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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Oct 06. 2022

뒷모습이 예쁜 사람의 비밀

Vita Activa를 위하여 (3)

그녀는 뒷모습이 예뻤다. 

군더더기 지방이 없는 등라인이 매끈했다. 무엇보다 걷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아씨의 걸음걸이처럼 여성스럽고 우아한 느낌이라기엔 보폭이 조금 더 컸다. 여군처럼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펴고 걸었지만 그렇게 딱딱하지는 않았다. 자신 있어 보이지만 오만한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넋을 놓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껏 그런 느낌으로 걷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언니, 어떻게 저렇게 걸을 수가 있지?
자매끼리 날씬한 몸매는 같은데 언니랑 뒤태가 달라.”


나는 공원에서 산책하던 그날, 두 자매와 걷고 있었다. 

앞서가는 언니는 네 자매 중 첫째 언니였다. 그녀의 나이는 40대 초반이었다. 163 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긴 머리를 높게 묶고 있었다. 슬림한 티셔츠와 반바지의 운동복 차림이었다. 건강한 기운이 돋보였다. 나는 그녀가 평소에 운동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단단한 몸이 낯설지 않았다. 나와 함께 걷고 있던 둘째 언니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의 모델 같은 키와 몸매보다 첫째 언니의 자태가 더 탐이 났다.


40대지만 20대보다 더 자신 있고 건강해 보였다. 단지 처지는 살이 없고 일자로 쭉 뻗은 다리가 날씬해서만은 아니었다. 공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강아지들이 걷고 있었는데 한 사람만 남달랐다. 처음에 나는 그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걷는 모습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가느다란 허리로 상체를 반듯이 세우고 있었다. 


“언니 혹시 모델 수업받은 적 있어요?”

“아니, 무슨.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바른 자세로 걷는 연습은 했던 것 같아.”


나는 뒤에서 몰래 언니를 따라 해 봤다. 

일단 어깨를 펴고 구부정했던 상체를 의식적으로 세우면서 걸었다. 보폭은 다른 사람보다 살짝 더 크고 자신 있게. 새삼스럽지만 다리가 서로 스치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를 따라 한다고 당장 그렇게 걸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특정한 움직임을 만들려고 쓰는 근육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훈련해야 몸에 저장되니까.  


트레이너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회원님, 팔자걸음인 거 알고 계시죠?”

‘알 리가 있나요. 엄마가 말한 적은 있는데 귓등으로 듣긴 했죠.’


나는 그 말을 들은 뒤로 한동안 보도블록을 걸을 때 한 줄을 따라 반듯이 걸어봤다. 몇 걸음 안 걸었는데 걷는 일이 그렇게 피로할 줄 몰랐다.




먹고, 자고, 말하고, 걷는 일. 

사소해 보이지만 매일 하는 일들에 자신만의 중심축을 세운다는 것, 코어운동을 하듯 배꼽의 힘만으로 상체와 하체를 버티는 시간을 늘린다는 것, 내 안에서 생각하는 일들이 몸에 배도록 일치시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시 언니의 걸음걸이와 뒤태를 떠올리며 걸어봤다.

힙에 잔뜩 힘을 주고 팔자걸음의 역사는 없었다는 듯. 걸으면서 불현듯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집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나는 평소에 그녀가 ‘나이스’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우리 사이엔 적당한 간격이 있었지만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떤 일에 욕심부리기보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타인을 따뜻하고 정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몸이 아파도 누군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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