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상생욕구
옛말 틀린 말 하나 없다지만, 꼭 하나는 틀린 것 같다. 적어도 내 경우엔 안 맞는다. 그 말은 바로 이거다.
- 부모는 자식이 밥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두 딸을 키우면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자식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더 먹고 싶어진다. 오히려 배가 고파진다. 밥뿐만 아니라 과자,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다. 특히 과자가 힘들다. 소리까지 더해져서다. 녀석들이 바사삭바사삭 씹어 먹는 소리는 내 침샘을 못 견디게 간지럽힌다. 먹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는데도 눈이 가고, 마음이 가고, 손이 간다.
별아도, 수인도 먹성이 끝내준다. 먹는 모습도 참 복스럽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행복이 솔솔 피어오른다. 그 행복 사이에 어김없이 식욕이 끼어드는 게 문제지만. 한번은 별아가 식탁에서 나초를 냠냠 먹고 있었다. 나도 나초를 좋아하는 터라 금방 군침이 돌았다.
“아빠, 조금만 먹어도 돼?”
“응.”
별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미소를 입에 물며 과자봉투에 손을 넣었다. 넣을 때는 몇 조각만 집으려고 했는데, 뺄 때는 한 주먹이 가득 차고 말았다. 곧바로 별아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빠, 너무 많잖아!”
이번엔 내가 생글생글 웃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식구끼리 좀 나눠 먹자.”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나초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혹시 다시 내놓으라고 할까 봐.
짭쪼름한 나초의 맛을 온몸으로 느끼다가 문득 영화 <비열한 거리>의 대사가 떠올랐다.
-식구란 건 말이여. 같이 밥 먹는 입구녁이여. 입구녁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섯, 여섯, 나까지 일곱. 이것이 다 한 입구녁이여. 알겄냐? 그면 저 혼자 따로 밥 먹겠다는 놈은 머여? 그건 식구가 아니고 호로새끼여. 그냐 안 그냐?
영화 속 인물 병두(조인성 분)는 조직폭력배의 중간 보스다. 병두는 한패거리 동생들에게 의리를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식구론(食口論)’을 펼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장면이 참 인상 깊었다. 그래서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이따금 “식구가 뭐야? 같이 밥 먹는 입이야” 하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가족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는 것을 나름 재치 있게 알리려는 의도였다. 의도와 달리 반응이 좋았던 적은 없다.
딸들이 음식을 먹을 때 나도 먹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현상은 아마도 식구를 향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걸 ‘식구애착증’이라 부를까? 아니, ‘식구상생욕구’가 조금 고상한 느낌이 든다. 두 딸이 밥을 먹을 때 내가 안 먹으면, 그래서 어린 딸들을 남기고 내가 죽으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딸들은 물론 아내에게도 불행이다. 나도 꾸역꾸역 먹어서 함께 살아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딸들에게 한마디 남겨야겠다.
“애들아, 아빠 입도 입이야. 우리 네 식구는 같이 밥 먹는 입이란다.”