는 더욱이 그랬다.


ETF를 사면 수동형 투자자가 되는 것만 같았다. 상의만 마음에 드는데 세트로만 파는 옷을 사는 느낌이랄까.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을 때는 세트도 좋지만 내가 살 때는 필요한 것만 고르는 게 가성비가 좋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세트 말고 특별한 물건을 고르고 싶었다.


ETF의 수익률을 은근히 무시하던 나는 TIGER 차이나 전기차 ETF가 9천 원대부터 2만 원대까지 꾸준히 오르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쇼핑하듯 ETF에 투자한다』의 저자는 자산형성에 있어 ETF는 시간의 힘과 분배, 안정성을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ETF의 장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주식처럼 사고파는 일이 쉽고 수수료도 펀드에 비해 낮다. 하나의 종목에 투자하는 것보다 전 종목에 투자하는 효과가 있어서 상쇄 효과가 있다. 테슬라를 사고 싶지만 변동성이나 일론 머스크가 불안하다면 테슬라가 포함된 ETF를 사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중국 주식을 사고 싶지만 시진핑의 한 마디에 리스크가 있다면 중국 주식 대신 ETF를 살 수 있다. 한 주에 3,390달러인 아마존 주식이 넘사벽이라면 아마존을 포함한 ETF를 살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ETF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인 두려움을 낮춰준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두려움을 이기려면 주식을 팔아버리는 것 외에는 없어 보이는 시절이 있었다. 주식을 팔면 일단 내 돈이 사라지고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힘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정신적인 훈련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지금도 급락장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시장을 이기려는 긴장감과 오만함 대신 시장 전체와 함께 간다는 느낌이 바로 ETF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개의 종목 중에 내가 가진 종목의 오르내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보다는 시장 전체를 사는 편이 심리적인 압박감이 훨씬 덜하다. 주식을 접하는 초보자나 일일이 분석하는 일이 버겁고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ETF는 투자의 좋은 대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포트폴리오 구성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과 리츠, 금, 배당주와 같은 ETF로 경기를 방어한다거나 전기차, 친환경, 자율주행, 반도체와 같은 미래 유망산업 ETF로 투자할 수 있다. 다양한 상품의 ETF에 투자하면서 내가 투자하지 못한 사각지대도 도전해볼 수 있다.




사고 싶은 ETF가 많아졌다. 자율주행차, 친환경, 디지털 헬스케어, 명품, 물류센터 리츠, 원자재, IT... 개별 종목을 고르는 재미를 남겨두고 투자 자산 중에 ETF 비율을 조금씩 늘려보려 한다. 새내기에서 이제 전 세계에 8천 개 가량의 상품이 있다는 제법 무르익은 ETF 시장이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날로그형 인간이 디지털 인간으로 급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나에게 연습이 필요하다. 변화를 관찰하고 살피는 일부터 의미 있는 변화를 분별하고, 취하는 일까지. 도태를 두려워하느니 미래에서 더 나은 성장의 기회를, 또 다른 희망을 찾는 일이 훨씬 낫다.


어그 부츠 대신 ETF를 사야겠다.

망설이지 말고 천천히 모아봐야겠다.

내일 말고 오늘.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흔들려야 밸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