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동양인의 눈을 가져서 나는 눈덩이에 검은 반달을 그려도 눈을 뜨면 얇은 초승달이 떴고 요즘엔 흉도 아니라던 쌍꺼풀 수술을 생각해본 적도 있다.
“민지는 웃는 모습이 예뻐. 눈은 절대 손대지 마.”
가족들의 말에 그저 웃어 보이긴 했지만 사실 나의 눈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를 닮아서였다.
아버지와 연락을 안 한지는 한 해, 두 해를 지나 더 이상 세지 않을 정도가 되었고 어떤 모습으로, 어디서 살고 계시는 지도 알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먼 사람은 아니었지만 술을 드시면 이성을 놓으셔서 힘든 시간을 보내곤 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엔 엎친데 겹친 격으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아버지는 타지 생활을 하셨고 가정 형편은 힘들어져갔다. 아버지의 모든 걸 받아내야 했던 엄마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혼을 찬성했다. 아버지는 이혼을 원하지 않으셨지만 결국 두 분은 헤어지셨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지만 혈연은 쉽게 저버릴 수 없어 정기적으로 아버지와 식사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면 내내 가족의 원망으로 가득했고 그 덕에 난 집에 오면서 꼭 편의점에 들러 소화제를 마셔야 했다.
오랜만에 아버지가 오신 날이 있었다.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주시더니 본인은 드시지 않고 나를 지켜만 보셨다. 그리고 새 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혼을 반대하시던 분이 얼마 되지 않아 재혼을 해서였을까 아님 아버지임에도 지인이 결혼을 하듯 축하인사를 건네여야 해서였을까 짜장면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 날 아버지께서 나와 같이 수저를 들지 않으신 건 이후에 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해서라는 이유를 알고 나니 남들에겐 평범한 아버지와의 한 끼 식사에 의미를 두었던 내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여자를 만나보겠냐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렇게 난 마지막 소화제를 끝으로 아버지와 어떠한 만남을 하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로 마스크를 착용해 눈이 보일 때면 조각이 맞춰지듯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고 지워내고자 했던 그 마지막 순간이 다시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는 어리석은 선택의 시간을 보냈음이 분명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하셨지만 나에게는 하나뿐인 존재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직 가족에 대한 미움을 떨치지 못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리기도 했다. 지금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상처들은 무뎌질 것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짧게라도 내 삶 속에 아버지는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내 눈과 마주쳤을 때 '나에게 세상을 바라볼 눈을 선사해준 당신이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어 웃음이 났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나의 웃는 눈이 어릴 적 보았던 아버지의 웃음을 닮아서 어디선가 이렇게 미소 지으며 잘 계시진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어 ‘아빠는 괜찮아.’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고 그 웃음과 앞으로 나의 행복도 빌어주는 것 같았다.
“너 그렇게 웃으니 아빠 눈이랑 똑같아."
“다행이야. 그럼 시간이 흘러도 아빠 눈은 안 잊을 수 있잖아.”
엄마의 말에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는 진심을 눌러 담아 대답했고 엄마의 미소와 함께 돌아온 말은 꽃과 같았다.
“그래. 엄마도 그 눈에 반해서 아빠를 만났던 거였어.”
커버 이미지 출처 : 선물 by 정원 네이버 그라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