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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Oct 08. 2022

내 사진이 없다

바람의 감촉이 다른 날이 있다.

일주일 전쯤 나는 평소와는 다른 바람을 느꼈다. 아직 찬 바람은 아니었다. 나의 무드로는 소슬바람이었다. 소소하고 쓸쓸한 가을을 예감하는. 아직 가을바람을 맞을 준비를 못했기에 살짝 당황했다. 


싸이의 노래를 듣다가 서둘러 김동률 노래를 들어야만 할 것 같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잡지 속 검정 목폴라에 브라운 체크 재킷을 입은 모델 사진을 보고 나도 그렇게 입고 싶어졌다. 


오랜 친구들의 단톡방에는 수년 전 함께 찍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싸이월드 사진첩이 복구되었다고 했다. 먼지 쌓인 앨범을 꺼내 보듯 나도 내 미니홈피에 들어가 사진첩을 클릭했다.


청재킷 안에 흰 면티와 주황색 후드티를 겹쳐 입은 긴 생머리의 대학생이 보였다. 대학 캠퍼스 잔디에 동기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는 컷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웨이브가 살짝 있는 긴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고 바닷가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아가씨도 보였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사진, 태국에서 망고를 먹고 있는 사진, 큰 링 귀걸이에 털모자를 쓰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산속 벤치에 앉아 있는 사진, 클럽에 갈 준비를 하는지 어깨가 드러난 미니 원피스를 입고 한껏 화장을 하고 있는 사진....


싸이월드에는 온통 내 사진뿐이었다. 

내 모습이지만 낯설었다. 지금은 사진 찍을 때 이토록 어색한 포즈가 그때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두 달에 한 번은 갈색이나 와인색을 넣어 염색을 하러 가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염색하지 않은 검은 머리도 예뻤다. 싸이월드에 담긴 사진들은 20대의 나였다.




30대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핸드폰 갤러리를 열었다. 아이들 사진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막 태어나서 울고 있는 사진부터 걸음마 하는 사진,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날까지 10년 가까이 아이들이 성장해온 시간들이 담겨 있다. 아이들은 어떻게 찍어도 예쁘고 귀여웠다. 


가끔 내 사진이 보이긴 했다. 

화장기가 없었고 눈웃음은 눈가 주름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피부의 생기는 탯줄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된 것 같았다. 입술은 바셀린만 발랐는지 핏기가 없었고 분명 머리는 길었는데 축 처진 말꼬리처럼 윤기가 없었다. 상의는 주로 헐렁한 티셔츠를 즐겨 입고 포즈는 어정쩡하니 다리는 더 짧고 굵어 보였다. 내 사진을 보면 왠지 초라하게 느껴져 삭제 버튼을 클릭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이 시시때때로 사진 찍는데 열중하면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요즘은 문득 내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와서 왜 내 사진이 이렇게도 없는 건지 억울한 심정은 뭘까. 아줌마가 된 후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괜히 이것도 저것도 심술이 났나. 


풍경도, 음식도 말고 굳이 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는 어떤 욕구가 숨어 있는 걸까.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나 자신을 이제 가꾸고 싶은 걸까. 새하얀 셔츠도 입고, 예쁜 척도 좀 하고. 지나고 나면 지금이 또 젊은 날일 테니 시간을 붙들어 사진으로라도 젊은 나를 찍어야 할 것 같다. 


스노우 앱으로 풀 메이크업한 효과를 누리고 흑백사진의 힘을 빌려 주름은 가리는 거다. 마스카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속눈썹을 뷰러로 올리고 립스틱은 오렌지톤이나 핫핑크 정도로 바르고. 눈가에 주름이 좀 지더라도 미소 짓고. 너무 활짝 웃지 말고 살짝만.


나도 모르게 그동안 주눅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외모를 가꾸지 못한 시간들과 스스로 나를 의식하는 시선이 자신 없어 사진을 찍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친구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갓난아기를 안은 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이 말이 아니다.”

“얼굴 좋기만 한데 뭘.”

“어플로 찍은 거야. 그냥 사진은 찍을 수가 없어.”

“엄마인 모습 그대로 그 자체로 예뻐, 친구야.”


진심이었다. 

문득 나는 생각했다. 

롱 원피스를 휘날리며 화보처럼 찍은 지인 아줌마의 사진보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뒷산을 걷는 나의 모습이 더 멋들어진 한 컷일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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