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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Feb 11. 2022

시나리오는 누가 쓰나

'부의 시나리오' 서평

‘언젠가는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일은 수두룩하다.


식단 관리를 하고 근력운동을 해서 바디 프로필을 찍어봐야지.

매일 아침 영어 원서를 읽어야지.

집을 정리 정돈하고 인테리어를 해 봐야지.


많은 일들을 내일이 아닌 미래의 어느 날로 기약한다. 주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금리나 환율에 대해서도 공부해야지. 거시경제에 대해서도 알아야 통찰력이 생길 거야.’

언젠가를 기약하던 어느 날, 고공 행진하던 나스닥이 급락했다.

이때 만난 책이 오건영의 『부의 시나리오』이다.


저자를 알게 된 것은 유튜브 방송 ‘삼 프로 TV’였다. 그는 주로 금리와 환율과 같은 거시경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당장 원하는 답을 얻기에는 지루한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 전기차, 수소차의 전망이 어떤지, 오늘 주가는 왜 빠지는지, 미국 주식은 여전히 희망적인지 그런 이야기가 궁금했다. 누군가가 답을 내린 전망과 미시적인 관점을 듣기에도 바빴다. 그의 얘기에 동의하면서도 언젠가 필요하면 공부해야겠다는 안일한 판단을 내렸다.


『부의 시나리오』는 『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 『부의 대이동』에 이어 그의 세 번째 책이다. 목차를 보면 역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전반적인 책의 이미지는 캐주얼하다. 책의 표지에는 밝은 블루 계열에 카툰이 몇 컷 담겨 있다. 그래프와 숫자의 비중 대신 거의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이미지 삽입은 귀엽기도 하지만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기로 읽겠다고 다짐해 결국 이해 부족으로 패기를 접고 덮은 거시 경제서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달리 편안한 느낌으로 읽었다.

 

이 책은 꼼꼼하고 기본에 충실하며 유쾌한 과외선생님 같은 느낌이다. 자신이 섭렵한 방대한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하려는 선생님의 노력에 학생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게 된다. 그는 일방적으로 내 지식을 풀어헤치고 떠나지 않는다. 학생이 따라오는지 못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계속 개념을 확인시킨다.


“금리가 뭐라고 했죠?”

“돈의 값이요.”

“시중에 돈의 공급이 모자라면 금리가 어떻게 된다고 했죠?”

“금리는 올라가요. ”

“맞아요. 이번 코로나 19 사태처럼 금융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시중은행도 대출을 줄이고 실물경제나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주식시장도 무너져요.”

“그럼 누가 이 상황을 도울 수 있을까요?”

“시중은행들의 은행인 중앙은행(Fed)이 구원투수라고 하셨잖아요. 시중은행이나 기업, 이머징 국가에 현금을 공급해주는 거죠.”

“좋아요. Fed가 시장의 충격을 막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쓰는 거예요. ‘양적완화’라는 말 기사에서 많이 보셨죠? 양적완화라는 건.....”


이렇게 경제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고 이어가면서 경제학과를 나오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끌어가 주는 것이 이 책의 큰 매력이다.


1장에서는 코로나가 글로벌 경제환경에 미친 영향과 미국 중앙은행인 Fed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한다. 뉴스에서 자주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흘려 넘겼던 연준 의장이 하는 말의 의미와 의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1장이 미국의 상황에 집중되어 있다면 2장은 한국의 금리 상황을 이야기한다. 왜 한국이 미국처럼 강력한 정책을 쓰지 못하는지, 금리인하의 영향과 부작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3장의 주제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적정선으로 맞추기 위해 전례 없는 노력을 하는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 4장은 앞에서 설명한 개념들을 토대로 상황에 맞는 저자가 생각하는 투자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부의 시나리오’라는 매력적인 제목에 비해 4장이 약한 느낌은 있다. 제목만 보면 부로 가는 가상의 과정이 자세히 쓰여 있는 비밀 책이라도 된듯한 기대를 하게 되서 책을 읽고 실망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성장과 물가에 따른 투자전략이 새롭지는 않다. 저자의 시각을 제시하는 부분이 짧고 구체성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4장의 무게보다는 거시경제 입문서로서 장점이 부각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또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금융공부를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경험이었다.

읽고 듣는 것만으로 한계를 느낀 저자는 스스로 시장에 대해 분석하는 글을 매일 써보고 계속 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해 사내 메신저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했다고 한다.


쓴다는 것은 기억에 강렬하게 남기는 작업이고 동시에 나만의 데이터를 쌓아가는 작업이다. 바로 이 지점이 투자에 대한 분별력을 키우는 좋은 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따라해 봤다. 내가 제일 민망하지 않을 엄마와 동생과의 단톡방에 경제신문기사를 요약해서 올렸다.


"오, 누나 좋은데? 요약해서 올려주니까 경제신문 읽는 것 같아!"

내가 습관 만드려고 하는 일이니 신경쓰지 말고 안 봐도 된다고 동생에게 말했었다. 의외의 반응에 윙크 이모티콘으로 답장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투자자들은 폭풍이 몰아치는 주식시장에서 답답한 마음과 지식의 부족으로 차라리 누군가 나에게 지시를 내려줬으면 한다. 금리가 오를 것이므로 리츠, 금융주, 고배당주를 사라.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으니 에너지 업종을 사는게 좋겠다. 주식비중을 낮추고 현금을 보유하라.


그러나 부의 시나리오는 마냥 그렇게 흘러가지 않음을 많은 투자자들은 알고 있다.


이 책을 덮고 당장 금리와 환율, 성장과 물가를 고려해 투자를 결정하는 능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FOMC 회의 결과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양적완화’를 이해하게 되는 나는 전과 다른 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남이 써준 시나리오는 시간이 절약되고 연출하기 더 수월할지 모른다.


부의 탄력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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