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게임 정말 좋아하는데 게임 회사 가면 될까요?"
진로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좋아하는 컨텐츠로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학생,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웹툰 작가를 꿈꾸는 학생, 춤을 좋아해서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학생.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진로를 찾으려 합니다. 진로교육이 그렇게 가르쳐왔으니까요. "너의 적성과 흥미를 찾아라.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만들어라."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게임이 정말 그 학생만의 적성일까요? 게임은 원래 재미있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림도, 춤도, 영상 제작도 마찬가지죠.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영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적성'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좋아하는 일에서 몰입이 일어나고 능력이 발달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식'은 아닙니다.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직업으로 이어지는 길은 더 좁아집니다. 반대로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영역을 선택한 사람은 직업인이 될 가능성이 높죠. 시장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좋아한다"와 "그것으로 먹고산다"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진로교육은 학생들에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으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적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강조된 것이지, 인류가 오래전부터 활용해 온 보편적 기준은 아닙니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는 농사나 가업을 당연한 것처럼 이어갔죠. 지금처럼 다양한 직업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현재도 제한이 없는 건 아닙니다. 타고난 신체조건이나 학력, 경제적 여건 등 사람들은 저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진로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마치 누구나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발견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 기대치 자체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된 것은 아닐까요.
저 역시 사범대를 선택할 때 '교사가 나에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도 교사였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제가 현재의 제 직업을 싫어한다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교사의 적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실력·성향·기질·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천직'이라 믿고 들어온 동료들이 현실의 복잡함을 마주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단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버티기에는 예상 밖의 요소가 너무 많았던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책 읽고 글 쓰는 걸 더 좋아합니다. 분명 그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합니다.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생계와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천직'이라는 말 자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것은 결과론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해서 행복한 것인지, 원래 행복할 수 있는 성향이어서 그 일을 잘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적성을 발견해서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일 중 하나를 하다가 적응하고, 의미를 만들어갑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하지만 익숙해지고, 관계가 생기고, 능력이 붙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죠. 적성을 찾아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일 속에서 적성을 형성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진로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특정한 적성을 찾으라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서 배우고 적응하는 힘을 길러줘야 하지 않을까요? 기술 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어느 한 직업을 평생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천직처럼 느껴지는 직업도 언제든지 사라져버릴 수 있지요. 그렇게 사라지는 직업과 새로 생기는 직업이 계속 뒤섞이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어떻게 변화에 대응하느냐'입니다. 이것은 미래 노동 환경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현실적 역량이죠.
그리고 '일의 의미'와 '일하는 태도' 같은 기본적인 가치는 지금의 진로교육에서 너무 가볍게 다뤄집니다. 흥미나 적성을 검사하는 것이 중요한 도구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로교육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고 자기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태도 역시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하며 먹고 사는' 소수의 극적인 성공 사례를 절대공식처럼 학생들에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 안에서 적응하며,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죠. 적성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학생들은 비로소 더 현실에 가까운 진로를 상상할 수 있고, 더 건강하게 자기 삶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로탐색 #적성 #흥미 #직업관 #진로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