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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Oct 29. 2022

춤추는 것처럼

Vita Activa를 위하여 (10)

관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의 조명이 켜졌다.

무대 위 영상이 비쳤다. 농촌의 풍경이 이어진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계속 움직이는 시선이다. 그러더니 여러 할머니들이 차례로 등장해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논밭에서든, 시장에서든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허리를 양옆으로 흔들며 명랑한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옆에서 민망하고 한심한 듯한 시선으로 춤추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 사람이 무대에 나와 안무를 하기 시작한다. 컬러가 화려한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모습이 눈에 띈다. 몇 분 후에 여러 무용수들이 무대에 나와 그야말로 막춤을 춘다. 빨간 내의에 몸배 바지를 입은 춤꾼들이 나와 전혀 통일성이 없는 몸짓을 격렬히 이어간다.


‘낭만에 대하여’와 ‘단발머리’ 노래가 흘러나오고 영상에서 봤던 평범한 할머니들이 등장한다. 

무용수들이 자신의 몸짓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골똘히 관찰하던 나는 그 장면에서 무너졌다. 내 머릿속에서 작품을 분석하려 들던 생각들이 멈췄다. 나는 상상으로 무대 위에 있는 할머니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얼마 전, 전국 무용제 개막식에서 보게 됐던 안은미 컴퍼니의 ‘조상님에게 바치는 댄스’ 공연이었다. 할머니들의 관광버스 춤은 누군가가 완벽하게 짜 놓은 안무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추는 춤도 아니었다. 그들이 만드는 몸짓 그 자체로 평범한 이의 삶 같았다. 


평소에는 시장에서 열심히 떡볶이를 팔고 농사를 짓고, 귀찮다고 웅크리고 힘들다고 드러누울수 만은 없으니 열심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고. 힘들 때면 음악과 함께 한바탕 춤을 추고 거기서 얻은 힘과 에너지로 다시 일상을 살아내고.


할머니들의 관광버스 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생기 있는 에너지를 주는 일들을 찾고 계속 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되 유쾌하고 유연하게 쫓아가길 바란다고. 활기를 위한 나의 열정들이 이완과 함께 하기를, 그 활기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며 멈추고 즐길 수 있기를. 젊을 때 혈기왕성으로 그치지 않고 노년으로 갈수록 균형을 이루고 빛날 수 있기를.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려 애쓰는 춤을 추고 있다면 나는 활기 있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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