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인 Aug 08. 2023

글감이 밀렸다

나의 글쓰기 

‘이번 주는 또 뭘 쓰지.’


글쓰기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부터 나는 머릿속으로 글감을 찾아 헤맸다. 무엇을 쓸지 빨리 결정해야 그 주의 숙제를 겨우 해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주 가끔 글감을 주신 적이 있지만 대부분 스스로 찾아야 했다. 


두 번째 수업까지는 과제가 나왔다.


“다음 주는 내 눈이 향하는 곳에 대하여 써오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그 과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길을 가다 본 잘생긴 남자에 대해 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나는 잘생긴 남자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 주에 나는 ‘K 여교사의 D고등학교 근무일지’를 썼다. 학생들과 함께 하던 그때가 그립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그때부터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이 한참 더 이어졌다.

몇 달 전 장례를 치렀던 날을 기록했다. 소주를 한 잔씩 따르는 사람처럼 아버지의 모습을 한 컷씩 글에 담았다. 소주 대신 모니터 앞에 깜빡이는 커서를 친구 삼아. 


혼자 남은 엄마의 냉장고 안을 들여다 보며 또 한 편을 썼다. ‘간 맞추는 자격증은 없나요’라는 제목으로 요리를 유난히도 못하는 나, 기념일을 귀찮아하는 나, 엄마인 나에 대해 썼다. 나의 관심사나 취미를 쓰기도 했고, 신문을 보다가 인상 깊은 사건에 대해 쓰기도 했다.


내 얘기로는 쓸 말이 바닥나면 가족 이야기를 동원했다. 

글쓰기 수업을 같이 듣는 문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가족을 행여 만나면 나는 아는 사람인듯 반갑게 인사할 것만 같았다. 동의 없이 가족의 신상을 털고 나면 또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막막했다. 


글을 쓴지 1년이 지나자 글감이 바닥났다. 


더 이상 나에게서 나올 게 있을까 싶었다. 선생님께 이번 주는 도저히 못 쓰겠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 주에 내가 산 주식이 많이 떨어졌다. 감정이 뒤틀렸다. 평소에 주식을 사고 팔면서 느낀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숙제는 해야겠다 싶어 모니터를 열고 그 상태를 적어봤다. 그렇게 쭉쭉 막힘 없이 써질 줄 몰랐다.


“이번 주식 글 너무 재밌었어요. 저도 주식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의외의 반응이었다. 


“주식 이야기 몇 편 더 써보는 게 어때요?”

“네? 선생님 저 정말 별생각 없이 재미로 쓴 글인데요.”


선생님의 제안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앞으로 몇 주간은 쓸거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걱정을 덜 수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쓸 수 있는 말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그동안 논문과 책을 찾아가며 진지하게 썼던 노력들이 억울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주식을 소재로 연속으로 18편의 글을 썼다. 

주식을 사고 팔며 몇 번 뒤집혔던 속내를 꺼냈고, 그 속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들을 적었다. 드라마 대본 작가가 된 듯 매주 치열하게 썼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며 매주 쓸거리를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한 편 한 편 쓸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매주 쓸 글감을 고민을 하는 동안 나는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감지하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겉돌았고 딱딱했다. 북극에 간 이야기 정도는 써야 특별할 것 같았다. 밖에 있는 것들을 끌어다 억지스럽게 나와 연결시켰다. 그 안에 나를 발견하는 훈련을 할 때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글감을 끌어다 썼다. 


내가 쓰려는 글감이 식상하고 진부할 것 같다고 쓰기도 전부터 푸념을 늘어놓으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이다. 파란만장한 삶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겪은 나의 이야기와 감정, 사색도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많은 글을 쓰고서야 알았다.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 

이제야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이제 그곳에 서서 미묘하고, 모호해 보이는 지점을 나의 시선이라는 창문을 통해 포착할 수 있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면 나의 글감 리스트는 더 길어지리라. 


글감이 밀려 있다. 

‘이번 주는 또 뭘 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