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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Jan 06. 2022

치밀하게 끈질기게

박완서의 단편집을 읽고

대학 때만 해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읽으며 우주로 가는 상상을 펼쳤다. 페이지에 여백을 찾기 힘든 『토지』를 오기로 완독했다. 일본 작가들의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강의가 시작되기 전 소설책을 한 권씩 옆에 끼고 다니며 작은 행복을 즐겼다. 대학을 졸업한 후로 나는 좀처럼 소설책을 읽지 않았다. 소설을 읽고 있을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비문학을 읽고 지식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박완서.

많이 들어본 작가 이름이었다. 그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인 『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는 알고 있었지만 읽어본 적은 없었다. 고리타분하고 올드한 작가일 줄 알았다. 워낙 작품들이 많아 무엇을 읽을지 모르기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그의 단편집을 읽고 다른 할 일도 잊은 채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박완서라는 작가를 만났다.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 × 박완서』는 동네서점들의 투표로 문학동네 대표작가들의 중단편을 엄선해서 만든 컬렉션 시리즈이다. 독립서점에서만 살 수 있다. 산뜻한 핑크색 표지에 얇은 책의 두께는 단숨에라도 읽을 수 있을 듯한 호감을 준다. 이 책에는 네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도둑맞은 가난』은 반전이 있는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드라마였다면 왠지 빈민가에는 어울리지 않는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엄청난 비난을 받는 막장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난을 정면으로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이런 특이한 발랄함을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치를 떨며 경멸했던가....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을 꼬여서 같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흡사 찌개 속의 멸치처럼 눈을 동자 없이 하얗게 뒤집어깐 추한 주검과, 냄새나는 가난을 나에게 떠맡기고.                                                                                                                                                                              p.46


빈민가의 한 여성의 이야기는 가난에 대한 진정성과 처절함, 로맨틱하지만은 않은 낭만과 분노가 엉켜있었다. 그 남자에게 도둑맞은 가난 한편에 악착같이 지켰던 삶에 대한 희망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아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떤 것이든 도둑맞는다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다.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더욱 황폐하게 만든다.


나에게 새삼 문학의 기능을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은 『그 여자네 집』이었다.

소설 속 도입부에 소개된 김용택 시인의 시 ‘그 여자네 집’은 길어서인지 잘 읽히지 않았지만 소설 속 이야기는 마치 소나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그 여자네 집』을 읽으며 새삼 문학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이야기하고 위로해주는 일, 만득이처럼 끌려가지 않은 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일.      


“삼천리강산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버리니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장만득 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p.96   

만득이의 말은 마치 세월호 생존자의 아픔은 생각해본 적이 있냐는 말 같았다. 살구꽃이 하얗게 내리는 그 여자네 집은 곱단이와 만득이의 가슴 아픈 사랑을 넘어 그 시대의 아픔의 상징일 것이다. 어두운 비극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소설은 마치 아직도 싱그러움이 남아 있는 노인 만득이처럼 독자에게 아련한 추억과 희생의 아픔을 동시에 남긴다.


평범해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 그 속에 숨겨진 이면들. 『친절한 복희씨』는 영화 제목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 속 복희씨의 남편은 얼핏 추한 노인네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여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표출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복희씨가 마치 자기 몸인듯 한강에 던진 고약 덩어리를 던지는 장면이 나는 좋았다. 이를 갈며 ‘더 이상 내가 너에게 친절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나는 이제 자유로워지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자의 복잡한 내면과 심리를 통렬하고 날카롭게 파헤친 이런 소설은 참 혼자 읽기 아깝다.


나에게 각성제가 된 소설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였다.

초반부에 한국전쟁 시절 피난길에서 눈발에 날리는 남대문을 떠올리는 장면은 독자에게도 아련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그리게 한다. 세 번 결혼한 주인공 ‘나’와 어머니, 그녀의 남편들, 세 명의 동창들을 통해 인간의 속물성을 보게 된다. 미묘한 여자들의 신경전과 어떤 사람인지 꿰뚫는 세세한 외모 묘사, 세 남편의 이중성은 작품의 묘미 중 하나다.    


내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출렁이고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모자라 ××학원 등에서 별의별 지식을 다 배웠을 거다. 그러나 아무도 부끄러움은 안 가르쳤을 거다.                                                                                                                                                                                          p.38  

  

이 작품을 읽고 나는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부끄러움을 안 느끼고 살면 참 편할 일이다. 어린 시절 거짓말하는 일, 친구를 따돌리는 일, 시험 볼 때 커닝하는 일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배웠다. 성당에서는 10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일이 부끄러워할 일이라 배웠다. 이제 더 깊이 나에게 묻고 싶다. 살면서 ‘너’가 아닌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은 무엇인가. 영어, 수학, 국어를 공부하는 일에 치여 마음 깊이 부끄러워할 일에 대해 분별력을 잊는 일은 없도록 아이들과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많은 작품 중의 일부만 읽었지만 박완서의 글은 신랄하면서 현실적이다.

주인공의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내면에서는 폭발한 듯한 느낌이다. 일어날 것 같지 않는 일을 그린 소설적인 느낌이라기보다 옆집 여자와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사전을 찾아봐야 할 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들이 생경하고 남자들이 읽으면 과연 나처럼 공감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어색한 어휘들은 우리말을 살리고자 하는 작가의 애씀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기꺼이 사전을 찾아본다.


천재적인 작가의 재능인지 사람의 심연까지 깊이 파고드는 끈질긴 정신력인지 알 길이 없지만 그의 작품에 누구의 인생이든 엮어 스며들어있지 않나 생각한다. 


치밀하게, 치열하게, 끈질기게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지 않고서 이렇게 쓸 수 있을까. 내가 읽은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 속 인물들은 나도 모르는 나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나의 엄마, 친구, 이모의 심정을 그린 것 같기도 했다.


감탄만 하지 말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책을 읽어보려는 나의 결심은 하필 대작가의 작품으로 시작해 깊이 감탄만 하고 실패하고 만다.

 

대학 때처럼 이제 소설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박완서 작가 덕분이다. 재미있으니까. 일단 소설은 재미있어야 제맛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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