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Activa를 위하여 (8)
“너는 혼자 맨날 바쁘잖아. 언니들이 챙겨주고 싶은 동생 스타일은 아니지.”
“야, 나 얼마나 언니들 말 잘 따르는데.”
“그런 거 있잖아.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정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처럼 들리네.”
친구는 주위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이미지에 대해 말했다.
가까이 가기에는 자기 둘레에 약간의 간격을 두는 사람. 뭔가 친해지기 어려운 동생. 만나자고 하면 만나는데 먼저 만나자고 하지는 않는 사람. 전업주부인데 바쁜 건지 바쁜 척 하는 건지 좀처럼 얼굴 보기 힘든 여자.
나는 단지 사교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일보다 혼자 하는 활동에 열중했을 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나에게 주어진 3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CEO라도 된 듯 30분 단위로 계획을 짜서 움직였다.
몸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해야 했고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놔야 했다.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과 읽을 책을 빌려야 내가 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커피숍에 가서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야 남편과 아이들에게 맥락 없이 짜증을 내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그때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 먼저 만나자고 할 에너지와 여유가 부족했다.
혼자 보내는 시간과 타인과 어울리는 시간의 비율이 7대 3은 되어야 일상이 잘 굴러갔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와 그 사이에는 적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어릴 때는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상처를 방어하기 위한 방도이기도 했다. 그 사이를 굳이 메꾸려 노력하지 않고 둔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습관으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나는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의 묘미를 알아갔다.
혼자 사우나의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고, 도서관 창가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잡지를 떠들어보고, 무서워서 혼자 정상까진 못 가도 뒷산을 걸으면 꽤 충만한 하루들이 모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를 읽다 가슴이 콕콕 찔린 적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집에 있는 날은 집에서 할 일을 빠듯하게 짠다. 나가는 날은 나가서 볼 일을 또 그렇게 꼼꼼히 짠다.
약속하지 않은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 차라도 나누게 되어 시간을 빼앗기게 되면 어쩌나 겁이 나는 것처럼 앞만 보고 종종걸음을 친다.’
나도 그랬다.
갑작스레 오늘 뭐하냐고 묻는 친구에게 어떻게 거절할지 핑곗거리를 생각했다. 나는 늘 계획이 있었고 일주일의 리듬을 맞추려는 욕구가 도사렸다. 인색함이라는 단어가 걸렸으리라.
고독을 향한 나의 의지는 묘비명에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쓰고 싶지 않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지식을 쌓든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혜를 쌓든 이렇다할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섰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한 절박함을 느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덮쳐왔다.
남보기에 그럴듯한 성취가 없을지라도 내 심보라도 들여다보고 고쳐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정 안되면 템플 스테이를 하러 절에 가거나 성당에 가서 기도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친구에게 말했다.
누가 봐도 친해지고 싶고 어울리기 좋은 사람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울타리를 치는 사람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지금 밖으로 나가 놀기엔 내가 뭔가 할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뭐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고 주절주절 늘어놓으면 '네가 데미안이냐고' 욕을 먹을 것 같으니 헛웃음만 지었다.
오해라기보다 상대에게 느껴지는 감각의 문제였다. 내가 고독과 사교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데 실패했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향한 ‘다정함’이라는 온도가 낮은 건지 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지 나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혹시 오만하거나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홀로’의 비율을 높이려는 건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얼굴의 빛과 마음의 생기가 외부의 힘에 휩쓸려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의 분주함이 자신으로 꽉찬 인간이 되는 길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활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