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괴물이 된 킥보드, 퇴출과 개선의 기로에 서다

파리, 뮌헨, 샌타모니카에서 본 킥보드의 미래

by 장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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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 전동 킥보드는 애매한 거리를 해결할 도심 모빌리티의 혁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버스 정류장에서 약속 장소까지의 그 애매한 거리를 공유 킥보드 하나로 단숨에 주파하며 열광했죠.


하지만 현재, 그 혁신은 이제 괴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킥보드 금지법'이라는 단어가 포털 사이트를 달굴 만큼, 여론은 차갑게 식었습니다. 헬멧 미착용, 2인 탑승, 인도를 점령한 불법 주차, 그리고 끊이지 않는 보행자-킥보드 간의 충돌 사고. 편리함이라는 가치 하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안전과 무질서라는 거대한 청구서가 날아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면 금지위험한 공존이라는 양극단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먼저 킥보드 열풍과 그에 따른 홍역을 혹독하게 치른 도시들이 있습니다. 어떤 도시는 결국 추방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 들었고, 어떤 도시는 기술과 제도로 킥보드와 공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해외 도시들의 실패와 성공 사례는 한국이 가야 할 '공존의 룰'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외 킥보드 운영 사례 미리보기

로망이 악몽으로... 파리의 뼈아픈 추방

이것은 장난감이 아니다: 독일의 차량 등록제

기술이 문제를 만들었다면, 기술이 답이다: 샌타모니카의 스마트 규제

우리가 가야 할 길: 금지가 아닌 설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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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이 악몽으로... 파리의 뼈아픈 추방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 파리는 한때 공유 킥보드의 천국이었습니다. 수만 대의 킥보드가 에펠탑과 센 강변을 누볐죠. 하지만 그 자유는 정확히 그만큼의 혼돈을 낳았습니다. 사망 사고를 포함한 킥보드 관련 사고가 폭증했고, 관광객과 시민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킥보드는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 되었습니다. 파리는 속도 제한, 주차 구역 설정 등 뒤늦게 규제에 나섰지만 이미 쏟아진 킥보드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image.png 출처: 그리니엄

결국, 파리는 2023년 4월,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시민 투표에 부쳤습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시민의 약 89%가 공유 킥보드 추방에 찬성했습니다. 2023년 9월 1일부로, 파리에서 모든 공유 전동 킥보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파리의 사례는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고 뼈아픈 경고를 던집니다. 편리함이 안전과 질서라는 사회적 합의를 넘어서는 순간, 시민들은 그 편리함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난감이 아니다: 뮌헨의 차량 등록제

파리가 실패의 아이콘이라면, 뮌헨은 규율의 아이콘입니다. 독일은 2019년, 전동 킥보드를 아예 '개인형 경량 전기차(eKFV)'라는 새로운 차종으로 법제화하는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image.png 출처: Shutterstock

즉, 뮌헨의 해법은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첫째, 킥보드는 자전거도로나 차도로만 달려야 합니다. 인도 주행은 원천 금지이며 적발 시 즉각적인 벌금이 부과됩니다.


둘째, 의무 보험 가입이 필수입니다. 독일에서 킥보드를 타려면 반드시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 스티커(번호판 역할)를 발급받아 부착해야 합니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이 보험으로 보행자 피해를 보상해야 합니다.


셋째, 연령과 면허 취소의 기준이 엄격합니다. 만 14세 이상만 탈 수 있으며 별도 면허는 필요 없지만 차량으로 분류되기에 음주 운전 시 자동차 면허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즉, 뮌헨의 방식은 킥보드를 레저용 장난감이 아닌, 도로 위를 달리는 책임 있는 이동 수단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또한 보험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법제화한 것이 핵심입니다.


기술이 문제를 만들었다면, 기술이 답이다: 샌타모니카의 스마트 규제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타모니카는 '버드(Bird)'가 탄생한 공유 킥보드의 발상지입니다. 그만큼 가장 극심한 혼돈을 가장 먼저 겪었죠. 이 도시의 해법은 기술입니다. 그들은 킥보드 회사의 기술로 킥보드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 규제'입니다.

image.png 출처: skyticket

첫째, 지오펜싱(Geofencing)의 의무화입니다. 킥보드 회사는 GPS 기술을 이용해 가상 울타리를 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산책로, 해변, 공원 등 보행자 전용 구역에 킥보드가 진입하면 자동으로 속도가 8km/h 이하로 줄어들거나 작동이 멈춥니다.


둘째, 스마트 주차 존입니다. 인도 위 무단 주차를 막기 위해 필수 주차 구역을 지정했습니다. 킥보드 앱은 이 지정된 구역이 아니면 애초에 탑승 종료 버튼이 눌리지 않도록 설정되었습니다.


셋째, 데이터 공유입니다. 모든 킥보드 업체는 시 정부에 실시간 익명 데이터를 제공해야 합니다. 시는 이 데이터를 보고 어느 구역에 킥보드가 불법 주차되는지, 어느 도로에서 사고가 잦은지를 파악해 즉각 정책에 반영합니다.


샌타모니카는 금지나 벌금 같은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데이터GPS라는 디지털 방식으로 킥보드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 금지가 아닌 설계로

킥보드 금지법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한국은 지금 파리로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해법은 명확합니다. 금지는 가장 쉬운 길이지만 결국 퍼스트-라스트 마일이라는 혁신의 가능성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금지가 아닌 정교한 설계입니다.


정부(제도): 독일처럼 보험 의무화와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자전거도로가 없는 구도심에서 킥보드가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합니다.


업체(기술): 샌타모니카처럼 지오펜싱과 스마트 주차 기술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또한 알아서 잘 주차해 주세요라는 캠페인이 아니라 지정된 특정 장소가 아니면 반납이 안 됩니다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시민(문화): 헬멧 착용과 1인 탑승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생명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전동 킥보드는 그 자체로 괴물이 아닙니다. 룰이 없는 광장에 풀려난 혁신일 뿐이죠. 이제라도 우리는 독일의 책임과 샌타모니카의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현실에 맞는 공존의 룰을 설계해야 할 마지막 골든타임에 서 있습니다.


Reference

[기사] "Paris votes overwhelmingly to ban rental e-scooters" (The Guardian, 2023. 04. 03)

[기사] "파리, 9월 1일부로 공유 킥보드 완전 퇴출... 투표 결과 89% 반대" (중앙일보, 2023. 09. 01)

[웹사이트] "E-Scooter Laws in Germany: What You Need to Know" (독일 연방 교통 디지털 인프라부 - BMVI)

[웹사이트] "Santa Monica’s E-Scooter & Bike Share Program" (미국 샌타모니카 시 정부 공식 웹사이트)

[보고서] 2025 마이크로 모빌리티 규제 동향 및 해외 사례 (국토연구원 / KO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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